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1년을 24개로 나누어 정한 날들을 뜻한다. 절기는 중국의 기후를 바탕으로 하는데 우리나라와 중국은위도상 비슷한 위치에 있으니 농사를 중요시 여겼던 우리나라 역시 예부터 24 절기를따라한 해를 계획하고 절기에 따른 변화를 관찰해 왔다.
24절기 이미지 출처 : 천문학회
어제는 계절상 춘분에 속한 절기 중 하나 인 청명이었다. 이때를 기준으로 농업인들은 농사일을 준비한다고. 하루 지난 오늘은 식목일로 예전과는 다르게 공휴일이 아니므로 보통은 식목일 전 주말에 도시별로 플로깅을 하거나 반려목 심기 등의 행사들이 개최된다. 우리 집도 지난 주말, 매실 묘목 두 그루를 심었고, 마당에 튤립이며 페츄니아 꽃을 심어 겨우내 삭막했던 마당에 봄을 심어두었다.
지난 주말까지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나뭇가지에 봄눈만 삐죽삐죽했던 꽃나무들이 지난 월요일 최고 기온이 20도를 웃돌며 갑자기 만개했다. 혼자 생각하길,
그러고보니지구가 많이 아프긴 한가보다. 점점 24 절기가 뒤죽박죽 되고 절기들에 맞지 않은 기후와 이상 기온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 집 마당에 서너 종류의 나무들이 있는데 어떤 나무는 아기 손가락처럼 작은 초록 잎사귀들이 몽글몽글한데, 어떤 나무들은 아직 초록 잎사귀는 보이지도 않고 입을 꼭 다문 동그란 봉우리인데 꽃부터 만개해 있었다. 내 딴에는 '큰일이다. 이상기후로 나무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꽃부터 피워내는구나' 혀를 차며 걱정을 했더랬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식물들이 딱 하니 나와있었다.
개나리, 벚꽃, 목련, 산수유, 진달래,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매화 등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사실 우리 집 마당에도 있고, 집 밖에 널려있는 나무들인데, 지난 3년 동안 피고 지고 해도 별 관심 없다가 올해, 문득 왜 잎보다 꽃이 먼저 폈나며 기후걱정으로 한숨을 쉬던 내가 괜히 머쓱해진다.
나무들도 다 이유가 있으니 잎보다 꽃이 피었을 텐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종족번식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궁극의 이유는 수분受粉이다. 예쁘게 잘 단장하고, 향기를 널리 퍼트려서 벌 나비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다. 더 화려하고 풍성하게 펴서 벌과 나비를 불러 모아 수분을 하기 위해 일종의 경쟁을 하는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봄에 활동하는 벌과 나비들도 사실 겨우내 굶주린 탓에 꿀이 많은 꽃을 찾아 치열하게 먼 곳까지 날아가 꿀을 채취하는데 벌과 나비가 열일하는 만큼 성공적이고 양질의 수분이 이루어진다고 한다.(배부른 벌 나비도 나태해질 수 있다니 인생사 곤충이건 사람이건 별수 없구나)
하루사이에 만개한 벚꽃
식물들이 종족번식의 임무를 마치고-꽃이 해야 할 일/우리에게 아름다운 볼거리를 선사하고, 벌과 나비를 유인하여 수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우수수 장렬하게 떨어져 버리면 그다음부터 우후죽순처럼 새파란 잎사귀들이 풍성하게 피어난다(절기상 소만~망종).사실 꽃이 피어있는 시간은 짧지만 초록의 잎사귀에서 푸르른 녹음의 그늘로 이어진 계절은 길게 이어진다(하지~대서). 장렬하게 전사했던 꽃이 맺은 과실의 절기(상강)가 또 잠깐 돌아온다.풍성한 열매를 맺고 기운을 소진한 나무들은 붉게 저문 나뭇잎들을 떨쳐내고 기나긴 겨울을 준비한다.(입동)
화려하고 찬란했다가 우아했다가 쓸쓸했다가 끝나는 게 인생 같아 어쩐지 슬프다. 그러나 반복하는 24 절기처럼, 생명이 다하기 전까지 마음껏 피고 지고 하겠지.
다행히 꽃이 먼저 피는 이유에 대한 걱정은 이상기후때문이 아니라 단지 나의 무지에 의한 오해였지만,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식물이 열심히 꽃을 피웠는데 벌과 나비가 사라진 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열심히 꽃을 피웠는데 갑자기 된서리가 내려 얼어 죽을 지도, 가을이 짧아 충분히 열매가 농익을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려하고 예측했던 기후위기는 여름에 퍼붓는 강수, 겨울의 폭설로 뿐만 아니라, 당장 올해 벚꽃축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