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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생끝에골병난다 Jun 08. 2023

마음을 끄는 예술은 무엇일까 / 시인으로서의 아이유

문학과 노랫말, 삶을 예술하다

- 비어있는 것들. 신해욱과 윤지영

-시인으로서의 이이유

'예술하다'라는 동사가 있다. 아름다움에 목적을 두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어떤 예술은 '아름다움을 목적하기' 위해 화음을 쌓고, 문장을 더하고, 색을 덧대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진솔하고 담백하게 생의 아픔을 응시하는, 그렇게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정을 피워내는 두 가수를 소개하려 한다.




시의 장점은 '비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에세이처럼 설명해주지 않는다. 소설처럼 인물을 풀어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 삶을 전부 끌어내야 한다. 내가 지나온 모든 사람과, 나를 지나쳐간 모든 책들. 내가 가진 모든 지식을 동원해 한 문장을 사색한다.

니체는 현대인의 삶에서 사색이 사라지고 행동(노동)만 남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천천히 사색을 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움직일 것'을 종용하는 현대 사회에서, 시집을 펼치면 우리는 강제로 사색에 빠진다.

어떤 시에는 내가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문장이 있다.

"보고 싶었어요. 애타게요. / 하지만 이토록 오랜만일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악마의 묘약. 신해욱

아무런 설명도 없지만,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문장이다. 하나도 모르겠지만, 전부 알 것 같지 않은가. 비워둔 것에서 예술은 채워진다. 읽지 않은 편지가 더 문학적이다.

편지의 내용이 틀어놓을 삶의 경로. 그 무한한 만약들을 매우는 것이 문학의 영역이다. 다 읽어버린 편지는 모든 가능성을 상실하고, 우리는 고되고 지난한 현실에 버려질 뿐이다.



Blue Bird. 윤지영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가장 가사를 잘 쓰는 아티스트는 윤지영이다. 묻고 싶었던 말이 있지만, 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끝나는 가사. (다만 묻고 싶은 게 있어 / 근데 하지 않는 게 좋겠어) 이별 후 화자의 감정은 고작 '부끄럽네' 정도로 표현된다. 그 뒤의 모든 마음은 공백이다. ('부끄럽네')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 말해주지 않지만, 다 알 것 같은 가사. (사랑하는 마음을 사랑한다잖아 / 솔직하고 싶은 마음만 솔직한 거고 / 미안하고 싶은 마음만 미안한 거지 / 근데 그게 우리 진심인데)

사랑이 저물 때 서로는 악당이 된다. 사랑이나 미안함을 말하는 '너'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어쩜 이딴 것도 진심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사랑한다잖아." ('죄책감이')

'헤어질결심'이나 '화양연화'가 사랑한다는 대사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것처럼, 어떤 예술은 공백으로 말한다.

그 빈 공간 앞에서, 우리는 공백을 채우려 삶을 전부 동원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이 사라지고, 사색이 시작된다. 그럴 때 예술은 삶을 예술한다.




인스타그램 @garbageidea_


이제 아이유는 웬만한 직업 작사가보다 가사를 잘 쓴다. 코인노래방에서 사람들이 양산형 발라드를 부를 때, 화면에 지나가는 노랫말을 유심히 지켜보라. 그들의 포효에는 통증의 진심이 없고, 동시대에 대한 책임감이 없고, 언어를 고민한 흔적도 없다. 다른 노래에서도 들은 것 같은 클리셰(상투어)만 가득할 뿐이다.

공장식으로 곡을 만든대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이별한 뒤 소주를 마시고, 오뎅 국물 앞에서 헤어진 여자 이름을 외친다. 그냥 진상 아닌가. 대중가요가 반드시 시대적 의제나 시적인 이미지를 세울 필요는 없다. 대신 고민한 흔적도, 진심도 없는 가사에는 감동도 없다.

