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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작가 윤효재 Jul 02. 2024

청소년과 다수 철없는 어른?을 위한21세기 전래동화

21세기 심청전 제2화

‘당장 어디서 3억을 구한단 말인가?’


옆집 봉산댁 아주머니께 하소연하니 아는 무속인을 소개시켜 주었다. 청이는 당장 찾아갔다.

용한 점쟁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드디어 그 보살이 일을 내는구나! 원래 그 꽃선녀 보살과 나는 같은 스승 밑에서 배웠지. 근데 그 보살이 나를 시기하고 질투했어.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안 좋은 곳에 쓰기 시작했지. 스승은 그걸 알아차리고는 그 보살을 엄청 싫어했어. 스승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저주를 풀 수 있는 부적을 써 놓았어. 어디다 꽁꽁 숨겨 놨지.”

“부적이요?” 청이 얼굴엔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근데 찾지 못했어. 그 보살이 자기가 최고 무당이 되려고 독극물로 스승을 죽이고 말았어. 그 후 도망쳐 버렸지. 다행히 난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어.”

“그럼 어쩌죠?” 청이 얼굴은 다시 절망으로 바뀌었다.

“일단 급한 불은 꺼야지. 한 가지 방법은 있긴 한데… 너한텐 너무 가혹해서 말이야.” 용한 점쟁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청이를 바라보았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귀까지 멀게 할 순 없어요. 제발 가르쳐 주세요.” 이미 청이는 모든 각오를 한 눈빛이었다.

“음… 얼마 전에 무역업을 하는 국내 재벌이 찾아온 적이 있어. 중국에 무역하러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때마다 물살이 소용돌이치고 폭풍우가 쳤지.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계속 생겼어. 점을 보니 조상에 원한이 있어 무역업을 방해하고 있더군. 한 가지 방법은 착한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 괜찮아진다고 일러 주었지. 그때부터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처녀를 구해 달라고 하더군. 근데 누가 자기 딸을 제물로 바칠 사람이 있겠어?”

“그럼 제가 하겠어요. 저를 키운다고 장님으로 생활하신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요. 그 재벌 좀 소개시켜 주세요.” 청이는 두 손으로 점쟁이 손을 잡았다.

“네 생명을 바치는데 괜찮겠느냐? 이건 신중히 생각할 일이야. 부적만 찾으면 이렇게까진 할 필요 없는데 정말 안타깝구나.”

“전 상관없어요. 제발요.” 청이는 다시 점쟁이의 손을 꼭 잡았다.

“알았다. 다시 연락을 주마.”     

며칠 뒤 용한 점쟁이와 재벌 회장과 그 아들은 함께 청이를 만났다. 한눈에 봐도 착하고 아리따운 처녀였다. 제물로 바치긴 아까운 처녀였고 회장님은 아들과 결혼시켜 며느리로 삼고 싶은 심정이었다. 회장님은 청이에게 10억을 주었다.

“3억은 그놈들에게, 나머지는 홀로 남은 아버지 생활비로 쓰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청이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배가 떠나는 날까지 아버지께 잘 말씀드리고 며칠 뒤 봅시다.”     

청이는 아버지한테 알렸다.

“아버지, 저주를 풀 수 있게 됐어요. 사실 남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재벌집 막내아들이었어요. 사정을 얘기하니 선뜻 3억을 빌려준다 했어요. 이제 걱정 마세요. 그리고 조만간 해외로 나가는데 저와 결혼해서 가고 싶다고 했어요. 알다시피 제가 미모가 뛰어나잖아요. 정말 잘된 일이죠?”

“뭐? 내가 귀가 어두워 잘못 들은 거냐?” 심학규는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청이는 아버지 귀에 가까이 대고 큰 소리로 다시 말해 주었다. 연기가 어설펐지만 팔랑귀인 아버지는 방바닥에서 공중 부양 하듯 기뻐 날뛰었다.

“저, 저, 정말이냐? 그거 참 잘되었구나! 착한 청이가 복을 받는구나! 허허!” 심학규는 크게 웃다가 틀니가 빠질 뻔했다.

“해외 나가면 당분간 보기 힘들 거예요. 그래서 저 대신 파출부가 아버지 수발을 들 거예요. 3억을 그놈들한테 입금했으니 이젠 귀도 다시 들리고 지압원 나가서 일도 하시면 돼요.”     

“보살님, 입금 완료! 앗싸라비아!! 우리 굿이 베리 굿 됐어. 하하! 돈 벌기가 참 쉽구나!” 스님은 목탁을 비바체(빠르고 경쾌하게) 속도로 깨져라 두드렸다.

며칠 뒤 저주는 풀려 심학규의 달팽이관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청이는 저주를 풀었다는 기쁨과 동시에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는 슬픔에 울상이 되었다. 남은 시간 동안 청이는 아버지한테 최선을 다했다. 맛있는 반찬도 해 드리고 파출부 광고도 알바천국에 냈다.

