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도에 돌아 올 운명이었다
한해의 10월이 되면 모든 인도 국민들은 각기 다른 계급, 종교, 민족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배경을 품은 채 콜카타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두르가 푸자(Durga Puja)를 즐기기 위해서 콜카타 시내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힌두교인들의 어머니 여신인 '두르가'를 숭배하며 서부 벵골에서 열리는 가장 크고 중요한 축제에 해당하며,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 나 또한 이 축제의 현장에 있었다. 구남자 친구의 면담 요청을 받고 그들의 성대한 행사가 연행되는 서부 벵골의 주도, 콜카타로 떠났다. 총 10일간의 일정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여행길에 올랐다. 이른 새벽 경유지인 델리에 도착해 같은 날 이른 아침에 콜카타행으로 갈아타야 했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가장 애정하며 오랜 인연을 맺은 친구가 일하고 있었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가까운 하얏트의 업스케일 호텔 Andaz Delhi로 향했다. 3년 전, 그 당시의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언제쯤 다시 인도 땅을 밟을 수 있을까 했던 막연했던 생각이 이내 현실로 한 발짝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델리는 언제나 특별하고 소중한 장소로 기억될 것임을 알지만 매번 인도에 올 때마다 그 감회가 남달랐다.
시차가 뒤죽박죽에 몸도 노곤해서 쉬려다가 또 운동 근성이 발동해 짐으로 내려갔다. 운동이 끝나고 밤 11시 30분쯤, 인도에 온 만큼 별미 음식으로 나만의 소소한 잔치상을 차렸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렇게 떨릴 수 없었다. 3년 만에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그 사람을, 냉소하고 잔인하게 돌아섰지만 훗날 내 마음의 깊이를 깨달은 그와 마주하는 일이 마냥 기쁨만으로 차오르는 쉬운 감정선은 아니었다. 서로가 어떻게 변해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측할 수 없는 변동성에 대해서도 불안한 감정이 서려있었다. '만나면 그때부터 대화로 잘 풀어가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일단 난 스스로를 다스리며 근사한 식사로 형용할 수 없는 허전함을 대신하려 했다. 다음 날, 콜카타로 가는 비행기에서의 두 시간은 아주 긴 영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겨우 잠에 들었던 새벽 네시, 난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기억하는 그의 인도 번호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도 나와 같은 심경이었다. 떨려서 잠이 안 온다며 우리 내일 만나는 게 맞는지 재차 확인을 했다. 1년 반의 장거리 연애 후 결별, 3년을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지내다가 지난 8월에 연락이 닿고 콜카타로 와 줄 수 있겠냐는 그의 부탁에 흔쾌히 응하며 그를 만나는 건 같은 해 10월, 지난 세월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진행된 만남이었기에 그도 현실의 무게를 여전히 감응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난 그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잠재우고자 몇 분 간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친구와 함께 술 한잔 하면서 이 긴긴 새벽을 견뎌내고 있던 그였다.
계절의 경계가 불분명한 인도에서 역시나 반갑지 않은 모기에 물리며 억지로 잠을 떨치고 떠날 채비를 끝냈다. 내 눈앞에 닥친 일만 신경 써야 번잡한 생각이 떠나가고 뒤숭숭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일어나서 씻고 체크 아웃을 한 뒤 택시를 타고 서둘러 공항으로 갔다. 항로가 콜카타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더 큰 파동을 일으키며 그와의 좁혀지는 거리 속 느껴지는 벅찬 환희 속 우리의 만남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길만을 기도했다.
언제나 눈에 띄었던 훤칠하고 멋진 그의 의연한 모습이 한눈에 담겼다. 저 멀리 수줍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그를 발견하고 나도 화답하듯 씩씩하게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우리를 둘러싼 콜카타의 먼지 가득한 공기가 왠지 상큼하게 정화되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는 나를 끌어당겨 힘껏 안아주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서로의 품 속에서 순간의 온기를 나누며 눈 녹듯이 그동안의 힘들고 어려웠던 감정들이 사라지고 사랑과 낭만이라는 감정으로 재탄생하는 경이로운 포옹이었다. 그를 진정시키며 밤새도록 자리를 함께했던 서벵골 주지사 ADC 육군 친구는 그런 우리를 흐뭇한 눈으로 지켜봤다. 잠깐 기다리라며 차로 돌아간 그는 나에게 큼지막한 꽃다발을 가져다주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했었다. 공항을 떠나 그의 부모님을 뵀던 그때의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우리는 잠깐의 어색함도 느낄 수 없었던 기적을 맛봤다.
