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네다섯 살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11월 어느 늦가을 오후에 아이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다가 공원 한쪽에 마련된 놀이터에서 잠시 머물렀다. 놀이터라면 으레 있게 마련인 ‘정글짐’이라는 놀이시설도 놀이터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글짐’은 이제 고작 네다섯 살인 아이에겐 꽤 높아 보였다.
“하○아, 저기 한 번 올라가 볼까?”
“무서워서 못 해요.”
“괜찮아, 삼촌이 올라가는 거 가르쳐 줄게.”
‘정글짐’의 한 칸 높이도 어린아이의 키에 비할 때, 적지 않은 높이였다. 나는 아이 곁에서, 올라가는 요령을 보여 주면서 따라 올라가게 했다. 발을 먼저 한 칸에 올리고 다리에 힘을 주어 올라선 다음, 올라갈 다음 칸의 어디를 잡고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를 보여 주면서 가르쳐 주었다.
아이를 안심시키고 아이가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뒤에서 받쳐주는 식으로 올라가게 하지 않았다. 아이에겐 자신이 느낄 두려움과 공포를 대신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의 두려움이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의 공포감은 고스란히 아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몸을 지탱할 꼭대기의 마지막 한 칸을 제외하고는 끝까지 올라가도록 독려했다. 아이는 한층 한층 높아질수록 더해지는 두려움을 순간순간 극복하며 끝까지 올라섰다.
꼭대기까지 올라섰을 때 아이 기분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이 어린아이가 그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는 사실이다. 꼭대기에 이르고 난 뒤 잠시 아래를 둘러보게 하고 천천히 내려오게 했다. 내려가는 것은 달리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곧잘 내려갔다.
“거 봐, 할 수 있지?”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날 보며 씩 웃었다. 근데 그 표정이 묘했다. 마치 성취감과 정복감이 뒤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저 녀석의 담력을 기르기 위해 정글짐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도록 종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놀이는 그저 즐거움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속에서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는 자신에게 희열을 느낀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 속에서 그들 앞의 세상을 어떠한 태도로 마주하며 살아가게 될지를 가늠하게 된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이라서 그럴까? 녀석은 높은 곳에 오르기를 즐겨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나에게 만장대(김해에 있는 분성산의 꼭대기)에 함께 올라가자고 했다. 그 쪼그만 녀석이 정상까지 잘도 올라갔다. 만장대를 찾은 사람들이 대견하다는 듯 쳐다보며 한 마디씩 건넨다. “아이고 세상에 쪼매난 아가 예까지 올라왔네.” 본디 성격이 어질고 온순하면서도 쾌활했던 녀석은 또래에 비해서 점점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아이로 자라났다. 나는 녀석이 조카라서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 좋아한다. 녀석에겐 비록 어리지만 내가 동경하는 모습이 있다.
부버(Martin Buber)의 말대로 운명은 인간의 세계 위에 덧씌워진 종(鐘)과 같은 것이 아니다. 모험은 불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모험을 회피하고 항상성에만 안주하려는 자는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다. 그에겐 인격의 성장도, 삶의 발전도 없으며 심지어 그가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신도 필요치 않다. 그에게 신은 종교적 감상의 영역에서만 왕성할 뿐이다.
운명은 결코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명은 자유와 서약한다. 자유로운 결단으로 미지의 불안 속으로 뛰어드는 자만이 자신의 운명과 마주한다. 바로 그런 자가 신을 바란다. 사랑하는 조카 녀석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세상을 담아낼지를 기대하고 응원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