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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작가 Jun 18. 2022

<아가씨> 나의 위대한 감독, 나의 소설가, 박찬욱

<아가씨 / The Handmaiden> (2016) 리뷰

※영화 '아가씨'와 '박쥐'의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 영화를 거의 안 봤다. 엄밀히 따지자면 못 본 것이 맞겠다. 그분이나 그분 영화를 싫어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무서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으로 감상했던 박찬욱 감독 영화가 '박쥐'였다.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냐, 어쩔티비.' 하실 수도 있는데, 나에겐 이게 절대로 작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았었다. 박쥐를 처음 감상했을 때 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부모님이 맞벌이셨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 가기 전 1, 2시간 정도 집에서 종종 영화를 봤었는데, 하필 그날은 박쥐가 나왔다.


신부(송강호)가 주인공인데, 뱀파이어가 돼서 피를 마시고 산다. 그리고 그 신부는 친구의 아내와 바람이 나서 친구를 죽인다. 그리고 그 죽은 친구의 엄마는 식물인간이 된다. 토할 것 같았다. 아무리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지만 정신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후 시간이 좀 흘러 중학생이 된 나는 박찬욱 감독 영화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졌다. 어느 날 '친절한 금자 씨'가 방영되고 있길래 채널을 돌리던 나는 리모컨에서 손을 잠시 뗐다. 30초도 지나지 않아 최민식의 목이 개의 몸통에 붙은 채로 썰매에 묶여있었고, 이영애가 그 썰매를 절벽까지 끌고 간 다음, 권총으로 최민식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다시금 손에 리모컨을 쥐었고, 채널을 돌렸다. 그렇게 나는 박찬욱 감독 영화와 멀어져 갔다.


성인이 되어 다시 감상한 박쥐는 여전히 내게 불쾌한 느낌을 안겼지만, 이젠 그것을 영화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역시 영상물 관람 등급 제도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사실 나는 동성애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철저한 이성애자라 그런지, 그들의 감정과 세계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묻고 더블로 박찬욱 감독 작품 특유의 오감을 자극하는 불쾌함까지. '아가씨'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또 이번 재개봉 작품은 극장판에 20분이 추가된 확장판이라 고통스러운 세 시간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도 했었는데, 기우였다. 아가씨는 동성애와 박찬욱 감독에 대한 나의 편견을 완벽하게 부숴버렸다.


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잘 쓰인 소설은 읽으면서 그 장면이 머릿속에 마음껏 그려질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그 장면들이 많은 이들에게 최대한 비슷비슷하게 그려질 수 있게 만들어야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아가씨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다. 그 자체로 잘 쓰인 한 편의 소설이다. 잘 쓰인 소설은 읽으면서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했는데, 난 아가씨를 보면서 문장들이 그려졌다. 찾아보니 '핑거스미스'라는 원작이 따로 있다고 한다. 이 읽어보지도 않은 소설의 문장, 문체들이 머릿속에 벚꽃나무처럼 그려졌고, '원작이 아가씨를 따라올 수 있을까'라는 건방진 생각도 감히 해봤다.

정말 이 장면이 제일 야했다.

아가씨는 그만큼 아름다운 영화다. 카메라의 구도, 배경, 연출, 색감, 음악,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베드신마저 아름답다. 동성 간의 베드신은 자칫하면 관객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데, 박찬욱 감독은 그 마저도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미술적인 면이 우수한 덕분도 있겠지만, 추잡하고 거짓된 남성들 사이에서 피어오른 그들의 진실된 사랑이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분명하게 야한 장면이지만 야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정말 야하다고 느꼈던 건 숙희와 히데코의 첫 만남 이후 그들 사이에 싹튼 미묘한 분위기였다.

아름다운 장면

숙희와 히데코가 서로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차갑고 어두운 감옥 같던 이모부의 저택을 넘어 밝은 햇살을 향해 함께 들판을 가로지르며 뛰어가는 장면 또한 굉장히 아름다웠는데, 그 장면이 숙희와 히데코가 서로를 향해 소리 내며 자유롭게 웃는 유일한 장면이었기에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이후 숙희와 히데코는 백작을 따라 안개 자욱한 강을 지나 일본으로 건너간다.


난 이 백작의 캐릭터와 그의 결말이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서 숙희와 히데코가 이런 말을 한다. '사기꾼도 사랑을 아나?' 그는 히데코와 처음 만난 순간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알았지만, 그것을 아름답고 진실되게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의 인생은 거짓으로 가득했고, 왜곡된 성관념으로 물들었으니. 그럼에도 최후엔 숙희와 히데코를 끝까지 쫓으려는 코우즈키를 독살하며 그들의 사랑을 지켜준다. 그리고 자신도 수은을 들이마시며 숨이 멎기 직전까지 히데코를 떠올린다.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그의 진심이 드러난 대목이다. 저승에서 반성하길. 숙희와 히데코는 계속해서 행복하길.


아가씨도 좋지만..박찬욱 아저씨도 좋아요

 제목이 '아가씨'냐는 질문에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저씨들이 앞장서 오염시킨  명사의 본래의 아름다움을 돌려주리라." 영화의 궤를 이보다 더 잘 살린 표현이 어디 있을까. 박찬욱 감독은 세상에 아가씨를 선보이며 그의 의도를 완벽히 관철시켰다. 그의 신작 '헤어질 결심' 더욱 기대될 뿐이다.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건 오직 예고편에서부터 드러나는 독특한 미장센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미장센은 물론이고 생각지도 못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위대한 감독, 나의 소설가. 박찬욱 감독. 나의 편견을 무참히 짓밟아줘서 감사합니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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