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8 - 데스밸리
신께 용기를 달라고 하자 시련을 주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잠시 생각해 보면 알 것도 같다. 몇 년 전 한 친구가 나에게 내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돈이 많은 사람인가? 착한 사람인가? 나와 같은 산업에 있는 사람인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공통적인 특징을 찾았는데, 바로 각자의 삶에서 힘든 경험을 하였고 끝내 무언가 성취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 경험을 스타트업 환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데스밸리(Death Valley)'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데스밸리는 그냥 찾아오는 시련이 아니다.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찾아오는 성장통 같은 시간이다. 운전하다가 한눈을 팔아 교통사고를 냈고 보험비가 부쩍 올라 내 생활이 힘들어진 것을 성장통 또는 데스밸리라 말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집요하고 꾸준하게 힘든 시간을 감내하는 과정을 우리는 성장통이라고 한다. 끝내 달성하지 못해도 좋다. 적어도 시도해 보았고 졌지만 잘 싸웠다는 경험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용기로 남는다.
데스밸리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바로 겸손이다. 기본적으로 과도한 자만이 없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데스밸리가 주었던 좌절감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첫 창업에 직원도 채용해 보고 매월 몇 천만 원씩 벌면서 꽤 인정받고 있었고 그래서 MBA도 쉽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학을 결심한 후 나는 6개월간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공부만 했고 첫 시험을 보았는데, 절망적이었다. 아마 공부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모든 문제를 찍어도 이것보단 잘 풀 것 같은 점수였다. 수개월 뒤 다시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시험을 보았지만 점수의 상승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마치 내 존재가 쓸모없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 스스로 꽤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오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나에 대한 재정의와 이 목표를 꼭 달성해서 나를 다시 증명하고 싶다는 간절함만 남았다.
최근에 퇴사하시는 한 직원분과 긴 시간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 우리 팀원들 절반이 자진해서 나가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분은 내가 겪은 그 경험도 부럽다고 했다. 매우 힘들었던 경험은 맞지만 나의 정신과 심리를 흔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목표의식은 더 단단해졌다. 그때 상황을 돌아보자면 아마 직원분들 사이에서 '퇴사는 지능순' 같은 말들이 돌았을 것이다. 회사가 잘되는 줄 알고 들어왔던 사람들은 이때 다 나갔다. 나에게 이런 사건을 겪을수 있는 창업의 기회가 온 것과,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겪은 시련들을 꾸준히 견디고 노력해서 이뤄냈던 경험들이 받쳐줬기 때문이다. 풀릴 문제만을 찾아다닐게 아니라 어려운 문제를 풀어봐야 한다. 어떤 회사든 어떤 인생이든 데스밸리는 찾아온다. 회사는 출구가 있지만 인생에선 출구가 없다. 겪어봐야 한다. 그리고 풀어봐야 한다.
지금 힘든가? 그럼 지금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당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일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죽을 듯이 공부하고 들어간 학교에서, 누구는 시험들을 준비하는데 불과 몇 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데스밸리는 무엇을 달성했는가의 절대적 지표가 아니다. 그럼 우리는 금수저를 넘어설 수 없다. 데스밸리는 오히려 어떻게 노력했는가의 상대적 경험이다. 공부일 수도 있고, 일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운동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 끝내 나에게 줄 경험이 얼마나 대단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과정을 즐길 수 있다. 과정을 즐기면 포기하지 않게 되고,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