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6 - 법인 플립
2022년 8월, Pre-A 투자유치와 함께 본사를 미국으로 옮겼다. 그토록 원하던 미국 진출이었다. SaaS 시장에서 미국은 한국보다 약 20배 정도 더 크다. 보통 글로벌 회사들의 미국 매출이 30~50% 정도 차지하니까 한국에서 글로벌로 진출하면 60배에서 100배 정도 더 클 수 있다. 산수만 봤을 때는 그렇다.
우리는 한국에서는 이미 몇 개의 고객사들에게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미국에도 평가받고 싶었다. 내가 이 아이디어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용어나 프레임워크 등 모두 미국 회사에 맞추어져 있었고 프러덕도 영어로 개발했다.
사실 한국에서 운영하는 것이 더 까다로웠다. 내가 사용한 기법들이 미국에서 많이 활용되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알려진 기법들이 아니었다. 고객 세분화 분석 기법만 해도 그렇다. 미국에서는 흔한 마케팅 전략 중 하나인 STP의 첫 스텝(S: segmentation)인데 한국 회사들은 생소해한다. 그래서 세일즈 미팅을 나가면 용어부터 익숙지 않아 한글버전 있냐는 질문을 꽤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더 미국 진출이 간절했던 것 같다.
법인을 미국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은 아니었다. 크게 세 가지를 고민했어야 했는데 첫 번째는 플립을 위한 법률자문 비용이다. 나는 크고 작은 로펌 다섯 곳과 미팅을 했는데 비용은 대부분 비슷했다. 플립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데 한국과 미국 로펌 그리고 회계법인 비용 합쳐서 5~7천만 원 정도 든다. 두 번째는 개인 세금이다. 투자유치에서 투자사와 협의한 가치(valuation)가 아닌, 세법상 가치에서 주주들의 지분율만큼에서 22%~28% 정도의 양도세를 낸다. 이게 아무리 초기 단계라고 해도 작게는 수 천에서 많게는 수 억이다. 세 번째는 미국으로 이전하는 이유이다. 투자유치나 미국이 주 서비스 지역이라거나 한국의 법적 제재로 법인을 이전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위 내용들을 이전에 자세히 정리한 적이 있어 여기에 옮겨보겠다.
제품이 미국시장을 타깃 하는 경우
창업자가 영어로 IR 피칭이 가능한 경우
한국법상 서비스 운영이 힘든 경우
미국에서의 투자가 유리한 경우
평균적으로 벨류가 한국보다 높아 같은 라운드에서도 높은 투자금액 유치 가능
한국보다 산업군에 특화된 투자사들이 많음 (ex. health care, SaaS, etc)
초기 단계의 벨류가 높은 편이고 투자유치가 한국보다 쉬운 편임
비용이 비쌈 (법무법인, 회계법인 합쳐서 최소 5천만 원 정도이며 기주주의 양도세 이슈도 있음)
한국에서의 투자유치가 한국법인일 때보다는 폭이 좁음
한국/미국 두 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과 리소스가 많이 듬
A 대표님: "시드단계에 플립 해서 지금 잘 운영하고 있어요. 후반으로 갈수록 미국이 투자받는 게 어려워지는데 그래서 그냥 한국에서 투자 유치했어요. 이번 라운드 총금액에서 85%를 한국에서 받았어요."
B 대표님: "한국과 미국에서의 펀드레이징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미국법인에 투자할 수 있는 한국 투자사의 예산이 적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근데 미국 투자는 Series A, B 정도 되면 창업자 검증이 있어서 영어능력은 필수예요."
C 대표님: "미국법인이라고 해서 한국에서 투자 유치가 어렵다고는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초반에는 한국 투자사에서 받다가 Series-B부터는 미국 투자사에게 다 받았어요. 투자는 안 받아도 될 때 좋은 투자자들이 들어오는 거라 미국이든 한국이든 큰 차이 없어요."
D 대표님: "미국은 투자사도 많지만 스타트업도 많은데 굳이 미국법인 아닌 다른나라 회사에 투자할 이유가 딱히 없어요. 예를 들어 한 미국 VC마다 투자할 회사들이 한 천 개는 될 텐데 만약 검토할 서류들이 한글이고 본사가 미국에 소재하지 않는 스타트업이라면 굳이 고려할 필요가 없는 거죠."
여기서 A, B, C, D 대표님들은 나와 개인적인 통화에서 말씀하신 내용이라 밝힐 순 없지만 이 업계에 있다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창업자분들이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의 고민에 직접 시간내주어 많은 조언을 주셨다. 기 창업자분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확신을 가질수 있었다.
우리는 첫 세일즈를 성공했다. 초반에는 비자 문제, 세일즈 자료 준비, 시장 진입 전략 설계 등으로 미국으로 넘어오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물론 지금도 비자, 세일즈, 시장진입 전략 그 어느 것도 완성되진 않았다. 하지만, '일단 시작'이라는 모토로 무작정 고객사들과 미팅을 시작했고 올해 3월 시작과 동시에 미국에서 첫 고객사를 유치했다.
내 브런치 소개글이 '카카오벤처스에서 리딩투자한 글로벌 테크 스타트업의 미국 실리콘벨리 진출 여정'인데, 드디어 마지막 단추인 '실리콘벨리 진출'을 채웠다. 이것이 목표 달성이나 섣부른 자축을 의미하진 않는다. 말 그대로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채비를 마친 정도이다. 앞으로 어떤 힘듦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렇게 브런치에 공유함으로써 나의 생각은 '기대'에 그치지 않고 '계획'이 된다.
그래서, 나의 글을 구독해 주는 18명의 구독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