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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 Nov 20. 2022

오늘따라 그 집 떡볶이가 먹고 싶어

feat. 현선이네, 빨간지붕, 그리고


현선이네 떡볶이를 아시나요?


서울 용산구에서 이름 꽤나 떨치는 분식집입니다. 소문으로 익히 들어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그 집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현선이네가 프랜차이즈화 하면서 저희 집 근처에도 생겼길래 얼씨구나 하고 방문했죠.

맵고, 짜고, 달고. 

딱 초등학교 앞에 있는 떡볶이 맛이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현선이네 떡볶이 ⓒ 갤러리아


모든 맛은 주관적입니다. 맛은 입으로 전달되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지 않습니다. 대중매체가 저마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건을 보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맛에도 먹는 이의 취향이나 개성, 자라온 환경 등이 영향을 끼칩니다. 먹는 날의 날씨, 주방장이나 주방기기의 컨디션, 식재료 상태도 맛을 다르게 만들겠죠. 여기에 추억 한 줌도 들어가고요. 이 모든 게 상호작용으로 뒤엉켜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게 맛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맛은 입에서 나는 느낌이 아닙니다. 뇌, 즉 머리에서 나오는 감정인 것이죠. 생각하기에 따라 가슴이나 마음에서 맛을 본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나 주관적이다 보니 맛은 쉽게 미화되곤 합니다. 거기엔 추억 탓이 크겠죠. 예컨대 현선이네에 추억이 없던 저는 그 맛을 나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명성에 비하면 그렇게 맛있지는 않네!'




와이프는 대구 출신입니다. 성인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 취업을 하고 저를 만났습니다. 그는 10년 넘게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고향이 그리울 때가 많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추억 얘기도 곧잘 했고요.


최근에는 '빨간지붕'이라는 분식집의 빨간 오뎅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하굣길에 늘 들렀던 집이라면서요. 여고생 3~4명이 좁은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매운 오뎅을 먹었답니다. 뜨끈하게 데워진 빨간 국물 속에서 실한 놈 하나 건져 베어 물면, 짜릿하게 느껴지는 매운맛에 발이 절로 동동 거렸다네요. 너무 매워 입은 하마처럼 벌어지고, 그리로 있는 힘껏 산뜻한 공기를 밀어 넣었다 뱉었다 했다네요. 입술 밖으로 쭉 내민 혓바닥에 손부채를 부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배길 만큼 뜨거운 맛이라고도 했어요.


ⓒ tvN <응답하라 1988>


와이프에게 빨간지붕의 빨간 오뎅은 그런 맛이었습니다. 단순히 맵고, 짜고, 단 음식이 아닙니다. 투박하고 좁지만 왠지 정감 가는 공간, 수업을 막 끝낸 자유로운 한 때,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까르르 웃음이 난발하는 10대 여고생의 감성, 친구끼리 창피한 줄 모르고 떠는 호들갑과 주접. 이 모든 것이 함유된 추억의 맛이죠. 그래서 문득 빨간 오뎅이 떠올랐을 때 사무치게 그립다고 했습니다.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고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무슨 말인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습니다. 남자들도 그런 추억쯤은 갖고 있거든요. 떡볶이,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힘껏 공감해줬습니다. 진심으로.




와이프가 최근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하더군요. 무슨 일인고 물었더니 빨간지붕이 전국 택배를 시작했답니다. 그거 참 잘 됐네. 어서 주문ㅎ..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결제 문자가 울렸습니다. 이렇게나 추진력이 끝내주는 사람이었나?(부부 사이의 일을 되돌아봐야겠습니다.)


택배를 기다리는 며칠이 일 년처럼 길었습니다. 와이프는 택배가 발송됐다는 문자를 보자 어린애처럼 손가락을 꼽으며, 빨간 오뎅이 올 날이 이틀밖에 안 남았다고 즐거워했습니다. 그 새를 못 참고 본인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합니다. 그렇게나 그리웠는데 드디어 먹을 수 있겠다고. 설렌다고. 눈물이 글썽이는 게 아닌가 하고 유심히 쳐다봤지만 그 정도는 아니랍니다. 그런 모습이 꼭 고등학생 같습니다. 그래서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빨간 오뎅이 도착하기로 한 날, 와이프와 저는 동네 전철역에서 만나 같이 퇴근했습니다. 집 앞에 택배가 와 있었습니다. 기다릴 것 없이 포장을 풀었습니다.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상상으로 매워하던 그 맛이 코앞에 있다니! 침이 고였습니다. 


빨간지붕의 빨간 오뎅 ⓒ 놀러


팔팔 끓여 맛을 봅니다. '윽, 맵다.' 그런데 뭔가, 맛있는 매움입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요? 매운데 달고, 단데 적당해서 거부감이 없는 맛이랄까요? 역시 와이프가 극찬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내 냉정한 평가를 하게 됐습니다. 저는 빨간지붕에 추억이 없으니까요. 

"맛있긴 한데, 엄청까지는 아닌데?"

와이프가 버럭 합니다. 추억을 훼손하지 말라면서요. 저는 그저 솔직한 맛 리뷰를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와이프가 맛은 주관적인 거라고 뼈를 때립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고 반격할 수 없었습니다. 제 얼굴은 빨개졌고 눈치 없었음을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게도 추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까지는 엄마가 해주는 집 떡볶이만 먹고살아서 분식집에 추억이 없습니다. 중학생 때 맛집에 눈을 뜬 늦깎이였죠. 같은 반 친구와 저는 다른 초등학교 출신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본인 초등학교 근처에 떡볶이 맛집이 있다고 해서 가봤습니다.


그리운 길거리 떡볶이


떡을 입에 넣는 순간 알았습니다. 그 떡볶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습니다. 은근하게 졸여낸 쫀득한 밀 떡볶이가 이와 혀에 착착 감겼습니다. 흥건한 고추장 소스는 그릇의 떡을 3분의 2 정도 담글 만큼 양이 충분했고, 양념의 농도는 짙고 걸쭉해서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많이 맵다고는 느껴지지 않았고, 떡을 어느 정도 씹고 난 뒤에 남는 은은한 단맛이 기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납작한 오뎅을 많이 넣어줘서 만족감이 상승했습니다. 배가 불러서 더 못 먹었지, 그런 생물학적 한계만 아니었으면 사흘 밤낮을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집 얘기를 신나게 하다가 문득 와이프가 부러웠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추억이 있네.
나이를 먹고도 추억의 맛을 접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야.
 
그런 점에서 나는 추억이 없어.
그 집이 없어졌거든.


대학생 때 문득 그 집 생각이 나서 왕년의 친구와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가게 문에는 다른 분식집 이름이 붙어있었습니다. 미련이 남아 서운했습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외롭고 적적했습니다. 누군가는 떡볶이가 뭐라고 그리 슬퍼하느냐고 말할지 몰라도, 그때의 저는 그랬습니다. 거기에는 추억이 있으니까요.


아쉬운 마음을 대신해 말로나마 열렬히 추억했습니다.

"그 집이 없어져서 그렇지 너(와이프)도 맛봤어야 해. 떡볶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100점 만점에 95점 이상은 줬을 거야. 아쉽다. 너와 추억을 나눌 수가 없어서···."



ps. 아저씨, 어디 계신가요?

절름발이 우이분식 아저씨.

그대의 떡볶이는 이 세상 최고입니다.

부디 분식집을 접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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