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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 Dec 13. 2022

인연

겨울아이

딸을 처음 만난 건 외창 성애가 꽁꽁 얼어붙기 직전의 겨울밤. 태어나길 급히 서둘렀기에 그놈 참 별나네 여겼는데, 그날 새벽 일기예보에서 "지금부터 한파특보 발령" 외칠 때 비로소 녀석의 속뜻을 알아차렸다.


태어난 이를 위해 으레 바라게 되는 어떤 소망. 그리고 겨울은 생명이 움터나는 봄을 위한 휴지기. 하여 쌓인 눈 치우는 건 고사하고, 차라리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눈 덮인 밭 모퉁이에서 배추 한 포기 뽑아 된장국을 끓이는 감미롭고 감상적인 계절. 밤이 긴 로맨틱 여운의 계절. 딸은 그런 겨울에 태어났다.


뜻밖의 진통은 밤 10시에 찾아왔으나, 출산이 임박한 산모를 둘러싼 긴장감에 마음을 조이고 정신을 바짝 차렸는데, 다행히 그날도 겨울은 쉽게 가시지 않는 운치를 남겼다. 큰 아들 돌보느라 함께 하지 못한 아빠를 원망할 새도 없이, 산모는 구급차를 홀로 타고 병원 특유의 불완전한 공기가 빽빽이 들어선 분만실의 문턱을 용감하게 넘었다. 이내 딸을 품에 안고 완전한 엄마가 되었다.


그 후로 보름 동안, 엄마와 딸이, 큰 아들이 아빠의 손길을 원할 때마다 그들에게 갔다. 딸은 조금씩 더 잘 웃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겨울 한기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모녀는 집에 왔고, 엄마는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으나 아직까지 미역국을 먹는다. 벼르던 것처럼 익숙한 걸음으로 나는, 요즘 부쩍 수선스러워진 집으로 이들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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