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심청전 제3화
‘내 청이한테 꼭 복수하리다!! 아이 윌 컴백!’
“그런데 아버지, 눈을 못 떠서 어떻게 해요?” 청이는 아버지의 감긴 눈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전혀 걱정할 거 없다. 내가 맹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네가 좋은 분과 살지 않느냐. 우리 인생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더라.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니라.”
“그래도 많이 불편하실 텐데….”
“무슨 소리? 눈이 안 보이니 내 귀가 예민해져 눈보다 더 잘 들리고, 손 감각도 더욱 예민해져 지압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된단다. 지금은 이대로 사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구나!” 심학규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심학규는 청이와 손을 맞잡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고생하게 된 건 다 그 땡중과 무속인 때문이다. 그때 그 산을 다 뒤져서 꼭 찾아내거라. 내가 직접 벌을 주겠다.” 남편이 지시했다.
며칠 만에 둘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남편은 경호원 2명을 데리고 이른 아침 산으로 향했다. 꽃선녀는 산골 마을의 폐교를 굿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대낮이지만 폐교는 음산했다. 안에서는 굿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호원 한 명이 바로 이단 옆차기로 문을 쾅! 하고 부숴 열었다. 꽃선녀 보살은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2층에서 내려오던 스님은 발걸음을 멈췄다.
“웬 놈이냐?” 정신을 차린 보살이 소리쳤다.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했을 텐데. 내가 청이 남편이다. 대신 내가 벌을 주겠다!”
이단 옆차기 경호원이 보살을 간단히 제압하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스님은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 도망쳤다.
“거기서! 땡중아!!” 나머지 경호원이 잽싸게 올라갔다.
“퍽!”
“윽!!”
“뭐야?” 남편은 놀라 계단으로 뒤따라갔다.
스님이 목탁을 던진 것이다. 경호원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스님은 2층 복도를 다다다다 뛰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복도에 떨어진 목탁을 집어 들고 뒤따라갔다. 스님이 복도 끝에 다다르자 아들은 뒤통수를 향해 목탁을 강속구로 던졌다.
“퍽!”
“윽!!”
스님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내가 왕년에 투수 좀 했지!”
남편은 꽃선녀 보살과 스님을 밖으로 끌고 나와 꿇어앉혔다.
“지금 당장 여기서 떠나라. 단, 폐교에서 어떤 물건도 가져가지 마라. 우리가 다 없애 버리겠다. 그리고 다시는 재수 없는 짓 하지 마라. 용한 점쟁이가 저주를 막는 부적을 갖고 있다. 또 한 번 이런 짓 하면 그 부적으로 너희들의 생명줄을 끊어 놓을 것이다!!” 남편은 부적이 있는 것처럼 겁을 주었다.
“네네! 어르신. 목숨만 살려 주세요. 그 부적은 제발 저희한테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둘은 고개가 부러져라 땅바닥에 절을 했다.
그리고 남편이 이들을 사기꾼이라고 인터넷에 폭로하자 그들은 당분간 못된 짓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심학규는 탁월한 지압 기술로 유명한 안마사가 되었고, 청이도 남편을 도와 무역 회사를 세계적 기업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몇 달 뒤 다시 불행이 찾아왔다. 갑자기 심학규가 시름시름 아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허튼소리를 시작했다.
“다시 용한 점쟁이를 불러 오너라!” 남편이 지시했다.
용한 점쟁이는 누워 있는 심학규를 보자마자 움찔하며 얼굴이 굳어졌다.
“귀신이 씌었습니다!”
“네에? 귀신이요?” 청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가 울렸다. 청이의 벨소리였다. 휴대폰에는 발신번호 표시 제한이라고 떴다.
“여… 여보세요?”
“나야, 청아!”
“네??”
“내 목소리 벌써 잊었어?”
“뺑덕 파출부??” 청이는 하마터면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스피커폰으로!” 남편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내 목소리는 처음 들어 보겠네? 맞혀 봐.”
“넌…! 꽃선녀 보살??” 용한 점쟁이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치를 떨었다.
“오! 스승님을 죽인 원수, 용한 점쟁이도 있었네. 히히.” 보살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였다.
“웃기고 자빠졌네! 네가 스승님 죽이고 도망가 놓고선 누구한테 뒤집어씌워!!” 용한 점쟁이는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진짜 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했단 증거 있어?!” 스피커폰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럼 내가 했단 증거 있어? 살인자는 너야!!” 용한 점쟁이는 스피커폰 목소리를 집어 삼키고 싶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보살이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어째서 너희 둘이 같이 있는 거지?”
