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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재단 Sep 06. 2022

"그래서 우린 지금 고독(孤獨)한가?"

청년 고독사에 관하여

2020년 40대 미만 무연고 사망자가 2017년에 비해 62% 증가했다. 고독사는 별도의 통계자료가 없어 무연고 사망자 숫자가 증가하는 것을 통해 추측해볼 뿐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취업난으로 고독사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유품정리 업체 인터뷰를 통해 간간히 알려졌을 뿐 고독으로 내몰린 청년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는 미비하다. 청년고독사 문제에 집중하는 청년고독사연구센터, 향기나는 벗님들의 활동을 통해 고독사 문제에 대한 사회적 접근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난 ‘공감’을 잘하고 있었을까?


우연한 계기로 정기적으로 청년들을 상담을 해 주었다. 내가 겪어온 다양한 사회 경험이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리란 막연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투철한 사명감까진 없었다. 내가 쌓아놓은 경험치를 공유하는 선(善)행의 한 종류라 생각했다. 다만, 이 감정선이 자칫 방향을 잘못 틀면 선민사상(選民思想)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상담 중에 탐탁지 않은 상황들과 마주하곤 했다. 무기력하고 삶의 의욕이 없어 보이는 청년에게 물었다.


“나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먼저 찾고 그것을 오래 할 수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 청년의 답변은 이랬다.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벌써 저는 이십대 후반으로 다가가고 있어요. 늦은 것 같아 무섭고 두려워요.”


그 대답을 듣고 갑자기 화가 솟구쳐 올라 서둘러 상담을 마무리 지었다. 아마도 그때 내가 하고 싶었은 말은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데 노력을 해서 실력을 쌓아야지, 그리고 이십대 후반이 뭐가 늦었다고 두려움에 떠는거야. 세상과 맞서 싸워야지. 그게 인생이야.” 였을 것이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을 애써 눌러 담으며 선민사상(選民思想)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근본적으로 그것이 인생 진리이며 우리 선조들이 선험적으로 쌓아온 황금 열쇠일 수 있다. 단, 여기서 빠진 감정선이 하나 있다. 바로 ‘공감(共感)’이다. 공감 없는 선의는 선민사상으로 빠지기 쉽다. 난 ‘공감’을 잘하고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청년 고독사 해결의 출발선, 공감을 깨우다


‘향(香)기나는벗님들’은 청년고독사연구센터로 당사자성을 중심으로 한 청년 실태조사, 건강 커뮤니티 활동,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수행하고 있다. 고독사 현장 특수청소, 유품정리 서비스업을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인 협동조합 리본과 협력하여 현장성을 기반으로 그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만나기도 했고, 안타깝게 삶을 등진 청년 고독사 현장에서 청년을 추모하기도 했다. 인간은 모두가 동일하지 않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며 그로 인해 직업, 가치관, 경제적 수준까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온전히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감’한다는 건 그 격차를 줄이려는 인간성 회복의 필사적인 현실 저항이다. ‘공감’이란 감정선은 이해해보려는 의지, 노력, 그리고 순간적인 집중력이다. 그 현장을 벗어나면 또 잊을 순 있지만 기억세포는 유사한 상황에 어김없이 나타나 내게 ‘공감’을 깨우곤 했다. 여기서부터가 대한민국 청년 고독사 해결의 출발선이다.


청년 고독사 현장에 들어가기 직전, 작업복을 입어야 진입할 수 있다.
청년 고독사를 알리는 캠페인 활동을 진행했다. 시민들과 ‘청년 고독사’의 원인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공감의 제스처로 맺는 관계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부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 말해왔다. 그 진리는 불변하며 사람과의 관계 형성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청년들은 사람과의 관계 형성에 큰 어려움을 느낀다. 동일한 공간, 지역은 친밀감을 대표하지만 거리적인 친밀감이 정서적인 친밀감을 담보하진 않는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회사 상사, 동료와의 저녁 식사보단 집에서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을, 그리고 유사 관심사를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모임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님’으로 부르는 것이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존중의 의미로 표현된다.


<90년생이 온다.>란 히트작 출간되고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우리 선조들이 선험적으로 쌓아온 인생의 진리가 절대시되며 도태된 이들에 대한 ‘공감’의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로 인해 밀려난 이는 더욱더 움츠러들고 관계 형성에 실패한다. 이들의 도피처는 유일한 자신의 공간인 ‘집’이다. 집(home)은 안락하지만 집(house)은 불행하다.


최근 동네커뮤니티 등에서 ‘소셜다이닝’ 형태로 가볍게 식사를 하며 유사 관심사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종종 보인다. 적극 권장할 만하다. 큰 성공은 작은 성공의 누적 결과물이다. 오늘부터 대한민국 청년을 본다면 공감의 제스처로 관계를 맺어보자.


“그래서 지금 고독(孤獨)하십니까?”



글쓴이 김인호는

이십대 초반에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목격하고 친구들과 함께 사회적기업을 창업했다. 이후 꾸준히 사회 참여를 하면서 한양대학교에서 사회적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코로나 시대 이후 대한민국에서 붕괴된 사회적 자본 회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청년재단의「리얼리뷰 청년매거진」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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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 Unplash, Dejected lockdown m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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