파출부 전문 업체에서 아줌마를 소개시켜 주었다. 얼굴은 우락부락했지만 힘은 세서 집안일을 잘할 것 같았다. 청이는 사연을 얘기하고 제발 잘 부탁드린다고 신신당부했다.     

이윽고 배가 떠나는 날이 되었다. 청이는 진수성찬을 차렸다.

“오늘은 유난히 음식이 맛이 좋구나.” 심학규는 우물우물 씹으며 말을 이었다. “어허, 그러고 보니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최후의 만찬이네. 이젠 청이를 자주 볼 수 없으니 마음이 아프구나.” 심학규는 맛있게 먹기가 미안한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걱정 마세요. 연락드릴게요. 해외라서 시차가 맞지 않아 전화 통화는 힘들 거예요. 파출부한테 문자 보내서 대신 읽어 주라 일러 놨어요.” 청이는 숟가락을 다시 아버지 손에 쥐여 주었다.

“그래. 꼭 안부 문자 보내거라.”

“해외 출국이 급히 잡히는 바람에 결혼식도 못 올리고 가는 걸 용서하세요, 아버지. 비행기 시간 때문에 지금 출발해야 돼요.”

밖에는 재벌집 가족과 직원, 그리고 용한 점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청이와 심학규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배는 서해를 건너 중국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때 또 물살이 세지고 폭풍우가 몰려왔다. 청이는 배 앞에 서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용한 점쟁이는 굿을 시작했다.

“청이 아가씨, 멋있게 뛰어내리면 바다 용왕이 더 좋아할 것이오.” 점쟁이가 방울을 흔들었다.

풍덩!!

청이는 나름대로 공중 2회전으로 다이빙했다. 청이가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자 바다는 잠잠해지고 배는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청이는 죽은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거북이 등에 타고 있었다.

“이것 참 곤란하군. 난 지금 육지에 토끼 간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소. 그런데 물에 빠진 걸 보고 그냥 갈 수 없어 용왕님한테 딜리버리하는 중이오. 조금만 참으시오.” 거북이는 네발을 노 젓듯이 힘차게 저었다.

거북이는 용궁에 청이를 내려 주고 다시 육지로 토끼를 찾으러 갔다.

용왕은 청이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놀라서 물었다.

“아버지가 심학규라 하였느냐? 이런 우연이?” 용왕의 머릿속에 잠시 예전 일이 스쳐 지나갔다.

“저희 아버지를 아시나요?” 청이도 놀라서 물었다.

“아니,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청이 너의 효심은 지극하나 이건 결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너희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안다면 마음이 편치 못해 평생 후회하며 살아갈 것이다.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어찌 그런 섣부른 결정을 내렸단 말이냐? 딱하구나! 네 아버지를 생각해서 너를 진주조개에 태워 보낼 터이니 어서 아버지를 찾아가거라!”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 청이는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은혜는 무슨, 부모님이 불쌍한 너를 소중히 생각한 대가라 생각하거라.”     

한편 중국과 무역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재벌집 막내아들은 바다에 떠 있는 커다란 조개를 발견했다.

“조개가 가라앉지 않고 떠 있다니 신기한 일이구나!”

건져 올려서 보니 조개 안에는 커다란 진주와 어떤 여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청이였다. 아들과 직원들은 놀랐고, 한 직원이 말했다.

“이건 하늘이 맺어 준 인연입니다. 저 진주는 명품이니 결혼 예물 반지로 하면 되겠네요. 좋은 일을 하셨으니 복이 온 겁니다.”

썸을 탈 겨를도 없이 둘은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은 한 달 동안 해외로 다녀왔다. 하지만 청이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매일 밤 눈물이 났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고향에 가서 아버지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이사를 가고 좋지 않은 소문만 있었다. 연락도 되지 않았다.     

사실 청이가 바다로 떠난 후 뺑덕 파출부는 심 봉사에 잘해 주는 척하며 호시탐탐 재산만 노렸다. 반찬은 홈쇼핑에 대량 구입해서 맨날 비슷한 것만 먹이고 자기는 명품백과 옷을 사며 사치스럽게 보냈다. 팔랑귀인 걸 이용해서 좋은 곳에 투자한다며 돈을 얻어서는 자기 빚을 갚고 흥청망청 써 버렸다.

“청이한테 문자 왔숑! 온 거 없소?”

“아, 있지요. 제가 읽어 드릴게요. 호호호.”

아버지는 청이 소식을 듣고는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 문자는 청이가 뺑덕 파출부 보고 대신 써서 읽어 주라고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신 써서 자주 읽어 주다가 이젠 내용도 다 우려먹어 쓸 내용도 없었다. 쓰기 귀찮으니 문자 읽어 주는 횟수도 점점 줄었다.

그리고 뺑덕은 평소 술을 좋아했다. 막걸리를 먹고 술에 취해 횡설수설해서 동네 사람한테는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다. 술만 마시면 TMI를 남발했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해 동네 전봇대를 붙잡고 시비를 걸었다.