일기장에 나올 법한 표현만 가득해도, 그게 진심이면 마음을 움직인다. 그대로 다른 곡에 '복붙'해도 될 가사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들은 빠르게 사라진다. 구차한 마음도 진솔하게 써내면 문학이 된다. 뻔하고 구태한 표현으로 드러난 찌질한 마음은 보기가 힘들 뿐이다. 그게 공감성 수치든, 트라우마든



시인으로서, 아이유


그런 음악 산업의 공산품에 비해, 아이유의 노랫말은 훨씬 서정적이고, 공공에 대한 책임과 영혼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대중적이다. 언어를 가지고 고민한 흔적도 풍부하다. 역동적인 이미지를 위해 '바람을 세로질러'라는 표현을 창조해낸 사례는 유명하다. ('Strawberry moon')

코로나 시국에 나온 '에잇(Prod.&Feat. SUGA of BTS)'이란 곡에 대해 아이유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의 개인적인 정서로부터 오는 것인지 재해로 인해 함께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로부터 오는 것인지, 혹은 둘 모두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의 스물여덟은 반복되는 무력감과 무기력함, 그리고 ‘우리'가 슬프지 않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오렌지 섬'에 대한 그리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아이유는 이제 무력함과 고립, 상실을 '우리'의 문제로 격상시킨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개인은 끊임없이 무력과 상실을 마주친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 왔다가 인사도 없이 떠나고, 이대로는 무엇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화자는 슬프지 않았던 '오렌지섬'을 공연히 그리워한다.

신이 없다는 사실은 무신론자의 승리가 아니라 인류 앞에 놓인 거대한 비극이다. 시시포스의 형벌이 그렇듯, 살아가는 일이 대체로 무의미의 지옥이라면, 정말 신도 천국도 없다면, 우리는 황량한 삶에 남겨지는 일을 염려해야 한다. 인간은 너무 똑똑해서 종교적 사고를 버릴 수 없다. 인간은 너무 연약해서 공동체를 떠날 수 없다. 서사와 연대가 종말한 자본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스스로 미치고 죽는다. 아이유 노래의 화자는 선뜻 절망하지 않는다. 곡의 제목은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에잇.' 상실을 외면하며 도망치는 대신, '오렌지 섬'을 상기하며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노래는 인사도 없이 떠나는 많은 것들에 장난스러운 태도로 대처한다. 그러다 보면 극복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극복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이의 슬픔을 치유할 수도 있다.




"I’ll be there 홀로 걷는 너의 뒤에
Singing till the end 그치지 않을 이 노래
아주 잠시만 귀 기울여 봐
유난히 긴 밤을 걷는 널 위해 부를게"

/Love poem. 아이유



<타락천사>



인사도 없이 떠나는 것들을 대하는 장난스런 태도. 이것은 왕가위 영화 <타락천사>의 톤이기도 하다.

사랑. 가족. 친구. 삶을 지탱한 모든 게 인사도 없이 떠나고, 어느덧 오토바이 뒷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타 있다. 남겨진 사람들은 쓰러질 듯이 담배를 피우고, 말을 못해서 가슴에 빨간 케챱이나 바른다. 카메라는 기울어져 있고, 시간과 인물은 위태롭게 흐른다. 그렇지만 작품은 끝까지 유쾌하다. 주인공의 인생은 내내 즐겁다. 영상에 담긴 그의 삶을 돌이켜 보면 아름답기까지 하다.

소설에 글 쓰는 인물이 흔히 등장하듯, 영화에는 촬영하는 사람이 자주 나온다. 무언가를 찍는 것은 삶의 아름다운 순간만을 기록해두는 일이다. 그렇게 영상이 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인생을 구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왕가위 특유의 음악이 더해지면, 돌이켜본 삶은 아름답기도 한 것이다. 신이 없다면, 종교가 죽었다면, 삶이 무의미하다면, 애정과 인정, 연결과 연대를 복원해내는 것으로 죽음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그렇게 아이유의 '에잇'과 '타락천사'는 연결의 기억 속을 여행한다. 정해진 안녕이 없던 오렌지 태양 아래서. 추억하고 후회하면서 더 나은 반복을 추구하고, 우울한 결말은 없을 것이라 선언한다. 그런 열정은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염되기도 하는 것이다.


<타락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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