그다음 날은 한참 두르가 푸자 축제가 열리고 있었을 때였다. 이때 처음으로, 결혼 후 지금은 나의 친한 친구가 된 그의 어릴 적 친구들과 만나게 됐다. 두르가 푸자 기간은 우리나라의 설날과 추석처럼 음력에 따라 진행되며 보통 10일 정도에 걸쳐 다채로운 문화 행사와 종교의식으로 꾸며진다. 벵골인들이 온 정성과 영혼으로 숭배하는 힌두 여신 두르가는 딸이자, 엄마이자, 전사이자 악마를 물리친 용사와 같은 위대한 인물로 종교적 의미와 세속적인 메시지 그리고 오래된 예술적 관행과 현대 예술의 혁신을 융화하며, 힌두교인들은 여신 두르가를 둘러싼 모든 상징성과 신화에 기반해 축제를 탄생시킨다. 인도의 또 다른 최대 명절인 디왈리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선이 악을 이긴다'는 힌두교 신앙의 근간을 떠받치는 마(Mother) 두르가는 황소 형상의 악마 '마히샤수라(Mahishasura)'를 격퇴함으로써 그 기반을 더 탄탄히 했다. 두르가 여신은 신성한 어머니이자 딸의 이미지를 갖고 4명의 자녀들(Lakshmi, Saraswati, Ganesh and Kartik)과 함께 대지의 고향으로 돌아온 5일 동안을 기념하는 것에서 두르가 푸자가 기원했다. 축제 기간 내내 콜카타의 밤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길거리를 수놓은 빛나는 설치물과 형형색색 공예가 및 장인들의 예술혼이 느껴지는 두르가 여신과 그를 따르는 다른 신들의 모습이 견고하게 빚어진 판달(Pandal) 조각상 주변에는 두르가 여신을 위한 벵골인의 깊은 염원과 숭고한 감정, 콜카타의 문화적 정체성의 뼈대를 이루는 그들의 자부심과 긍지가 어우러진 뜨거운 열기가 남아있다.
수천 가지가 넘는 각자의 전통과 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변화무쌍한 판달들은 두르가 푸자의 시작을 알린다. 단순히 먹고 즐기는 축제만이 아닌 창작 예술과 독특한 전시를 통한 전통계승이기도 하며 도시 전체를 공공예술 카니발로 변모시킨다는 점에서 지역 공동체의 발전을 꾀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두르가 여신의 이야기를 대표하는 다양한 테마, 예술 그리고 메시지를 담은 전통 예술과 수공예품이 모든 축제 공간에서 콜카타의 대표 축제라는 타이틀에 알맞게 큰 사기를 떨치며 도시의 모든 지역과 동네에 활기찬 분위기를 형성해 낸다. 이 과정에서 협업 예술가 및 다수의 디자이너들이 성장하는 동력을 얻기도 한다. 축제는 여러 집단의 노력의 총집합체이며 종교적 믿음을 넘어서 정성스러운 연행과 헌신, 축제를 즐기는 국민들의 향연, 지역 경제와 국민의 삶으로 이어지며 두루 영향을 미친다.
