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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작가 Dec 29. 2022

나는 이번 속편이 하나도 기대되지 않았다

<아바타: 물의 길> (2022) 리뷰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의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2009년, 할리우드의 대표적 상업영화 거장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라는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찬사. 찬사. 찬사. <아바타>는 최초의 3d 기술을 상영에 접목시키며 전 세계적인 흥행 신드롬을 일구어냈다. 물론 나도 재밌게 감상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이 영화에 왜 이렇게까지 열광하는지, 왜들 그렇게 충격까지 받는 건지 엄청났던 흥행 기록이 무색하게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시로서 <아바타>의 cg 수준과 3d 기술이 그렇게 대단한지도 모를 만큼 어렸고, 판도라 행성의 자연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감수성이 부족했던 것도 맞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어서였던 것 같다. 나로서는 몸은 온통 파란색에다 감정표현도 이상하게 하는 나비족들에게 도통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판도라의 오감색색의 자연이 신비하고 아름답다고 해도, 내겐 그저 인간이 아닌 낯선 외계인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던 것이다. 아니면 어쩌면 그때부터 약간의 반골기질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아바타: 물의 길> 예고편이 공개되고, 개봉 소식과 함께 기대에 한껏 들뜬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올 때도 나는 시큰둥했다. 속편 개봉에 앞서 1편이 좋은 화질로 리마스터링 되어 재개봉했을 때도 보러 가지 않았다. 학기 중이라 바빴던 것도 맞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서 보러 가고 싶을 만큼의 마음이 없었던 이유가 더 크다. 아무리 바빠도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어떻게든 보러 가는 나니까. 각설하고, 종강한 날에 바로 돌비시네마로 달려갔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면서 왜 거금을 들여 돌비시네마까지 갔니'라고 물으신다면, 영화를 제대로 좋아하기 시작할 때부터 생긴 일종의 습관 때문인데, 나는 대작 블록버스터가 개봉했을 때 최상급 포맷으로 감상하지 않으면 눈에 가시가 돋는 병에 걸렸다. 


심야 시간이었음에도 돌비시네마 내부가 꽉 차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본디 '시네마'라는 단어는 상업적 가치에 역사적, 심미적 가치들이 적용이 되어 많은 관객들이 한 장소에 모여 관람하는 행태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전에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세 시간이 훌쩍 넘는 긴 러닝타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그날 내가 본 것은 '시네마'였음을.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그렇게 선명하고 부드럽고 실사 같았던 CG는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사실은 어딘가에서 나비족과 판도라 행성이 실제로 존재해서, 카메론이 정말 우리들 모르게 다녀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명했다. 3d였음에도 말이다. 이 충격을 13년 전에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CG의 향연은 나를 금세 판도라 행성으로 데려다주었고, 나는 어느새 설리 가족 이야기에 녹아들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존재

우리에게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처럼 판도라 행성에도 시간이 꽤 흘렀다. 1편이 장애를 극복한 해병 제이크 설리의 전사로서의 성장을 다뤘다면, 이번 속편은 설리의 아버지로서의 성장을 다룬다. 영화는 설리와 네이티리의 장남 네테이얌의 탄생을 비추며 시작한다. 물론 네이티리에게도 그랬겠지만, 첫째 네테이얌의 탄생은 설리에게 의미가 더욱 깊었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었지만, 외계 종족과 진실된 사랑에 빠져 맺은 첫 결실이자 자신을 처음으로 아버지란 존재로 만들어 준 대상이니 말이다. 아무리 자식새끼 눈에 집어넣어도 안 아프다지만, 키리, 로아크, 투크까지 식구가 늘어날수록 커지는 책임감은 위대한 토루크 막토인 설리조차 막지 못했다.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아들들을 강인한 전사로 키우려 했고, 꾸중은 늘어만 갔다. 그리고 아버지를 닮아 강인했던 네테이얌은 동생을 지키려다 죽었다. 지치고 상실감에 빠진 설리가 모든 것을 놓으려 할 때 말썽쟁이로만 취급했던 둘째 로아크와, 그의 친구 파야칸이 그를 붙잡는다. 그리고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그제야 설리는 내뱉는다.


 "I see you."


이는 아들에 대한 인정과 사랑이었고, 아버지의 진심이었다. 1편에서는 단순히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는 고백으로만 느껴지는 대사였지만, 이번 편에서는 설리의 아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 담긴 이 구절이 새삼 슬프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설리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는 설리와 네이티리가 영혼의 나무와 교감하며 네테이얌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기 때의 네테이얌의 모습과 조금 컸을 때의 네테이얌의 모습이 번갈아가며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왠지 이 대목이 자식들이 아무리 커가도 언제나 아기처럼 예쁘고 귀여운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부모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 같아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설리와 아들의 이러한 관계는 스파이더와 쿼리치 대령과의 관계와도 비슷한 듯 다르게 비쳐 흥미롭다. 설리와 쿼리치 모두 본인의 아들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다만, 설리는 아들과 더욱 끈끈해졌고, 쿼리치는 아들에게 버림받는다. 사견이지만 쿼리치가 다음 편에도 악당으로 등장할 것 같진 않고, 등장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아들 스파이더 편으로 돌아서게 될 것 같다. 스파이더가 자랄 동안 부자간의 유대를 쌓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결국 아들의 편으로 돌아선 <스타워즈> 시리즈의 다스베이더처럼, 너무나도 굵직한 선례가 할리우드 역사에 존재하니 말이다. 본인만의 스타워즈를 창조하고 있는 카메론으로서는 충분히 진행시킬만한 전개일 것이다. 


바다는 주고, 바다는 취한다

유가 있으면 무가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으며, 삶이 있으면 죽음 또한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불교적 교리와도 접목되어 있는 듯한 이러한 관념은 카메론이 <아바타> 시리즈에서 추구하고 있는 자연관이다. 자연은 이치에 딱 맞아떨어지며, 욕심을 부리는 법이 없다. 허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언제나 욕심을 선택하며 자신들이 자연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영생을 위한 툴쿤 사냥이 <아바타: 물의 길>에서 제시하는 그 예다. 제이크 설리가 '판도라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하는 것과 반대로 툴쿤 사냥꾼이 가슴에 작살이 꽂힌 채 도망가는 툴쿤의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것은 인류가 얼마나 지독한 군상들인지 보여준다. 때문에 이후 자신이 사냥했던 툴쿤처럼 똑같이 잘려나가는 사냥꾼의 팔을 보며 우리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자연은, 인류의 오만함으로 덮을 수 없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있다. 키리와 에이와의 영적인 접촉을 두고 뇌전증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과학이 차히크의 치료법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구의 자연을 보고 있자면, 경이로움에 마음이 벅차오를 때가 있다. <아바타>는 그런 영화다. 3시간 넘게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고 있자면, 이것은 외계의 이야기가 아닌 곧 우리들의 이야기임이 느껴진다. 1편이 왜 그렇게까지 흥행했는지 몰랐던 내가, 2편에서 충격과 감동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편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한 해를 마무리함으로써 손색없는 작품이었다. <아바타: 물의 길>은 일렁이는 바다처럼 굉장히 감정적인 영화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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