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랜티오브 Apr 06. 2022

그래도 가끔은 혼술이 필요하다

간헐적 혼술이 불러오는 긍정적 효과

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술자리를 좋아한다.


20대 때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말이다. 사실이 그랬다. 나는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었고, 누군가를 만나 빨리 친해지기에 음주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으니까. 삼겹살에는 소주, 치킨에는 맥주, 파전에는 막걸리, 회에는 사케, 분위기 내고 싶을 때는 와인이나 위스키. 주종이 뭣이 중요하랴. 그저 나에게는 마음 맞는 벗과 몇 시간이고 대화할 이야깃거리만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일단 체력. 김치찌개에 소주로 몇 시간을 달려도 다음 날 멀쩡히 출근하던 내가 소주 반 병에 골골거리기 시작했다. 2차, 3차 내내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하면서도 깔깔거리던 나는 이제 9시만 되어도 졸려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아.. 시기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겸사겸사 술자리도 줄어들었다. 알코올에도 총량 법칙이 있다면 나는 이미 20대 때 총량의 대부분을 섭취했을 테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술 약속을 안 잡기 시작하니 저녁에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퇴근 후 자기 전까지의 시간이 이렇게나 길었던가. 독서량이 늘었고, 운동도 하고, 투자 공부도 하고, 미뤄뒀던 OTT 콘텐츠도 실컷 보았다. 술을 안 마시기 생각하니 술 생각도 나지 않더라. 기분에 취해 훅 긁고 다음 날 반성하는 일도 없으니 카드 값도 안녕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그냥 아주 가끔 삶이 재미없다고 느껴졌을 뿐이다. 재미있고 무모하고 나답지 않은 일은 모두 술과 함께 일어났기 때문에, 술이 한 모금도 없는 인생이란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그런 내가 간헐적 혼술에 빠진 것은 아마도 필연이었을 것이다. 혼술이란 같이 마시는 술자리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내 감정과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이니까. 잦은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지만, 삶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가끔씩의 혼술을 즐기는 것은 분명 이로운 점이 많다.


혼술이 필요한 이유 1. (무엇을 하든) 내 모든 감각을 집중할 수 있다.

오랜 술친구 K는 가끔 실없는 농담을 하고는 이런 말을 덧붙이곤 했다. 

"아 이건 지금이 아니라 3차 때쯤 얘기하면 다들 빵 터졌을 텐데." 

그렇다, 똑같은 이야기도 술이 들어갈수록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늘 먹던 음식이 더 맛있고, 늘 보던 얼굴이 더 멋져 보인다. 듣고 있는 음악에, 읽고 있는 책에, 바라보고 있는 풍경에 대한 몰입도가 더 상승한다. 내 모든 감각을 집중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메리트이다. 


혼술이 필요한 이유 2.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다.

맨 정신에는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 억압으로 인해 우리는 자기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 화가 나는데, 슬픈데, 누군가가 몹시 미운데 맨 정신에는 도통 내 진짜 감정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진짜 감정을 알 수가 없는데 근본적인 해결 방식을 찾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해결되지 않는 감정이 축적되면 결국 문제로 이어진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내 감정에 솔직해진다. 내가 느끼는 진짜 감정이 무엇이고, 그 감정의 원인은 어떤 것인지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더라도 진짜 감정을 보듬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혼술이 필요한 이유 3.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거나 실수할 걱정이 없다.

다년간 음주를 하면서 느낀 것은, 술을 마시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술은 사람을 흐트러지게 만들고, 경중이야 어떻든 실수나 실언을 하게 만든다. 흐트러진 모습은 사람과 사람을 더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인간적인 매개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음 날 이불을 걷어차며 후회하기 일쑤다. 혼술을 하면 내가 즐거운 취기에 주량을 살짝 넘기더라도 누군가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거나 실수할 걱정이 없다. 휴대폰과 인터넷만 조금 멀리한다면 말이다.


이만하면 가끔 혼술을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가끔 즐기는 혼술은 내 감각을 깨우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명심하시라.


창 밖의 아름다운 뷰를 오롯이 감상하며 기울이는 혼술 한 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