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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Apr 07. 2024

역사 속 발명의 힘

식물원에서 만난 미래에서 온 그대

임금님의 12첩 수라상

사극 드라마를 보면, 임금님이 수라를 대하는 장면을 꼭 한 번씩은 보게 된다. 특히 2003년도 대장금은 시청자들에게 의녀 장금이의 궁중요리사 성장기라는 서사뿐만 아니라 역사적 고증에 입각한 궁중요리에 대한 관심을 모으면서 큰 화제를 일으켰었다. 나는 전편을 다 보지 못했지만 도마에 칼질을 하는 장금이의 손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는 장금이의 손이 달랐던 장면만은 기억한다.


사실 나는 사극에서 왕이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저 한 겨울에 저런 초록 푸성귀들이 어디서 났을까'

라는 엉뚱한 데 생각이 팔려 정작 드라마 내용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시대상황과 계절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드라마 소품팀의 실수일까, 아니면 역사적 고증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작가와 감독의 실수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궁금해하다 막상 드라마가 끝나며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그 궁금증이 오늘에서야 해소되었다.

조선시대 최초온실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테마식물원을 갔다가 바로 옆에 농업박물관이 있어서 별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조선시대 농사에 관련 된 시각 자료와 조형물들이 있었다.

아이는 '와, 옛날사람들이다'라며 쪼르르 달려가 관심 있게 관람을 했다.

세계 최초 온돌난방을 이용한 채소 재배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 조선온실
온실에 대해 최초로 기록된 세종실록에 의하면 1438년 강화도에 옮겨 심은 귤나무가 겨울을 날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온돌난방을 이용하여 감귤재배 온실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는 기존 과학적 난방 온실의 시초로 알려져 왔던 161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난로를 이용한 단순 난방 온실보다 180년이나 앞선 것으로 이로써 조선시대 온실이 세계 최초의 과학적 난방 온실임이 확인되었다.

옛 선조들의 구들장 온돌이 온실 난방으로 쓰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심지어 친환경 온실이라니!


추운 하의 한 겨울에, 궁중나인 하나가 바구니 들고 온실 속에서 천연사우나를 하며(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을까) 초록초록한 식물을 가꾸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이제 온실 재료들을 살펴보자.


온실로 쓰인 황토를 바른 흙집은 따뜻한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해 주고, 한지를 바른 살창은 햇볕이 넉넉히 들어와 식물 성장에 꼭 필요한 광합성 작용을 돕고, 한지의 특성상 통풍과 습도 조절에 적합하다.

온돌 위에 45cm가량 흙을 쌓고 식물을 심었는데 차가운 땅을 데워 흙 온도를 항시 20℃ 이상로 유지했다.(지중가온地中加溫시설) 이는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따뜻한 실내 온도뿐만 아니라 뿌리의 발육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만든 시스템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이러한 조상님들의 지혜는 현대 온실의 온수파이프를 이용한 난방 도입에 영향을 주었다.

가마에 가마솥을 얹어 물을 끓여 수증기로 실내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였다.(공중가온空中加溫시설)


실내외 온도차에 의한 결로 현상도 없고, 열에너지 효율면에서도 흠잡을 데 없는 이 친환경 온실에서 키워낸 채소는 얼마나 맛있었을까. 그리고 그 채소를 매일 12첩 반상으로 받은 우리 조선의 임금님은 얼마나 건강하셨을까. 뿐만 아니라 왕의 연회자리나 왕대비전 등 고위급 인사들을 위한 꽃 온실 '창순루'도 있었다고 하니 왕실의 겨울풍경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화려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누군가는 겨울에는 당연히 채소를 먹을 수 없지 했을 텐데 누군가는 한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없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 당연하지 않음을 인식할 때, 필요를 인식할 때 역사의 발명이 시작되지 않던가.

세종시대 전순의라는 의관이(장금이도 그렇고 의관들이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쏘아 올린 의문이 조선 최초의 온실이라는 역사적인 한방을 만들어 냈다. 세계 최초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도 남을 위대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세계 최초 온실도, 세계 최초 측우기도 모두 우리 세종대왕님 생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인문학과 과학이 전성기를 맞아 활발하게 꽃 피우던 세종대왕 시대에 의관에서 식품학자로 전공을 전향할 만큼 전순의라는 인물을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예전에 읽었던 책 '조선왕조실톡 3'의 공돌이의 시조 '장영실'편이 생각났다. 장영실의 영민함과 천재성 세종대왕의 백성을 향한 불도저 사랑이 더해져 완성된 수많은 발명품들을 생각하니(자격루, 해시계, 물시계 등등), 전순의 혹 그도 세종대왕의 부할 수 없는 사랑(일)을 듬뿍 받았던 건 아닐까 추측해 본다.(어디까지나 나의 망붕)  



조선왕조실톡3

너무 현실적 고증이라 재미있게 웃었지만, 우리의 장영실 선생님 카톡 1 보기만 해도 숨통이 막히셨겠다.


우리가 마주한 역사의 눈부신 발명은 마치 미래에서 온 미친 추진력을 가진 리더(세종대왕)와 성실하고 똑똑한 연구자들(장영실과 집현전의 학자)의 과로로 탄생했구나, 우리 전순의 선생님도 얼추 이렇게 온실을 만들어 내셨겠구나 감사한 마음에 망붕 카톡 하나 만들어보았다.


<나의 망붕시나리오 카톡>

전의순(의관) 전하, 혈압이 높으시니 고기를 줄이시고 채소를 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상전하 됐고. 이 겨울에 어디 채소가 있다고. 고기 좋아.

전의순(의관) 전하, 소인 전하께서 반드시 고기와 샐러드를 드실 수 있게 하겠나이다

주상전하 그러시든지.

. ..그후 집현전에서 농사학, 식물재배학, 건축학 섭렵하여 온실 개발, 한 겨울에 싱싱한 채소로 샐러드 무쳐 주상 수라에 고기와 함께 올림.

전의순(식품학자) 많이 드시고 만수무강하소서.

주상전하 ????이걸 해내내.


식물원에 갔다가 미개했던 나를 반성하고, 역사의 한방을 만들어내신 훌륭한 조상님들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우리 세종대왕님은 미래에서 과거로 타임슬립하신 게 틀림없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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