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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작가 Aug 21. 2022

인간의 오만함과, 사랑에 대하여 <놉 / NOPE>

<놉 / NOPE> (2022) 분석 리뷰

※영화 <놉>의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든 생각은 '제목 참 특이하네'였다. 그리고 어떤 내용일지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겟아웃>과 <어스>로 두 번뿐이지만 매번 개성 넘치는 신선함을 가져다줬던 조던 필 감독이었기에, 이번엔 또 어떤 충격이 뇌리에 가해질지 기대가 됐다. 특이한 제목만큼, <놉>의 전개 방식은 <겟아웃>과 <어스>와도 사뭇 다르다. 영화는 등장하는 동물들의 이름들로 챕터를 나누어 그 동물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주며 진행된다. 이에 이번 리뷰는 <놉>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각각 분석하여 작성해보고자 한다.


오만하지 말지어다..

주프

<놉>은 '고디'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출연하는 미국의 한 TV쇼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디는 자신이 선물로 받은 풍선을 보고 흥분하여 어린 주프를 제외한 모두를 공격한다. 고디는 밑에 숨어서 덮개 너머로 두려움에 떨며 지켜볼 수밖에 없던 주프를 발견하고 접근한다. 이때 고디는 갑자기 차분해지며 주프에게 주먹 인사, 일명 fist bump를 시도하는데, 주프가 이를 받아주는 순간, 고디는 총을 맞고 죽는다. 주프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그 자체로 '나쁜 기적'이었다. 현장에 있던 거의 모든 이들이 침팬지 한 마리에게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정작 본인은 단순히 살아남았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교감까지 성공했으니 말이다.


또한 이때 주프의 눈에 나쁜 기적의 상징과도 같은 물체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바로 그 참극 속에서 기이하게 하늘을 가리키며 서있던 신발 한 짝이다. 정말 기괴하지 않은가? 그 아찔한 참극 속에서 평소엔 그렇게 서있기도 힘든 신발이 안정감 있게 솟아있는 모습이. 아마 주프는 그 신발을 나쁜 기적을 겪은 자신을 '선택받은 존재'로 믿게끔 만들어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방에 부적 마냥 보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믿음은 결국 오만함이자 패착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길들일 수 없는 동물도 있는 법이다.


아저씨 존경합니다.

앤틀러스 홀스트

앤틀러스는 피사체를 화면에 담아내는 행위와 피사체를 담는 물체인 눈, 카메라 자체에도 집착을 보이는 인물이다. 에메랄드와 통화를 할 때 그가 반복해서 보고 있던 것은 동물이 다른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는 영상과 동물들의 눈의 클로즈업 영상이라는 점이 이를 잘 드러낸다. 이에 지구 최대의 볼거리인 진 재킷의 겉모습만 담기에는 앤틀러스의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카메라에 담길 원했고, 진 재킷 속에 스스로 빨려 들어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영상을 찍는 진정한 예술적 광기를 보여준다.


놉 / 진 재킷

진 재킷을 보고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이 많이 생각났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소리로 인간들은 유혹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마녀이다. 물론 아름다운 노래 가락은 아니지만, 괴이한 소리로 비행을 하며 위를 올려다보고 싶게끔 인간을 자극한 뒤, 공포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무시무시한 힘으로 빨아들이는 모습이 세이렌과 많이 겹쳐 보이며 꽤나 공포스럽다. 또한 진 재킷 근처에 가면 들을 수 있는 귀를 찌를 듯한 괴이한 소리의 정체가 비행할 때 나는 소리도, 전자 공격을 할 때 나는 소리도 아닌 빨려 들어간 이들의 끔찍한 비명 소리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이는 가히 충격적이다.

성경에 묘사된 천사의 모습

비슷한 맥락으로, 필자는 진 재킷이 단순한 외계 생물체가 아닌 천사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진 재킷은 두 개의 외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단순한 비행접시 형태이고 두 번째의 모습이 마치 성경에 묘사된 천사의 모습과 흡사하다. 고대 벽화에 UFO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과 성경에 천사에 대해 적혀 있는 것은, 아마도 인간들이 고대부터 지구에 정착해 살고 있던 진 재킷의 모습을 보고 오기를 한 것이 아닐까. 조던 필 감독은 천사, 악마와 UFO로 불리던 존재들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며 'NOPE'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 누구도 헤이우드를 건들면 뭐 되는 거야!

OJ와 에메랄드

필자는 <놉>이 중반부까지는 공포 장르로 느껴졌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동생 에메랄드에 대한 오빠 OJ의 사랑과 흑인들의 위대한 승리극을 담은 작품으로 느껴졌다. 에메랄드가 "어렸을 때 드디어 내게 첫 말이 생기는구나 싶었는데 아버지는 그 말을 오빠한테 줘버렸고 내겐 눈길 한 번 없으셨지. 하지만 오빠는 날 항상 봐줬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그녀의 아버지는 딸인 그녀보다 아들인 OJ를 더 아낀 듯하다. 반면 OJ는 이 때문에 동생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고 누구보다 아꼈기에, 그것을 '진 재킷'이라고 이름 붙인다. 진 재킷은 원래 에메랄드가 처음으로 가질 예정이었던 말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OJ는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찰나, 자신을 '희생'하며 에메랄드에게 진 재킷을 찍을 기회를 쥐어준다. 그리고 진 재킷의 모습을 담는 데 성공한 에메랄드의 눈에 들어온 OJ의 모습은 마치 과거 영화의 시초가 된 작품 '달리는 말'에서의 말을 타고 있는 흑인 남성을 연상케 한다. 이는 OJ가 없었다면 진 재킷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없었음을 나타낸다. 결국 에메랄드가 찍은 진 재킷의 사진은, OJ의 희생이 담긴 선물이며 그 자체로 나쁜 기적인 것이다.

기억할게!

여기서 왜 '희생'이라는 표현을 썼는가 하면, 필자는 마지막에 OJ가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에메랄드가 본 말을 탄 OJ의 모습 위로 'OUT YONDER'이란 팻말이 적혀있는데, 이는 자막을 보면 '저 머나먼 곳'이라는 뜻이다. '살아 돌아오지 못했는데 왜 그러한 연출을 보여준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말을 타고 있는 연기 속의 OJ의 모습이 에메랄드가 그를 기억하는 방식임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그녀의 고조할아버지이자, '달리는 말'에서의 흑인 기수를 기억하듯이 말이다.


이를 토대로 <놉>을 재정립해보면, 이것은 영화 역사를 재정립하는 흑인들의 이야기와 동일시된다. 할리우드에서 역사가 가장 긴 서부극 장르를 <놉>이 종종 차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겉으로는 흑인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우기만 하고, 메시지는 거의 담지 않은 듯 보이지만, 사실 조던 필 감독의 작품들 중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조던 필 감독의 이 원대한 야심에 박수를 보낸다.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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