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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엠 Nov 29. 2023

등린이의 문학산 우중산행

나이 50이 다 되어서 등산이 좋아진 이유

무작정 떠난 등산길


오후 3시

밀린 집안일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모처럼 연차를 내서 여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했던 원래 계획은 멀어져 버렸다. 기분전환도 할 겸 한두 시간이라도 바람을 쐬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어디 다녀올 만한 곳이 없을까?'


집 근처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평소 가고 싶었던 문학산이 떠올랐다. 한 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높이의 산이니 해지기 전에 다녀올 수 있을만한 거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렇게 나의 갑작스러운 등산은 결정되었다.

대충 배낭을 싸고 출발하니 지하철을 타고 약 20분 만에 선학역에 도착했다. 예전에 한두 번 오른 적이 있어 어렵지 않게 등산로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미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화사한 단풍을 볼 순 없었지만 아직 가을 산의 느낌이 남아있었다. 더 늦기 전에 산을 찾은 게 다행이다. 계절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겨울을 맞을 뻔했다.


예상치 못한 비를 만나다


등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초반 코스는 평탄하다. 산길이라기보다는 둘레길이란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오랜만에 숲길을 걷다 보니 기분도 상쾌해졌다.


30분쯤 올랐을까, 산등성이 너머로 인천문학경기장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출발하면서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에는 비 예보가 없었는데……등산을 그만둘까 잠깐 망설였으나 큰 맘먹고 나왔는데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웠다. 지나가는 비겠거니 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방수가 되는 옷과 등산화를 신고 왔으니 괜찮겠지 하는 막연한 안심과 함께...


조금 더 오르자 나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다행히 근처에 목재데크와 지붕이 있어 잠시 여기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우의라도 챙길껄...해발 217m의 얕은 산이라고 만만히 보고 너무 준비 없이 길을 나선 나를 탓해본다.

목재데크에서 비를 피하며 바라본 문학경기장과 인천시내의 풍경


비가 내린 후 만난 아름다운 저녁 노을 풍경


20여 분 지나자 빗줄기는 좀 가늘어졌지만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배낭에 방수커버까지 씌우고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보냈다가는 해지기 전에 하산하기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학산성에 다다를 무렵엔 비가 그치고 짙은 안개 사이로 석양이 조금씩 비추기 시작했다. 비가 한차례 오고 난 이후여서 그런지 시야도 맑고 공기도 깨끗하게 느껴진다. 아무도 없는 산꼭대기에서 아파트가 빼곡한 도심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니 내가 다른 세상에 있는 기분이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구름사이로 보이는 석양이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했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문학산을 다시 만나다


문학산 정상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전 군부대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지만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난 뒤 공원시설물들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삭막함은 많이 지워냈다. 특히 예전에 못 보던 문학산 역사관이 눈에 띈다. 역사관 간판 아래 쓰인 “철벽보안”이란 문구가 여기가 예전 군부대 막사였음을 알 수 있다. 흉물로 남을뻔한 폐건물을 문학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실로 리모델링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한편에 등산객을 위한 휴게시설도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아마 이날 비도 오고 춥다 보니 든 생각이다.

반가움과 아쉬움이 함께했던 문학산 역사관


하산길에 든 단상


늦은 가을에 접어들면서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걸 깜박했다. 내려가는 중간에 이미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졌다. 비가 온 이후라 길도 미끄럽고 해서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난감할 뻔했다. 다음 산행부터는 우의와 헤드랜턴도 꼭 챙겨야겠다. 아직 등 린이라 배울 것이 많다.


두세 시간이면 답답한 도심에서의 일상을 벗어나 등산을 하며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특히 오늘은 예상치 못한 비가 와서 더 특별한 산행이었다. 젊었을 때는 등산이 힘든 운동으로만 느껴져 즐겨 하지 않았는데,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등산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한적한 숲속을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걷다 보면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가 보다. 앞으로 가능한 많은 산을 다녀보고 싶다. 내 무릎이 그때까지 잘 버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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