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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토 Jul 24. 2024

말대꾸하는 딸에게 소리지르기 전 떠오른 생각

잘못된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아빠가 진작에 학교 준비물을 챙겨줬어야죠! 아빠가 잘못했네요!"


학교 준비물이 없다는 이유로 딸이 내게 한 말이었다. 내가 이전부터 “챙겨라. 챙겨라.그렇게 얘기했건만 내가 가방에 넣어주기까지 해야 하는 건가. 회사에 지각할지 모르는 촉박한 시간에 내가 뭘 잘못했다고 하니 북받치는 감정을 잡을 수가 없었다.


황당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충격, 실망, 허무, 슬픔, 만감이 교차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 <부당거래> 속 명대사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화를 내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 난 입을 닫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1초간 숨을 참았다. 마지막으로 온몸의 근육을 조였다. 이로써 집이 무너질듯한 고성을 내지를 모든 준비가 갖춰졌다.


“야!!”



라는 소리가 나오려는 찰나, 머릿속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내 자식이 그렇다면 부모인 나도 그랬을까?” 


내가 초등학교 시절로 기억을 거슬러봤다. 성인인 아빠와 초등학생인 내가 대치하고 있던 순간으로. 대치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 경험은 많아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빠와 나의 대치 상태였다. 나는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아빠의 말을 들으며 당하고 있었다. 아빠는 나에게 손찌검했고 윽박질렀다. 그런 아빠에게 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당당하게 내 입장을 얘기할 수 않았다. 핑계를 대면 대든다며 더 큰 화를 당할 게 불 보듯 뻔했고 변명을 늘어놓아도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면 타박할 것이 뻔했다. 이런 경험이 쌓여서 소심한 성격의 내가 됐고 대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당장 내 앞의 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력이 없어졌다.


딸의 행복을 바란다.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잡아야겠지만 잘못된 수단이 그 목적을 정당화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우리 사회는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 실패라고 보는 경향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구태를 답습하고 싶진 않고 아이에게 전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이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맥락을 알고 싶었다. 그걸 위해선 아이의 입장을 고려하게 됐다. 좋았다. 딸이 나에게 준비물을 안 챙겼다며 내 잘못이라고 말한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기도 했다. 내가 딸을 잘못 키운 게 아니었구나. 내가 무서워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난 딸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아빠가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침에 회사에 갈 준비로 미처 해주지 못했다. 바쁠 땐 서로 도와줬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했다. 딸은 혼자서 구시렁대며 혼자 가방을 쌌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에 대한 악감정을 바로 풀긴 바란 건 아니었으니.


딸과 허둥지둥 집에서 나와 평소 하던 대로 서로 손을 잡고 학교로 갔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아이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는 딸이 되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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