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가족들로부터 안부 인사처럼 듣게 되는 이야기다. 나만큼이나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한 바람이, 온전히 건강한 아이의 모습을 꿈에서라도 만나게 하나 보다.
사실 꿈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모습인데 막상 현실에서 '엄마~'하고 말하며 달려오는 아이의 모습이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잘 다물어지지도 않는 아이의 턱을 손으로 당기며, 입모양을 만들어 준다.
'윤제야, 엄.마. 이렇게 말해봐.'
우리 아이에게 아직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자라면서 의사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졌다. 걷지 못할 거라고 했으나 걸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말하지 못할 거라고 했으나 희미하게나마 소리가 나고 있으니 분명 좋아지고 있는 거겠지.
한 달 전에 과학뉴스기사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기업, 엔젤로보틱스'
이 기업이 곧 상장을 한다며, 그동안 출시했던 제품들이 선별급여 적용된다는기사였다. 이 얼마나 희소식인가!
짬을 내어 관련 기사들을 더 검색해 보고, 자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웨어로블로봇의 성능과 사용대상자, 현재 제품이 상용화되고 있는 범위 등을 찾아보았다. 서울과 수도권 몇몇 대학 병원 및 공공 기관에서 이미 시범적으로 도입한 곳들이 있었다. 이미 윤제는 우리가 사는 지역 보건소에서 운영 중인 로봇재활치료실에 1년 넘게 다니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재활치료 로봇(Walkbot)을 타면서 윤제는 보행을 학습했다. 현실은 거의 주저앉듯 걷지만, 로봇을 타면서 척추도 곧게 펴고 정면을 응시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치료실에서 사용 중인 walkbot은 지면에 로봇이 고정된 고정형 로봇인데, 엔절로보틱스의 재활치료용 웨어러블 로봇 엔젤렉스 M20는 사용자가 의지를 가지고 힘을 조절하여 보행 훈련에 적극 참여할 수 있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사실 비장애인도 트레드밀 운동이 가장 지루하고 힘들다는 점을 생각할 때, 엔젤렉스 M20는 지면을 직접 딛고 이동하는 보행 훈련이라는 게 가장 매력적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환영할 수밖에.
기사를 읽고 쿵쾅 나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며칠 뒤, 시청에 인터넷으로 민원 글을 올렸다. 우리 지역에, 공공보건 의료의 발 빠른 업그레이드를 요청하는 장문의 글이었다.지난 삼십여 년간 나와 상관없는 불의와 불편을 묵인하며 살았는데, 내 자식일이 되고 보니 내가 이렇게 재빠르게 나서는 사람이 되었다. 필요하면 어떻게든 정보를 검색하고 방법을 찾아내는 그런 '엄마'가 되었다.
며칠 후, 담당자로부터 꽤 고무적인 답변이 왔다.
점차적이라는 말이 참 반가웠다.
올해 안 되면, 알음알음 알게 된 장애아이 부모들과 뜻을 모아 서명운동이라도 해서 다시 민원을 넣을 것이다. (마침 선거철이라 살짝 기대해보기는 한다.)
얼마 전, 엔젤로보틱스가 주식 상장 첫날 225 % 급등해서 주식시장이 뜨거웠다. 기대가 큰 만큼 거품도 있겠지만, '웨어러블 로봇의 미래'의 첫 번째 슬로건으로 '인간능력 회복' 꼽는 엔젤로보틱스의 선한 영향력이 유종의 미를 거두고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사심을 담아 응원해 본다. (엔젤로보틱스홈페이지 )
뉴럴링크(Neuralink)
이 글을 쓰기 하루 전, 월간 과학동아 4월호에서 '뉴럴링크' 기사를 읽었다. 처음에는 일론 머스크가 또? 이랬는데 웬걸.
뉴럴링크는 일론 머스크가(우리가 아는 그 일론 머스크) 2016년 설립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Computer Interface)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기업이다.(나는 요즘 의학 과학자/공학자들을 굉장히 존경하게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BCI 기술은 이미 50여 년 전부터 알려져 왔기에 새로운 것은 아니나, 뇌파를 측정하기 위한 측정 장치의 발전과 부착하는 방식이 꾸준히 개발되던 중, 최근머스크의뉴럴링크가 하드웨어적 혁신으로 선방을 날린 것이다.
BCI전문가 조일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뉴럴링크가 개발한 하드웨어에 주목했다. 거대하고 불편하며 뇌손상의 우려가 있는 기존 침습적 BCI 장비를 가볍고 안전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참고. 과학동아 4월호 41.p)
또 BCI 기술은 뇌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 작고 유연한 전극을 만드는 데에서부터 전극을 심는 로봇, 또 뇌파를 수신하는 무선 통신 기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연구되어 왔는데, 뉴럴링크는 이 기술들을 섭렵해 2023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임상시험을 시작하여 2024년 첫 임상시험자가 생각만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고 발표했다.
물론 뉴럴링크의 안정성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사실 논란보다 앞으로의 실효성이 더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역시나 내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BCI기술이 마비환자의 거동을 돕거나(재활치료) 발성을 돕는(의사소통) 연구이다.
'디지털 브릿지'로 끊어진 뇌와 척수를 이어 뇌 신호를 다리에 보내 보행을 돕거나, 뇌 기능의 마비로 안면근육이나 발성 근육을 제어하지 못하는 환자의 뇌에 전극을 이식하여 뇌의 신호를 받아 컴퓨터로 아바타가 말과 표정을 해석하여 의사소통을 하도록 돕는다. (SF영화의 어떤 미래에 있을 법한 일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기술이 되었다.)
BCI 기술이 의료목적으로 이용(利用)되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검증을 거쳐 안정한 지를 확인해야 하고, 필요한 사람들이 누리려면 상용화되기까지의 합리적인 가격이 책정되어야 하고, 또 환자(사용자들)가 느끼는 실질적인 편의를 더 심도 있게 고민하고 개선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또한 이런 기술들이 오용되거나 남용되지 않도록 기민한 태도로 관심을 가지고 감시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에 로봇공학자 피터 스콧- 모건은 자신의 저서 '나는 사이보그가 되기로 했다'를 통해, 피터 자신이 루게릭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고 나서 뇌를 제외한 다수의 장기를 기계로 대체하고(사이보그) 뇌와 인공지능을 연결하여 앞서 말한 아바타로 소통하기 위한 도전의 과정을 적었다. 물론 그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지만, 죽음과 질병은 우리가 피할 수 없으니 남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통해 남은 자들에게 과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듯 하지만 여전히 미래의 일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들이 발전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나 또한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엄마'라고 부르는 윤제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윤제가 스스로 걸어와 내 품에 안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떤 미래 어딘가에 닿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다.
의료파업기사로 연일 마음이 무거운 요즘, 의학공학에서만큼은 희소식이 들려오고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