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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Mar 14. 2024

공단 유기견 알파

3월이 오면


반려견 키우는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 없다는 말 이제는 믿지 않겠다. 착한 사람은 가족을 아스팔트 바닥에 버리진 않는다.


공장 주변에 가끔 출몰하는 하얀 떠돌이 개 한 마리. 소형견보다는 조금 크고 중형견보다는 훨씬 작은, 견종이 모호한 발바리다. 유기견 신고를 할까 고민해 봤지만 발바리 입장에서 보면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가끔 빈 하늘을 보며 하울링을 할 때면 아무리 작은 개라도 늑대의 후손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녀석의 이름을 영화 '알파:위대한 여정'의 알파라고 지었다.



알파의 봄날 


혼자 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던  알파가 오늘은 혼자가 아니다. 앙증맞은 몰티즈 한 마리가 부지런히 알파를 따라다닌다.

관리받은 듯 하늘거리는 갈색 털에 반짝이는 목걸이까지, 알파와는 달리 고급스러운 외모다.

알파가 본격적으로 유혹을 한다.

버려진 치킨 박스에서 다리뼈 하나를 찾아내 몰티즈 앞에 내려놓는다. 몰티즈는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뼈를 씹는다. 가끔은 벌러덩 배를 드러내고 애교도 부리며 서로가 뒤엉켜 장난을 친다. 알파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그날 나는 부끄럽게도 보고 말았다.

벌건 대낮 알파의 낯 뜨거운 정사를, 발바리와 몰티즈가 결혼할 수 있다는 것도 그날 알았다.

강아지 잃어버린 견주 마음이야 어떻든 알파에겐 오늘이 잔칫날이다.



지명수배


자주 들르던 편의점에 전단지가 붙어있다.

'반려견 찾습니다. 견종:몰티즈 이름:코코 성별:여 나이:3세 아래로 연락 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사진을 보니 알파와 같이 다니던 강아지가 틀림없다. 편의점 알바생이 벌써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날 오후 비 내리는 공장 처마 밑에 알파가 앉아있고 코코가 알파의 꼬리를 물고 흔들며 장난을 친다. 알파는 반응하지 않고 무심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코코를 데리고 뽀송뽀송한 지게차 밑으로 몸을 숨겼다. 전봇대의 코코 찾는 전단지가 떨어져 하수구로 흘러간다.

야근이 끝나는 밤 아홉 시, 비는 그쳤다. 그때까지도 알파는 코코와 함께 공단의 기름때 낀 2차선 도로를 뛰어다녔다. 오렌지빛 외등이 그들에게 긴 그림자로 따라다닌다.


다음날 편의점 알바생이 활짝 웃으며 말한다. 아침 일찍 주인이 와서 코코를 데려갔다고 한다.

주인에게 길들여진 코코를 잡기엔 그리 어려움이 없었나 보다. 코코의 주인이 사례금 오십만 원을 주고 갔다며 알바생이 커피를 샀다.


생각할수록 혼자 남은 알파가 가엾어진다.

백번을 망설이다 전단지를 보고 전화를 했다.

"혹시나 해서 전화드립니다. 며칠 동안 코코와 남매처럼 지내던 알파라는 이름의 예쁜 강아지가 있는데 입양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장난전화하시는 건가요?"

"절대 아닙니다. 혼자 남은 알파가 불쌍하기도 하고, 코코도 많이 보고 싶어 할 것 같아서요."

"이상한 분이군요, 그러면 댁이 입양하세요."

재수 없다는 듯 쏘아붙인다.

괜히 전화했다는 후회가 들지만 계속 말했다.

"핵심은 누가 입양 하느냐가 아니라 알파와 코코가 같이 사는 겁니다."

"이런 씨발 당신 누구야 한 번만 더 이런 전화하면 경찰에 신고할 거니까 그렇게 아쇼."

남자가 전화기를 뺏어 욕지거리를 한다.

옆에서 알바생이 그럴 줄 알았다며 위로해 준다.


미친놈 취급은 받았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 

알파가 코코의 남편이란 것은 나밖에 모르고, 몇 달 후엔 냉소적인 코코의 주인이 알파의 새끼들을 돌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코의 보호자들이 눈물겹게 고마워지기까지 했다.


편의점에서 나왔을 때 알파는 쓰레기가 담긴 까만 비닐봉지에 코를 박고 있었다. 통통한 육포를 건넸지만 극구 사양하며 빠른 걸음으로 도망간다.

신세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녀석이다.

코코가 떠난 후 알파는 한동안 보이질 않았다.



긴 하루의 끝 


보름이 지나 멀리서 무단횡단을 하는 알파가 보인다. 다리를 절뚝거리고 꼬리는 말려 있었다.

앙상한 갈비뼈에 자꾸만 헛구역질을 한다. 코코와 함께 뛰어다니던 공단의 후미진 골목길을 지나 양지바른 신성기업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는다. 코코의 꿈이라도 꾸는 것인지, 죽어가는 것인지 미동도 없다. 신성기업 여직원이 동물구조 센터에 신고를 했다.

스타렉스를 타고 온 센터 직원이 켄넬을 내린다.

내가 켄넬문을 열었다. 알파와 눈이 마주쳤다. 어릴 적 개장수에게 팔려가던 메리의 눈빛과 같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부러진 다리를 끌며 들어간다. 켄넬 안으로 통통하게 살찐 육포를 넣어주었다. 일인지 그렇게도 사양하던 육포를 맛있게

먹는다. 그 와중에  맛있게 먹어서 가슴 아프다.
쟤는 분명히 안락사당할 거라며 신성기업 여직원이 훌쩍 거리며 배웅을 한다.


알파가 마지막 웅크렸던 자리에 살점 없는 닭 뼈 하나가 봄볕에 말라가고 있었다. 정말 코코의 배속에서 알파의 피를 가진 아가들이  자라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속절없이 봄날의 햇살은 눈부신데 내가 알파를 버린 인간과 같은 인간이라서 면목없는 하루였다.




못다 한 말


작년 3월의 일이다.

 지금도 꽃과 동물 학대하는 인간이 저주받을 수 있다면, 정화수 한 그릇에 촛불 켜놓고 365일 새벽 기도를 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나와 동거할 반려동물

당나귀, 삽살개, 그리고... 꿀벌 만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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