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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준 Nov 04. 2022

적어도 지금은, 아마 수 세기 뒤에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을 읽고

 우리는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 당연히, 늘 그래 왔듯. 적어도 지금은. 아마 수 세기 뒤에도.

 빛처럼 1초에 30만 km를 갈 수 없지만, 약 4만 km밖의 사람들의 생각을 1초 만에 확인할 수 있다. 발은 가지 못해도 메시지는 가고 또 온다. 사고와 정념들은 매체의 힘을 빌어 유유히 날아다닌다. 그래서 우리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도, 밟아보지 못한 곳곳의 소식을 주워 담을 수 있다. 그래도 빛의 속도로 ‘나’가 갈 수는 없다.

 우리는 빛처럼 ‘충분히’ 빠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매체와 같은 무언가에 늘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매스컴이든, 노트북이든, 휴대전화든. 우리는 여기저기서 넘쳐흐르는 모든 정보를 아우르며 살피기가 어렵다. 충분히 빠르지 않기 때문에, 빛과 같을 수 없기에 ‘우리’라고 불리는 모두는 전지전능할 수 없다. 그러나 늘 우리는 계속해서 빠르고자, 전지전능하고자 갈망한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향한 갈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듯이, 저 먼 우주 공간을 향한 우리의 숨길 수 없는 갈망은 곧 우주적 세계에서 출몰하는 정보들을 하나 둘 긁어모을지도 모른다. 헤게모니를 손에 쥔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진보하고, 전지전능하다고 믿으며 바쁘게 늙어갈 것이다. 하지만 돈과 권력이 아무리 많더라도 빛의 속도로 ‘나’가 갈 수는 없다. 나아가 소설에서 형상화된 것처럼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우주적 세계관을 누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 속 그들이나 우리나 빛의 속도로 광활한 우주 공간을 유영할 수는 없다. 다가올 미래 사회를 살아갈 사람들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된 하루치의 일과 달콤한 여가, 개인과 집단, 사랑과 고독,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나지막하게 줄타기하며 살아갈 것으로 보인다.

 워프홀을 따라 은하 너머 세상에 갈 수 있게 되어도, 홀로그램으로 엘리시움을 건설하여도, 도서관에서 이미 죽어버린 이들과 마주할 수 있더라도, 감정을 손 안에 두고 통제하거나 응축된 감정 덩어리에 손을 대서 원하는 감정에 휩싸일 수 있더라도, 온전히 붉지도 노랗지도 푸르지도 않은, ‘노을’이 지닌 색채와 인상으로 대화할 수 있더라도, 빛에 비해 한없이 느리고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할 뿐, 결국 누군가의 말처럼 ‘외로움의 총합’만 늘어가지 않을는지. 지구에서나 우주적 공간에서나 자신의 신세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고향과 이상향에 대해, 미시적이거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꿈을 꾸며, 전지전능하지 못한 우리가 지닌 외로움의 절대치만 늘어가지 않을는지.

 이기(利器)에 의존하여 전지전능을 꾀하지만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면,

 적어도 지금은, 아마 수 세기 뒤에도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가.


 소설을 절정과 결말로 이끄는 힘은 분명 우연적인 요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우연성은 소설을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기에 이 책도 우연성에 기대어 짧은 이야기들을 빠른 호흡 아래 결말로 도달하게 한다. 그로 인해 절정과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꽤나 빠르게 진행되어, 장면 하나하나와 그 속에 담긴 세계가 탐구되기보다는 읽는 동시에 이미지가 되어 직관적으로 수용되곤 한다. 낯선 공상적인 소재들을 품고 있기 때문에 설명과 해설에도 의존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로 형상화된 미래 사회 속 단편적 삶에 대한 탐구는 삽입된 이야기들을 통해 풀어헤쳐지고, 총체적인 고찰과 탐구 그리고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 된다. 독자는 지금 사회와 다른 소설 속 세계로부터 현재 삶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진리를 갈구하거나 미래 철학의 씨앗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또 한 명의 독자인 내가 빛의 속도보다 유장한 호흡으로 소설 속 세계를 걸어가고 싶은 것은 현재 삶에 만족하기 때문일까. 혹은 미련이 남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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