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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Oct 27. 2023

인정을 받는다는 것.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집안일'이 그렇다.


한집에 살며 그 누구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대부분은 엄마의 몫인 경우가 많고 하루종일 종종거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끝낸 후 파리가 앉아도 미끄러질만하게 반질반질한 집을 보며 뿌듯해하고 있노라면 금세 가족들이 귀가하는 시간이 된다. 


가족들의 귀가는 반갑지만 그와 동시에 하루의 노력은 온데간데없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린다.


그리될 거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순식간에 어질러지는 집을 보고 있노라면 아쉬운 마음을 감출길이 없건만 그 위에 '하루종일 집에서 쉬었다' 거나 '집에서 하루종일 도대체 뭐 하는 거야?'라는 말 한마디 듣고 나면 그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고 더 억울한 건 해놓아도 티가 나지 않으면서 또 하루이틀 미루면 대번에 티가 나버리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일은 일대로 하고 생색도 내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19살 겨울 무렵부터 쉬지 않고 일을 해왔던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대략 8년간의 전업주부의 삶을 보내게 되었다.


살면서 그렇게 우울했던 날들이 있었을까.


'나'의 존재는 온 데 간 데 없이 그저 '누구누구 엄마'만 남아있었고, 놀러 다니길 좋아했던 나는 혼자서는 외출조차 쉽지 않아 집안에 셀프감금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일할 때보다 시간적으로 여유로웠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두세 시간마다 울어대는 통에 밤새 잠은 잠대로 설쳤고 아이가 잘 때만이라도 자야 하는데 어질러진 집안꼴이 눈에 거슬렸다.


정리 조금 하고 쉬어야지 하면 여지없이 아이가 깨어나고 다시 아이와 씨름하다 잠들면 집안일의 반복이었다.

첫째 아이가 조금 자라 한숨을 돌릴만하면 둘째가 태어났고 또 셋째가 태어났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바둑이도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바둑이도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바둑이도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나의 육아는 마치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 같았다. 


그와 동시에 내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다. 




거울을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살이 찌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다크서클이 늘어져있고 이마엔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자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서있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내 자아 저~~ 기 끝 어디쯤에 긍정적이고 활동적인 내가 아주 조금은 남아 있었던가보다.


나는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동시에 구직활동도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면접을 본 회사에서 출근을 제의받았다.


아직 어린 8살 5살 4살의 세 아이가 눈에 밟혔지만 또 언제 애 셋 딸린 경단녀 아줌마에게 이런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었다.


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출근을 시작했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도움이 된다라고 느끼는 것은 내게 아주 큰 에너지가 되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진심으로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인정'이었다. 


결국은 나 스스로의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마음가짐 하나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듯이 높은 자존감도 무언가를 먹고 자란다.


내 경우 그건 '인정'이었던 것 같다. 


학생일 때 공부를 하고 성적을 받는 것. 사회에 나가서는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것. 

결혼을 해서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 


모두 비슷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그 과정과 결과가 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내가 노력을 했고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는 것. 그것만큼 큰 동기부여는 없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나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은데 주변에서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 생색을 낸다'라는 듯이 핀잔을 주면 이내 입을 닫게 되고 소통이 단절되면 마음도 단절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내게는 전업주부의 삶이 그렇게도 힘들고 지쳤었는가 보다.


어느덧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이따금씩은 아이들에게 소홀한 것 같아서 나쁜 엄마인 것만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있어야 내 가정도 있고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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