벵골리 친구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만났다. 인도의 각 대도시권에 흩어져 일하고 있는 학창 시절 친구들도 축제 때만큼은 타협불가한 연차를 내고 콜카타로 모인다. 현재는 인도 국내 저비용항공사 Indigo에서 비행을 하고 있는 조종사 친구, PwC 컨설팅 회사에서 PR을 담당하고 있는 나의 Bridesmaid였던 NJ, 그리고 제약회사에 재직 중인 그녀의 사촌동생과 함께 여러 동네마다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설치된 판달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니며(Pandal Hopping) 축제의 열기 속에 흠뻑 빠져 들었다.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두르가 여신의 형상을 만드는 조각가들은 신성하게 여겨지는 강가의 줄기에 해당하는 콜카타를 에워싼 후글리 강에서부터 흙을 조달해서 그 흙에서부터 아이돌을 정성스럽게 빚어낸다. 축제기간 마지막 의식에 해당하는 Durga Visarjan 날에 춤추고 기도를 올리는 열성적인 신자들에 둘러싸인 채 두르가 아이돌은 강가 물속으로 깊이 잠기며 우리에게 작별을 고한다. 벵골인들은 두르가 여신을 맞이하는 흥분으로 들썩이며 보낸 날들의 끝에 찾아온 헤어짐에 눈물을 보이며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 푸자의 시작과 끝을 모두 신성한 강에서 맞이한다. 판달 홉핑을 마치고 다음날 Saptami(음력 2주 7번째 날에 해당하는 날)를 맞이하여 친구가 사는 동네 블록에 설치된 판달을 보고 푸자(종교의식)에 참여했다. 안젤리(Anjali), 푸자를 진행하는 사제의 축복을 받고 신자들이 바친 공물을 나누는 시간에 기도를 올렸다. 벵골리 전통 의상에 해당하는 금박(Zari)으로 입힌 가장자리 천과 그 밑단, 빨간색과 하얀색의 단아하고 세련된 조화가 돋보이는 코튼 실크 사리에 친구 어머니가 빌려주신 벵골 여성을 상징하는 금 체인과 옥으로 된 목걸이를 착장하고 두르가 여신을 숭배하는 벵골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문화의 깊이에 마음을 함께했다.
시내 쇼핑가의 벵골리 전통 식당, Sonar Tori를 찾아 축제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벵골인들은 먹는 즐거움에 타협하지 않는다. 잔치에 어떻게 훌륭한 음식이 빠질 수 있겠는가. 다양한 음식을 혼합해 한 쟁반에 두고 골고루 골라 먹는 벵골리 탈리(Thali)를 주문했다. 남인도에서는 보통 바나나 잎에 음식이 제공되며 북인도에서는 금속 쟁반을 사용한다. 불에 오래 익혀 입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양고기의 감칠맛, 새콤달콤한 머스터드소스에 베어 든 남아시아 잉어(Catla) 커리, 약간의 다진 마늘과 생강을 넣고 인도식 비정제 버터 기(Ghee)에 버무려 고소함을 더하고 자연스러운 단맛이 있는 양배추와 완두콩과 함께 가람 마살라(Garam Masala)의 매콤함이 베어든 새우 커리 반드하코피르 곤토(Bandhakopi'r Ghonto), 전통 채소 요리로 여주, 고구마, 덜 익은 바나나, 가지 그리고 감자가 들어가는 착 감기는 고소한 맛이 매력적인 슉토(Shukto), 다진 닭고기 살에 각종 향신료를 넣어 완자처럼 뭉쳐 만든 케밥(Kebab)까지 그 종류에 따라 색깔과 맛이 다채롭다.
벵골인들이 사랑하는 감자가 들어간 여러 음식들이 인상적이었다. 삶은 감자를 네모나게 잘라 양귀비의 씨를 넣고 약간의 머스터드 오일, 큐민, 갈아 넣은 청고추에 버무린 감자요리 알루 포스토(Aloo Posto) 그리고 한국 감자전과 비슷한 알루 칠라(Aloo Cheela)가 별미였다. 언제나 그렇듯 달콤함을 유혹을 뿌리치지 않고 후식으로 선택한 설탕물 줄줄 떨어지는 라스굴라(Rasgulla)와 인도 디핑 소스에 해당하는 달달한 망고 쳐트니(Chutney)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설탕시럽에 듬뿍 절여진 굴랍 자문(Gulab Jamun)까지 섭렵하고 나서야 대장정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하는 모든 여정이 서부 벵골 문화 기행이 됐다. 현지인들과 같이 즐긴 그들의 숨결이 깃든 두르가 푸자 축제는 내겐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 또한 그들처럼 '고향'에 온 것 같은 시간이었다.
