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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는 광기'

에쿠니 가오리의 책 [개와 하모니카]를 읽으면서

빽빽했던 삶에

듬성듬성 틈이 생기니 책을 읽습니다.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찾습니다.

아, 좋네요.


일본 단편소설집을 즐기던 기억을 따라

'에쿠니 가오리'의 '개와 하모니카'를 읽다가

마음에 물들어버린 구절이 있어 나누려고

짧은 글을 씁니다.




"집 안에서는 내가 안 보여?"

"보여. 하지만 좋게 보이지 않아."

단박에 대답햇다.

"좋게?"

  나도 마음먹기에 따라 바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질문했다.

교코는 숨을 살짝 들이쉬더니 체념한 듯 가늘고 길게 뱉으며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고 나서 자백했다.

  "좋은 사람처럼."

  미안함이 묻어나는 음성이었지만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좋은 사람처럼..... 그렇군."

  나는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당연히 큰 충격을 받았다.

  진실을 말하는 광기.

  그것이 교코라는 여자의 특성인지, 아니면 모든 여자들의 특성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나는 상처 입고 덫에 걸려든 기분이다). 하지만 교코에게는 확실히 그런 광기가 잇다. 그것이 마녀가 마녀인 까닭이며, 그런 특성을 지닌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을 말하는 광기. 그 특성을 나는 정말 증오한다.


- 에쿠리 가오리 [개와 하모니카] 88p -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증오한답니다.

광기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눈과 입술 끝에서

번뜩이고 있겠군요.

주인공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나봅니다.

그러나 '늘' 좋은 사람이기만 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진실 앞에서

속절없이 덫에 사로잡히고 마네요.

주인공이 갖고 있던 것과 같은 환상으로부터

이제 겨우 깨어난 저에게도 너른 울림을 주고요.


밑줄친 두 문장 중

첫 번째 문장이 왼손에 쥔 포크라면,

두 번째 문장은 반대편 손의 나이프 같습니다.

날카로운 글은 마음을 잘라내고 뜯어내

먹기 좋게 썰어내지요.

읽는 이의 속이 얼마나 익었는지 보란듯이 말이죠.


진실은 이렇듯 예리한 검을 다루듯

대해야 하는가 봅니다.

누군가의 영혼을 손쓸 수 없이 상하게 할 수도,

이미 훼손된 삶을 기적처럼 살려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마른 땅을 웃게하는 단비처럼 쏟아지면 좋으련만.


가끔 이렇게 숨과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글을 만납니다. '진실의 거울 속에 비춰진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까?' 하는 생각이 마음 아래로 내려가요.

다른 길을 없는 듯 안으로, 더 안으로.


'빠르다'는 말이 '느리게' 다가올 정도로

분주하고 혼미한 세상에서

무엇을 진실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그러나 알아 듣기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를 진실된 존재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실되고 싶어요.

그럴 수 있는 용기와 느슨함을 구하며 살아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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