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은 독살되고 자존감마저 척살되는 아비규환에서도 빛 고운 달님은 착하게 살아라 충고를 한다.
후미진 골목을 숨죽이며 걸어와 혹시 오늘은 길을 찾을까 밤하늘 보면, 북극성은 보이지 않고 긴 꼬리 유성만이 은하수 푸른 숲을 빠르게 달려가더라.
바람 불던 시월의 어느 날 밤, 바지랑대에 매달려 졸고 있던 눈썹달 끄트머리를 숨겨왔던 비수로 베어버렸다.
노란 달빛을 쏟아내며 기울어진 달이 비틀거린다.
나의 신앙 나의 양심도 적멸한다.
해바라기 피어있는 담벼락 밑에 청산가리 한 줌과 달빛 흥건한 칼 한 자루 묻고서, 회한만 짊어진 나귀를 데리고 먼 길을 떠나려 할 때, 윤회의 길목에서 만났던 한 여자만이 내 등에 머리를 기대고 목놓아 울었다.
이 세상 마지막 여자의 오른쪽 손에는 달빛이 뚝뚝 떨어지는 눈썹달 조각이 들려있더라.
다시 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