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싸이월드&브런치
20대 땐 나도 감성 꽤나 있었다. 컴퓨터를 켜면 제일 먼저 음악 재생 프로그램 '윈엠프'부터 클릭했다. 수두룩 빽빽 들어찬 플레이리스트는 내 보물 1호였다. TV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는데, "음악이 있으면 일상이 뮤직비디오이고 드라마가 된다"라고. 그건 딱 내 얘기다. 음악 없이는 물 한 잔 떠먹는 것도 못했다. 컴퓨터 앞에서는 블리츠 스피커로, 이동할 때는 국수가락처럼 기다란 소니 이어폰을 귀에 메달고 다녔다. 심지어 "같이 들을래?"라고 말하는 동성 친구와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꽂으며 음악을 들었다.(손은 안 잡았음)
버스라도 탈 때면 창가는 내 차지다. 물론 이어폰을 껴고 앉아야 한다. BGM이 깔리니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꽤나 근사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음악과 풍경을 즐기는 내 모습에 취한다. 그때만큼은 내가 브라운 아이드 소울이고 박효신이다. 그렇게 음악이 지배하는 일상은 삶의 이유이자 행복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풍부한 감성은 글에도 녹아들었다. 형용사와 은유를 좋아해서 글만 쓰면 내용이 산을 넘어 저 먼 우주 안드로메다까지 가곤 했다. 표현에 감정이 과하게 들어가 글이 방향을 잃고 표류한 거다.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감정이란 게 워낙 복잡한지라 한 두 단어로 표현할 수가 없지 않은가.
슬픈데 배고파. 근데 먹기는 싫고.
기분 좋은데 왠지 박장대소할 만큼은 아냐.
약속이 있는데 미적거리고 싶어. 그런데 심심하기는 해.
이런 마음들을 어떻게 한 두 단어로 생략해가며 표현한단 말인가. 담백하게 글 쓰는 사람들은 다 '거짓말쟁이'고, 감정을 편집해서 사는 '가식덩어리들'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모든 감성이 묻어나는 글을 써내리라 다짐했다.(그 다짐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때 운명처럼 싸이월드라는 게 생겼다. 싸이월드는 게시글에 갖은 미사여구와 감정이 폭발하는 표현, 글쓴이 본인만 아는 내용, 감성을 듬뿍 담은 사진으로 도배됐고,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다. 홈피에 BGM을 깔아놓았기에 감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지금이야 담백함을 추구하는 시대이니 그런 것이 흑역사, 재미있는 과거 정도로 폄하되지만 그땐 그게 트렌드였다. 시대정신이라 하면 거창하고, 그건 당시 사람들의 정신이었고 즐거움이었다. 그런 면에서 문화라고 하는 게 맞겠다.
와우!
싸이월드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 감성 풍부한 플랫폼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더러 물 만난 고기가 되라는 얘긴가? 신이 나서 글을 썼다. 짧은 글 위주로 아주 많이. 내용의 깊이는 둘째치고 사진과 텍스트를 예쁘고 그럴듯하게 꾸며놓으면 그걸로 기분이 좋았다.
싸이 홈피는 일기 같아서 나만 아는 얘기들로 가득했음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방문자가 늘어갈수록 나만 아는 게시물도 많아졌다. 무슨 대문호라도 된냥 글의 의도를 숨기거나 희미하게 내용의 실마리를 마련해놓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나 모르나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하지만 감정 과잉 시대는 끝났다. 언제부턴가 쉽고 담백한 글이 대세가 됐다. 감성적 표현이 들어가면 '오글거림'으로 치환해 생각하는 이가 늘어갔고, 문장은 팩트 위주로 꾸려지면서 짧아졌다. 잡지 에디터의 소회를 담은 매거진 속 '레터'도 어느 순간 힘을 잃었다. 잡지 글도 주관적 감상은 최대한 빼고, 정보전달 위주로 가볍고 리듬감 있게 전개하는 것이 새로운 미션이 됐다. 잡지에도 신문기사와 같은 톤 앤 매너가 적용되기 시작한 건 2010년대를 관통하면서의 일이다.
2020년대를 지나고 있는 지금은 그보다 더해져서 아예 글이랄 게 없다. 콘텐츠는 영상과 이미지 중심으로 돌아가고, 텍스트는 과거로 치면 사진 캡션을 길게 쓴다는 느낌으로 적당한 양만 뽑아낸다. 긴 글을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 맞춰진 특단의 조치이자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전략적 선택이었다.
트렌드라는 게 존재하니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대목이다. 20대 때 나의 형용사와 은유법이 정답은 아니지만, 최근의 담백한 글도 옳은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글에 감성을 제한하려다 보니 표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문장을 줄이고 줄이다 보면 꼭 해야 할 말만 남고, 그렇다 보니 이 글이고 저 글이고 비슷한 리듬만 남았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나는 용감하지 못했다. 바꾸지 못했고 오히려 적응하며 살게 됐다. 더 이상 예전의 감성 소년은 없었고, 오히려 담백한 문체가 편해졌다. 그때 브런치를 만났다. 신문기자로 시작해 잡지 에디터로 자리하기까지 나름의 성장을 이룬 만큼, 애정을 갖고 기획한 기사를 브런치 스타일의 변주로 다시 감성을 불어넣고자 했다.
브런치를 두 달 가까이해 본 결과, 여기에는 싸이월드의 문화가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과잉 콘텐츠가 많았고 다수의 사람들이 낄낄 대며 폄훼하기보다는 공감하고 라이킷을 눌렀다. 또 아티클 형식보다는 에세이 스타일의 글을 선호하는 브런치인들이 많은 듯 보였다.
10년 넘게 아티클을 제작해온 내겐 에세이가 생소하다. 아티클이라면 일사천리로 콘텐츠를 발행할 텐데 에세이는 좀 더 내면을 관찰하고 공을 들여야 발행할 수 있는 콘텐츠다. 사담이 없고, 서론은 짧으며,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중립을 유지하는 글을 써온 내게 어려운 지점이 바로 거기다. 감정 표현도 싸이월드 수준에 멈춰있으니 고충은 더 하다. 에세이는 어찌 보면 수년간 글밥 먹고 살아온 내게 새로운 도전과도 같다.
생각해보면 글에는 작성자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난 평소에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에 풍성한 리액션을 보이는 건 잘 하지만, 주도적으로 내 이야기를 꺼내고 구구절절이 자신의 사연을 설명하지 못한다. 쑥스러운 것도 있지만 장시간 타인의 이목이 주목되는 걸 견디지 못했다. 그럴 때면 서둘러 화제를 돌려 상황을 벗어나곤 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자존감이 낮아서 그렇다고 한다. 글쎄, 자존감보다는 성격 때문 아닌가? 어쨌든 기자라는 직업은 그래서 잘 맞았다. 내가 돋보이기보다는 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내가 보이지 않았다. 이직이든 비즈니스 미팅이든 나를 드러내야 할 때,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내가 해온 콘텐츠들, 만났던 이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정작 나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허무했다.
브런치는 그 허무함을 깨기 위해 시작한 툴이다. 여기에 더 많이 나를 드러내려 했다. 지난 두 달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아티클로 그 결계를 부수려고 했다. 솔직히 부술 수 있을 줄 알았다. 허나 아니었다. 잘하는 걸 하며 살면 편할 테지만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 변하려면 잘하는 걸 버려야 할 때도 있는 법. 그걸 깨달은 두 달이었다.
초담백 시대, 에세이스트로의 선언은 그런 의미에서 큰 결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