모두 뺑덕과 꽃선녀가 같이 있는 것을 의아해했다.
“대충 짐작해 보면 알 텐데. 난 너와 회장 아들놈 복수를 위해, 뺑덕은 돈을 위해. 물론 나도 돈이 좀 필요하긴 하지.”
“으으…. 그때 그냥 놔둔 게 잘못이구나!” 남편은 주먹을 쥐고 이를 꽉 깨물었다.
“거래는 간단해. 이제 청이 가족도 돈이 많으니 100억만 주면 돼.”
“당장 저주를 풀지 않으면 스승님이 주신 부적으로 너희에게 벌줄 것이야!!” 점쟁이가 협박하듯 소리쳤다.
“부적? 흥! BTS가 다이너마이트 터뜨리는 소리하고 있네!”
“…….”
“부적이 있었으면 심 봉사가 귀 먹었을 때 벌써 사용했겠지. 내가 바본 줄 알아!!”
“청아! 나도 앞 못 보는 너희 아버지 모신다고 고생했으니 위험수당 좀 받아야겠다.” 뺑덕도 끼어들었다
“너희를 다시 찾아내서 가만두지 않겠다!” 남편은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릴 찾아낸다고? 우린 지금 한국에 없어. 중국에 있어. 맘대로 해 봐. 여기서도 얼마든지 저주의 굿은 가능하거든. 심 봉사 사주가 저주 내리기 참 좋은 사주야. 일주일 시간을 주겠다.”
전화가 뚝 끊겼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 청이는 용한 점쟁이에게 애걸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 부적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분명히 스승님 물건 중에 숨겨 뒀을 텐데….”
“그럼 마지막으로 같이 가서 다시 찾아봐요. 중요한 물건이니 평범한 곳에는 숨겨 뒀을 리 없어요.” 청이는 또 뭐든지 다 하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래. 돌아가신 지 수십 년 지났지만 스승님 물건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 다 같이 찾아봐야겠어.”
다 같이 서둘러 점쟁이 집에 갔다. 제자도 여러 명 있었다.
“스승님 물건들 사소한 거라도 다 말해 봐요. 다시 자세히 찾아보죠.” 청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스승님 옷, 물건 넣어 놓은 궤짝, 굿할 때 쓰는 징, 장구, 꽹과리, 북, 스승님 보던 책, 그리고 부적 쓸 때 쓰는 붓과 물감. 이게 다야.”
남편이 먼저 스승님 옷 여러 벌을 뒤졌다. 소매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있을 리 없었다. 다음은 궤짝. 쇠고리로 된 문을 여니 각종 부적이 있었다.
“그 부적은 제가 이미 살펴봤는데 우리가 찾는 부적이 아니에요.”
“잠깐! 궤짝 안쪽 벽에 글씨들이 많이 적혀 있는데요?” 남편이 궤짝 안쪽에 얼굴을 넣으며 말했다.
“그건 부적 글씨가 아니에요.”
남편은 힘이 빠졌다. 이번엔 청이가 스승님이 보던 책을 일일이 넘겨서 보았다. 혹시나 책갈피처럼 꽂혀 있을 것만 같았다. 역시나 없었다.
남편은 사물놀이 악기를 보았다.
“징, 꽹과리, 북, 장구는 아닐 테고….”
“점쟁이님, 찾아볼 건 다 찾아봤잖아요. 남은 건 저 책상에 부적 물감과 붓밖에 없어요.” 청이가 책상을 쳐다보았다.
“저기도 당연히 부적이 있을 리 없겠는데. 하아!” 남편은 한숨만 내쉬었다.
그때 점쟁이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물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여러 붓들을 수상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붓들은 스승님이 부적 쓸 때 아끼던 거였지.” 점쟁이는 유난히 큰 붓을 집어 들었다. “이 큰 붓은 특히 중요한 부적을 쓸 때 쓰던 거였어.” 점쟁이는 큰 붓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그래서요?” 청이는 뭔가 있을 것 같았다.
점쟁이는 큰 붓 뒤의 뚜껑을 당겨 보았다. 열리지 않았다.
“제가 해 볼게요.” 남편이 빼앗듯 집어 들고는 힘껏 당겼다.
열리지 않았다.
“당기지 말고 돌려서 여는 것 아니에요?” 청이가 말했다.
남편은 왼쪽으로 힘껏 돌렸다. 뻑뻑했지만 드디어 열렸다. 그리고 빈 공간 안을 쳐다보았다.