“야 인마! 키만 크면 다야? 삐쩍 말라서는. 나처럼 가로로도 자라야지, 넌 세로만 자랐네. 네 얼굴 쳐다보다가 거북목 되겠다, 인마! 건방진 전봇대. 끄억!”

그다음 날 또 전봇대보고는 “건방진 전봇대! 다이어트 그만해라잉!” 소리치며 전봇대를 넘어뜨리려고 씨름을 했다.

이걸 본 마을 사람들은 “뺑덕이가 전봇대와 이제 썸까지 타는 모양이구나!” 하며 혀를 찼다. 결정적으로 뺑덕은 술에 취해 혼잣말로 횡설수설하다 “청이는 시집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바닷물에 다이빙했다!”라고 취중고백을 해 버렸다.

이 소문으로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심학규 귀에까지 들어갔다.

“아이고! 우리 불쌍한 청아! 내가 죽을죄를 지었구나! 난 어찌 살라고 목숨을 그리 쉽게 버리느냐? 동네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겠구나!” 심학규는 앉은 채로 방바닥을 치며 한탄했다.

이참에 뺑덕은 동네를 뜰 결심을 했다. 자기 행실이 점점 동네에 탄로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학규한테는 “어르신이 딸을 재벌댁에 팔아먹고 혼자 잘 산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 소문이 이미 대한민국을 넘어 유튜브로 생중계되고 있대요. 동네 망신이니 빨리 이사 가요.”라고 겁을 주었다.

“정말이오? 알았소.”

심학규는 팔랑귀답게 뺑덕과 함께 어디론가 이사를 가 버렸다.     

청이는 이런 좋지 않은 소문을 듣자 또 매일 밤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재벌 남편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그럼 내가 아버지를 찾아드리지요. 심학규라 했지요? 요즘 세상에 SNS가 발달했으니 찾기 쉽지요.”

“잠깐만요. 심학규 이름으로 찾으면 못된 파출부가 우릴 못 만나게 할 게 뻔해요.”

“그렇겠네요. 그럼 전국에 맹인잔치를 열어 맹인 오디션을 보면 되겠네요. 참가만 해도 큰 상품을 준다고 하면 막 몰려올 것이오. 아마 「미스트롯」보다 더 인기를 끌 것이오.”

대대적인 맹인잔치가 열렸다. 맹인들이 연회장에 나타나자 청이는 한 분 한 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가짜 맹인 행세를 했다.

수상히 여긴 직원들이 “어! 어르신 발밑에 오만 원짜리 돈 떨어졌어요!” 하고 외치니 눈을 바로 뜨며 “어!! 신사임당이 차가운 땅바닥에 계시면 입 돌아가서 안 되지. 어디? 어디?” 하며 찾다가 들통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날 어떤 우락부락한 여인이 한 맹인을 끌고 오다시피 손을 잡고 나타났다.

“아니, 공짜로 상품 준다는데 왜 안 오려고 그래. 빨리 와요!” 뺑덕은 심학규를 억지로 끌고 왔다.

“청이 없는 세상, 살아서 뭐 하겠소. 그리고 돈은 먹고살 만큼 많잖소. 저번에 투자한 거 어떻게 됐소?”

“어… 그거 반토막 났어요. 전문 용어로 망했어요.”

“뭐요? 이런!”

그때 “아버지!! 저 청이에요, 청이! 제 얼굴 만져 보세요.”라고 소리치며 청이가 아버지 손을 잡고 얼굴에 갖다 댔다.

뺑덕이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청이 얼굴만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비슷한데 청이일 리가 없소. 우리 청이는 날 살리려고 바닷속으로 다이빙했단 말이오. 앞이 안 보인다고 날 놀리시면 아니 되오.” 심학규는 청이 손을 뿌리쳤다.

청이와 남편은 아버지를 정중히 모시고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럼 진정 아가씨가 청이가 맞단 말이냐? 우리 용왕님이 또 은혜를 베푸는구나!” 심학규는 청이 얼굴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확인했다.

“아이고! 청이 아씨, 저도 아버님 돌본다고 정말 힘들었습니다요. 흑흑! 밥 먹이랴, 목욕시키랴, 빨래하랴, 전봇대와 씨름하랴, 고생고생 말도 못 합니다. 흑흑!” 뺑덕도 이때다 싶어 눈물을 흘리며 연기 모드로 전환했다. 코를 훌쩍거리며 힘든 표정을 지었다.

‘흠, 이 정도 연기면 올해 연기 대상감이지.’

그러자 어이없게 보고 있던 회장 아들은 눈을 부릅떴다.

“이 못된 뺑덕 아줌마야! 비염이 있나 왜 코를 훌쩍거리시오. 청이가 믿고 아버지를 맡겼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당장 고발하기 전에 여길 떠나세요!!”

놀란 뺑덕은 도망치듯 나와 반성은커녕 자신의 연기가 부족한 걸로 생각하고 사라졌다.

‘내 청이한테 꼭 복수하리다!! 아이 윌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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