다음날이 밝고 나는 그의 손을 붙잡고 콜카타 라즈 바반(Raj Bhavan)으로 발걸음을 했다. 라즈는 '왕'을 뜻하고 바반은 '거주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이곳은 서벵골 주지사의 공식 거처이다. 식민 시기 영국령 인도의 수도는 콜카타였으며 통치 기간 이곳은 총독 관저로 쓰였다. 건축물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식민 시절의 흔적이 두 눈을 가득 채우고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됐다. 이곳에서 서벵골 주지사(Govenor)의 ADC로 일하고 있는 친구의 초대로 관저를 방문할 수 있었다.
날씨가 화창해서 건물의 윤곽과 디테일이 더 선명하게 잡혔다. 에덴 정원 근처에 위치한 바반은 식민기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졌으며 영국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때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해당한다.
동의를 구하고 건물 내부 사진을 찍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사명감과 소명의식은 어떨지 잠시 그 무게를 헤아려 보았다. 높은 통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그날따라 더 따스하며 눈부시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멀리 있어도 마음만큼은 그의 정성이 담긴 보살핌과 애정 어린 챙김으로 또 다른 '고향'이 될 수도 있는, 이곳에 강한 끌림을 느끼며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인도 국민의 감정적 표상인 늦은 오후가 되면 생각나는 짜이. 독특한 향신료의 맛과 향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비스킷을 곁들여 진한 우유가 담겨 깊이 우러난 차를 마시며 우리는 지난날을 회상했고 역사적인 공간에서 우리들은 충만히 행복한 순간을 만끽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빈티지 가구가 배치된 응접실과 그 옆으로 이어지는 식사 공간.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고 앤티크함이 인상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해가 저물도록 계속된 그들의 대화에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집중했다. 용맹한 군인을 꿈꾸며 보낸 사관학교시절의 경험담을 들으며 그의 패기 넘치는 20대 초반은 어땠는지 넌지시 짐작하며 상상의 나레를 펼칠 수 있었다. 그의 영광스러운 날들에 함께하는 기분은 썩 좋았다. 나의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맺어갈 인연들도, 인사할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우리는 서로의 관계를 확장하며 새 출발을 했고 다시 한번 용기 내서 각자의 인생에 서로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하루하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역동적인 일정을 수행했다.
콜카타 시내의 5성급 럭셔리 호텔, Indian Tobacco Company 소유인 ITC 로열 벵갈 호텔에서 ADC 친구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근사한 라즈 바반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하룻밤을 선물한 친구에게 나도 뭔가를 대접하고 싶었다. 올 데이 다이닝 식사가 가능한 로비층의 Grand Market Pavilion에서 뷔페식으로 차려진 일요일 브런치를 선택했다. 샴페인 및 기타 칵테일 한 잔을 포함해서 오만원 안팎이었다. 시내 중심에서 북쪽 콜카타에 위치한 시부모님 댁까지 가기 위해서는 플라이 오버를 지나야 한다. 그때마다 보이는 도시를 관통하는 하늘에 우뚝 솟은 첨탑의 모습을 한 거대한 크기와 높이를 자랑하는 ITC 건물은 아주 인상적인 랜드마크이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Campari를 마시고 살짝 올라오는 취기에 식사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했다. 배를 두둑이 채우고 나니 콜카타의 광활한 풍경이 더욱 멋지게 나를 반기고 있었다. 호텔 포치에서 델리 근무 시절, 인도 공화국의 날 퍼레이드 행사에 함께 갔던 남자 친구의 학교 친구 Sachin의 가족을 만났다. 마침 같은 장소에서 가족 식사가 있다고 해서 오던 중이었던 그를 기다려서 인사를 나누고자 했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인도 대통령 ADC였던 훌륭한 남자친구 덕분에 많은 정부 행사에 참여함과 동시에 다수의 행사에서 만나 나에게도 특별한 존재가 된 친구들을 한참 잊고 살았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시간이 지나서 나의 일부인 그들과 다시 연결될 수 있음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인도에서 살아갈 수도 있는 내 운명을 예감하며, 오늘을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기고 그가 약속한 그의 일터가 있는 인도 공군 부대로 이동해 우리가 함께할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