“뭔가 있어!! 허연 게 말려 있어!” 남편은 ‘심봤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손톱 끝부분으로 꺼내려고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제가 해 볼게요.” 청이가 긴 손톱으로 겨우 집어서 꺼냈다.
점쟁이는 종이를 받아서 펼쳤다. 붉은 글씨가 적힌, 무서운 문양의 악귀를 쫓는 그림이 있었다.
“됐어! 바로 이거야! 스승님도 참!! 이런 고생을 시키시다니!” 점쟁이의 얼굴은 원망과 기쁨이 동시에 나타났다.
“빨리 저주를 풀어 주세요!” 청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가서 굿을 시작하지. 다들 준비해라, 얘들아.”
아버지가 누워 있는 방에서 굿은 시작되었다. 부적을 아버지 가슴에 올려놓았다. 청이와 남편은 두 손을 꼭 쥐고 지켜보았다.
장구 소리, 징 소리, 북소리와 땀을 뻘뻘 흘리며 귀신을 퇴치하는 목소리, 그리고 방울 소리가 뒤엉켜 분위기는 살벌했다. 점쟁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호통을 치자 부적은 마치 살아 있는 듯 흔들렸다.
드디어 점쟁이가 굿을 마치고는 냉수 한 사발을 벌컥 들이마셨다.
“며칠 내로 저주가 풀리고 그년은 천벌을 받게 될 겁니다.” 점쟁이는 보살을 생각하며 미소를 띠었다.
“감사합니다. 점쟁이님! 정말 감사합니다!” 청이는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혔다.
“뭘요, 최고의 무속인이 이 정도는 해야지요.” 자신감을 넘어서 자만심이 들어간 점쟁이의 목소리였다.
며칠 후 중국에서는 뺑덕과 꽃선녀 보살, 그리고 스님이 술 한잔하며 마치 100억을 얻은 것인 양 술에 취해 있었다.
“그 못된 점쟁이한테 이제 복수하는구나! 오늘 밤은 술이 잘 넘어가는 퍼펙트 나이트(Perfect Night)야! 캬아! 르세라핌 생각이 나네!” 보살은 원샷했다.
“근데… 설마, 그때 도망치면서… 진짜 스승님을 죽인… 건 아니… 시겠죠?” 스님도 술이 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 소리?? 난 절대 죽이지 않았다니까!!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술맛 떨어지게!!” 보살은 불쾌해하며 딱 잡아뗐다.
“설마, 보살님이 그럴 리가요. 저도 청이 가족한테 복수하게 돼서 정말 고마워하고 있어요.” 뺑덕도 원샷했다.
“우웩!!”
그때 갑자기 보살이 먹은 걸 토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아니, 보살님! 벌써부터 먹은 걸 확인하려 합니까? 이런 더러운 건 집에 가서 하시지요.” 스님도 토할 뻔했다.
“그게 아니고, 이 미친 점쟁이가… 부, 부적을 찾았구나!! 안 돼!!!”
보살은 곧 쓰러졌다.
꽃선녀 보살은 몇 시간이 지나고 깨어났다. 하지만 보살은 무당으로서 영적인 능력을 당분간 잃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빈털터리로 다시 국내에 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또 사기를 준비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청이 아버진 저주가 풀려 다시 건강한 몸을 되찾았고, 청이 가족은 행복하게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 못다 한 이야기
“스승님! 그 부적 어디에 있는지 저한테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용한 점쟁이가 물었다.
“으음…. 아직은 알려 줄 때가 아니다. 너도 무속인으로서 마음 수양은 부족하니 나중에 알려 주겠다.”
“네. 그렇게 하시지요.”
‘이제 스승만 없애면 내가 최고의 무속인이야.’
누군가 음식에 독극물을 넣고 있었다.
‘꽃선녀가 미움받아서 어제 도망까지 갔으니 뒤집어씌우면 돼. 타이밍이 기가 막히는데!’
용한 점쟁이는 독극물을 마저 털어 넣었다.
‘이제 내가 최고 무당이야!!’
***
심학규 부부는 청이를 옆집 봉산댁에 맡기고 바다에 낚시를 나갔다. 고기를 잡아서 횟집에 팔아 청이 분윳값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방파제에 발을 잘못 디뎌 둘 다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둘 다 죽은 줄 알고 눈을 떠 보니 거북이 등에 타고 있었다. 용궁에 도착한 거북이 말했다.
