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은 중요하니까
책을 고르는 기준은 제각각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라, 누구나 읽어 봐야 할 명작이라, 혹은 베스트셀러라서. 간혹 내용과는 관련 없이 표지만으로 구매 욕구가 드는 책도 있다. 책의 내용이 내 취향에 맞을지 가늠이 가지 않아도 일단 표지가 마음에 들면 소장하고 싶어 진다. 저 책을 읽는 나... 멋져 보일 것만 같다.
서점에서 알바를 하던 스물한 살, 평대를 관리하는 것이 내 업무 중 하나였다. 판매 부수와 출시일을 기준으로 관리하는 평대를 제외하면 나의 재량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었다. 어린 마음에 취향껏 예쁜 책을 골라 어울리게 배치했더니 정말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었다. 책 표지의 영향만은 아니겠지만 표지가 주는 힘을 느낀 순간이었다.
블로그에 올리는 책 리뷰에 표지를 다루기 시작한 것도 그 이유였다. 중요한 건 내용이기에 표지는 부차적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오랜만에 책을 읽으려 서점을 방문한 사람에게도, 서재를 꾸미려는 사람에게도 표지는 중요하다. 비단 표지뿐 아니라 사이즈와 제본 방식도 책 구매에 영향을 끼친다. 정확히는, 책의 생김새.
도서가 어떤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나는 <외출용 책> 타이틀을 부여한다. 이동하는 지하철이나 카페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무거운 책은 함께할 수 없다. 튼튼한 종이의 한국 책은 한 권으로도 존재감이 엄청나 가뜩이나 짐이 많은 나에겐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내용으로 따지자면 단편이거나 문학이 아닌 편이 좋다. 중심잡기 바쁜 지하철에서 시의 울림을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에 시집도 아니다.
외출 조건은 대체로 책 외적인 요인에 있다. 무게는 적어야 하고 부피가 큰 책도 부담이다. 너무 얇은 책은 헤질 걱정이 있고, 두꺼운 양장본은 무게가 나간다. 적당한 사이즈의 책은 만나기 어렵고 문학책은 대개 두께가 있는 편이라 아예 이동용 책을 따로 구입하곤 한다. 이러한 니즈에 따라 출판사도 휴대성을 강조하는 시리즈를 내곤 한다. 대표적으로 쏜살문고가 떠오른다. 내용이 길지 않은 작품으로 가벼운 책을 만들었고, 동네 서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특별 에디션을 출시하여 작은 책방에 들를 기회를 주었다.
쏜살문고 시리즈는 폭이 좁고 긴 편이다. 분량은 짧지만 깊이감 있는 책을 추렸다고 한다. 두께는 책마다 다르지만 높이가 일정해서 책장에 꽂아두기에 좋고, 고전부터 수필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선호하는 장르를 고를 수 있어 편하다. 책의 분위기에 맞춰 표지 디자인은 다르지만 옆면 레이아웃은 정해져 있다. 제목과 지은이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고,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담은 쏜살문고의 로고 위치도 정해져 있다. 시리즈인 듯 아닌 듯 모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정해진 규격과 책마다 다른 표지 디자인은 통일성과 독창성을 함께 갖추어 표지 보는 맛이 있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낸 <아무튼> 시리즈도 좋다. 각 작가님이 본인의 관심사에 대해 다룬다는 점에서 주제가 다양하다. 여름부터 연필, 떡볶이부터 비건까지 폭이 넓어서 접근성이 좋고, 저자의 직업 또한 다양하다. 책을 읽다 보면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기분이 들어 기분도 좋아진다. 표지와 폰트는 정해진 규격 없이 자유롭지만 크기는 모두 같다. 에세이인 만큼 내용이 무겁지 않고 작가와 대화하는 마음으로 읽다 보면 금세 완독 한다. 휴대하기 좋다는 점과 더불어 누군가의 취향을 서로를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어 아끼게 된다.
새로 출시된 민음사의 <탐구 시리즈> 또한 외출용이다.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공개된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포함해서 총 3권이 출시되었다. 빨간 표지에 깔끔한 레이아웃과 함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작은 사이즈다. 쏜살문고의 책과 비교해봐도 확연히 작다. 두께는 더 나가지만 일단 크기가 작으니 가방에 넣기에 부담이 없다. 젊은 저자가 인문학을 보다 쉽게 풀어나간다는 콘셉트의 <탐구 시리즈>는 감정을 이입할 필요 없이 사실 관계를 받아들이면 되니 틈틈이 봐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동시대의 자료를 참고한 만큼 시대상이 많이 반영된 편이라 불편함 없이 새로운 지식을 만나볼 수 있다. 양장본이지만 무겁지 않아 부담이 없고, 가방 속에서 책이 상할 염려가 준다.
<외출용 책>은 희귀하다. 보면 사고 싶어 진다. 자주 꺼내 읽으면 책 내용이 쉽게 연결되니 이해도가 높아지고 독서량도 많아진다. 서점의 책 일부만이 외출에 적합하다는 것은 나에게 참 아쉬운 사실이다. 심미적인 부분 외에도 책의 생김새가 하는 역할은 작지 않다. 생김새가 마음에 드는 시리즈라면 자연히 다음 책에 관심이 가고, 외출에 적합하다는 이유만으로 구매욕구가 든다. 늘 함께 할 수 있는 외출용 책이 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