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곳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왔다]

4번째 이야기-집체 교육 안내와 여러 군데 면접 보러 다니기

by 윤슬






감정조절에 실패했지만 여긴 외국도 아니고 의사소통은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유리 너머 창구의 여직원은 안내서류를 주었다.

그리고 집체 교육을 지정날짜에 맞춰서 받으라 했고, 교육에 오면 다시 자세한 안내를 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1달 단위로 실업인정일에는 내게 책정된 일당을 기준으로 돈이 통장에 입금된다고 하였다.

이때까지 실업급여는 받아본 적이 없고 많지 않은 돈이지만 구직을 해나가면서 아이들 먹을거리 챙길 정도의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2주 정도는 60만 원이 조금 못되었다.


1차 집체교육 출석일은 8월 16일이라고 했고 반드시 와서 교육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구직을 계속해나가면서 잘하면 16일에는 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

(작년 고용노동부지청에서 받은 안내 팜플렛내용. 참으로 암담한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친구가 걱정이 되어 다시 전화가 왔다.

이전 직장일도 걱정을 해주면서 또한 자기가 겪었던 일들도 30분 넘게 얘기를 하면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사실 다 듣고는 있었지만, 당시에는 와닿지는 않았다. 내가 믿는 것은 나 자신과 그 3권의 책뿐이었다.

그 책은 리뷰에 유사종교라고 했는데 심하게 공감이 되었다. 고등학교 자취방에서부터 알던 친구라 기도도 해주겠다, 주위에 좋은 자리가 나면 말해 주겠노라고 좋은 생각만 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그 이전 직장 동료들이 같은 신생병원이 많이 생긴다면서 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사춘기인 아들도 있고 늘 멀리 출퇴근을 하니 여러 가지 손실이 더 컸다고 판단이 되었다.

그리고 나이도 이젠 지천명이다. 나이가 들면 요양병원에 많이 가는 추세이기는 하나 나랑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으나 가장 크게 실망스러운 것은 급여였다. 조금 힘들어도 급여가 만족이 되면 참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으나 대도시에 있다 집 근처로 오니 터무니없이 월급을 적게 책정했다.

나이가 들면 이제 갈 때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이 도사리고 있었고 마음은 차츰 평온을 되찾아 갔다.


친구가 내가 사는 집 근처에 병원을 이전하면서 중간관리자를 뽑는다고 이력서를 넣어 보라고 하였다.

다른 곳에도 합격을 한 상태로 있어서 그렇게 내키지는 않았으나 [사람인]을 통해 제출했다.

8월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서류에 합격하셨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책도 읽어 가면서 마음을 다 잡고, 여러 군데 면접일정을 세웠다.

어떤 곳에 갈 때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에 웨이브를 넣고 더 어려 보이게 하고 싶었다.

또 다른 곳은 청순해 보이는 반소매정장을 입고 머리는 단아한 묶음 머리를 하고 나갔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니 자신감을 되찾았고 어떤 곳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왔다.


드디어 토요일 오후 면접일이 다가왔다.

열두세 명이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면접실에 들어서니 3명의 면접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위 사진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랑카위 쁘렌띠안입니다.)



정말 부끄럽지만 어제에 이어 8월 둘째 날 나머지 2권의 2편 시리즈도 발간했습니다.

(좌:사춘기아들이야기/우:저의 출퇴근이야기)

많은 관심 가져 주실 거죠?(이 말을 남들 따라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넘치는 사랑과 관심에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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