“바다에만 있으니 소금물이 콧구멍에 꽉 차 있어 육지에 가서 콧바람 좀 쐬려고 했지요. 그런데 물에 빠진 이 사람들을 보게 되어 데려왔습니다. 난 다시 육지로 바캉스 좀 갔다 오리다.”
정 많은 거북이었다. 용왕은 119를 불러 닥터 고래한테 심학규 부부를 살려 내게 했다.
“여기 용왕님이 생명의 은인이시다.” 닥터 고래가 정신을 차린 부부를 보며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 둘은 넙죽 절을 했다.
“은혜? 당연히 갚아야지! 우리 용왕님이 오백 년간 바다에 계셨더니 눈과 간이 안 좋으셔서 몸이 좋지 못하다. 너희 눈과 간이 필요하다. 어찌하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여기서 생선만 먹고 살아야 할 것이다.”
“영원히 여기서 생선만?? 그건 안 됩니다. 전 특히 생선을 싫어해서 붕어빵도 먹지 않습니다. 우리 불쌍한 청이만 혼자 살게 할 순 없습니다. 제발 살려 보내 주십시오.” 심학규는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며 애원했다.
“저희 눈과 간을 드릴 테니 살려만 보내 주세요.” 청이 엄마도 눈물에다 콧물까지 흘렸다.
“눈을 준다면 평생 봉사로 살지만 육지에 가서 살 수는 있다. 하지만 간을 준다면 살지는 못할 것이다. 어찌 하겠느냐? 둘이 의논을 잘 해 보거라.” 닥터 고래가 말했다.
심학규 부부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심학규가 먼저 입을 뗐다.
“여보, 내가 간을 줄 테니 당신은 살아서 청이를 잘 돌보시오. 청이한텐 아빠보다 엄마가 더 나을 거요. 봉산댁이 잘 도와줄 거요.”
“아니에요. 남자가 살아남아야 일도 열심히 해서 청이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겁니다. 전 몸이 약해서 일도 잘 못해요.”
부부를 번갈아 가며 보고만 있던 용왕이 입을 열었다.
“음⋯ 그럼 할 수 없지. 공정한 게임을 할 수밖에. 「오징어 게임」에도 없었던 단순 무식한 제비뽑기다. 가져오너라!” 용왕이 복어 재상한테 명령했다.
복어 재상이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제비 인형 두 개를 가져왔다.
“이 둘 중 한 마리는 다리가 부러진 흥부 제비다. 그걸 뽑는 사람이 맘대로 정하시면 되오.” 복어 재상은 다리를 감춘 채 부부에게 내밀었다.
먼저 심학규가 손끝을 떨면서 제비 하나를 집었다. 제발 흥부 제비가 걸려라 하며 쑥 뽑았다.
“흥부 제비다!! 정말 잘된 일이야! 당신이 살았어. 살았다고! 내가 간을 이식하겠소. 여보, 부디 청이를 잘 키우시오.” 심학규는 다리가 똑 부러진 제비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닥터 고래는 어서 수술을 준비하시오!” 복어 재상이 말했다.
“잠깐!!” 청이 어머니가 말리며 말을 이었다. “청이 아빠! 봉산댁이 잘 도와줄 거예요. 당신은 아빠 역할을 하고 봉산댁이 엄마 역할을 하면 되겠네요. 부디 잘 사세요.”
“그 무슨 소리요? 내가 이겼잖소?” 심학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대답도 하지 않고 청이 엄마는 앞에 복어 볼따구니를 찰싹 때렸다. 그리곤 입으로 꽉 깨물어 버렸다. 놀란 복어 재상은 본능적으로 독을 뿜으며 몸을 뺐다. 하지만 복어 독은 이미 청이 엄마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여보! 이 무슨 짓이오!! 아니 되오!!!” 심학규는 마누라를 끌어당기며 말렸다. 하지만 청이 엄마는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버렸다.
다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우리 마누라 좀 살려 주시오! 여보, 마누라! 제발!!” 심학규는 쓰러진 마누라를 끌어안고 용왕님을 쳐다보며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청이 엄마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으흐흐흑! 이렇게 보낼 순 없소!!” 심학규는 마누라를 끌어안고 통곡만 했다.
“안타깝구나! 우리도 어쩔 수 없소. 인간의 운명은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오.” 용왕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닥터 고래가 말했다.
“용왕님한테 장기 기증 하는 거니깐 영광이라 생각하시오. 인생지사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라고 다음에 인연이 또 어찌 될지 모르잖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