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ung Kim Apr 08. 2024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그래도 그건 잔. 소. 리

이게 다 널 위한 거야

국적, 인종, 종교, 문화를 뛰어넘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한 말들이 종종 있다.

재미있는 예로, 세상 모든 할머니들은 손주들의 '배고프다'는 말에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깊은 탄식을 하며 내뱉는다는 말이 있으니.

'오, 우리 손주가 뼈밖에 남지 않아 배고파 죽겠다는구나'

할머니들은 별로 차린게 없다면서 상다리가 부러지게 가득 음식을 차려내고, 배가 부르다고 하는데도 계속 손주들 입에 음식을 넣어준다. '한창 먹을 나이'라며 쉴 틈 없이 손주들을 먹이는 할머니들의 눈에, 건장한 청년이든, 나이가 든 장년이든 손주들이 잘 먹으면 그저 뿌듯하신가 보다.

어쩌면 일방적인 사랑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대개는 할머니의 그 사랑을 그리워하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하는 이유는, 별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가슴으로 전해지는 할머니의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이 앞서는 사랑도 있다.

'모두 다 널 위한 이야기'라고 어디 책에라도 쓰여 있는지 모든 잔소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도 내 부모님의 자식으로만 살았을 때는, 그 잔소리가 지겹고 답답해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술술 내뱉게 된다.

사실 우리 부모들이 하는 잔소리는 엄청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너무 사소해서 일일이 따지고 들면 하나마나한, 그런데 또 안 할 수는 없는 중요한 일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중학생 큰 아이에게 '모두 널 위한 소리'를 1절~3절까지 하는 날들이,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큰 아이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노느라 너무나 바쁘다고 한다. 축구도 해야 하고, 볼링장, 노래방, PC방도 가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아 토, 일요일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아쉽다는 말을 할 때마다 '공부는... 책은..'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간신히 욱여넣는다. 그러다 어떤 날은 '적어도 평균은 유지해야 한다'하며  잔소리를 3절까지 하기도  한다.

이미지출처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18022301655

지난 주말에는 아들이 친구들과 하이킹을 간다기에, 짧은 거리가 아닌지라, 지도앱을 찾아보며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는지, 주말이라 교통량이 많지는 않은지 나와 남편은 걱정이 많았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심도 안 먹고 나가는 아들을 불러 이야기를 시작한다.


'반드시 헬맷을 써야 해, 덥다고 벗으면 안 돼.'

'횡단보도 건널 때 무조건 자전거 내려서 끌고 가는 거야.'

'안전한 도로로 다니고 친구들과 꼭 같이 다녀야 해.'

'물도 자주 마시고, 영양가 있는 걸로 사 먹고, 몇 시까지 돌아와야 해. 중간에 전화도 한 번 하고, 아니면 카톡이라도....'


'네네...'

건성건성 대답을 하고 내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들은 이미 현관을 나서고 있다. 남편더러 같이 가라고 하고 싶지만, 중학생 아들이 친구들과 놀러 가는데 불청객이 될 게 뻔하기에(사실 아들이 난처해, 아니 창피해할까 봐) 꾹 참았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내뱉고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이미 멀어져 가는 아들 뒤통수에 대고 '조심해, 안전하게 잘 다녀와!'를 외쳐보았다.

이 마음이 무엇인지.

벌써 저렇게 커서 친구들과 놀러 다니다니, 대견하고 기특하기도 했다가, 아직 중학생밖에 안 됐는데 너무 풀어놓는 건가 걱정이 됐다가.

남편은 한 술 더 떠서 핸드폰으로 연동된 위치 추적기를 실시간으로 켜놓고 아들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잘 도착했네'라는 말을 듣고 나도 겨우 한시름 마음이 놓였다.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 그렇다고 위안을 해보지만 걱정이 쉬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 뒤 아들이 카톡을 보내왔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벚꽃 사진, 동물사진 등등.

별다른 말 없이 보내 사진 속에서 순간 아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엄마가 연락하라고 했으니까 연락하는 게 아니라(연락해 준 게 어딘가), 엄마 보라고 꽃 사진을 찍어 보내고(남편에게는 안 보냄), 재미있게 잘 놀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일부러 친구들과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는 사진 몇 장이었는데, 그게 마음으로 느껴졌다.

만개한 벚꽃과 꽃보다 더 싱그럽고 예쁜 아이들

아! 아이에게 걱정이랍시고, 주의 사항을 고지하듯이 잔소리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던 내가, 허공에 떠다니던 내 말들이 부끄러워졌다.


'한 번만 말할걸, 왜 자꾸 같은 말을 계속했을까.' 

'그냥 꽉 안아주며 잘 다녀오라고 할걸.'


 내 수많은 염려들이 아이를 숨 막히게 만들었을 걸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내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두 번 세 번 반복된 말속에도 사랑이 담겨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하고 살갑게 대답을 해주지 않은 아들에 대한 답답한 마음 하나.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친구들 이야기만 듣는 아들에 대한 괘씸한 마음 하나.

-이제 컸다고 부모보다 친구들이 좋다고 얼씨구나 나가는 아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 하나.


어쩌면 밴댕이 소갈딱지 같았던 내 마음이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성숙하지 못한 내가 잔소리를 함으로써 여전히 부모로서 존재감을 과시하여 아이들을 쉽게 컨트롤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일종의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참고자료-헬스조선


내가 어떤 상황에서 적절하고 바른 소리를 하기 전에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했는지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스라이팅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다(양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규희 전문의)


이 말에 비추어 아이를 양육하고 훈육하는 데 있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다면,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일방적으로 내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성찰해야겠다.


두 번 세 번 반복하고 싶어도 한 번만 정확히 이야기하고, 문자메시지 하나 보내 전달사항을 확인만 시켜줘야겠다.


말을 아끼고 한 번 더 웃어주고, 안아주는 것으로 부모로서 나의 존재에 만족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지만,

머리 아닌 가슴으로만 하는 이야기,

한 번으로 충분한 그런 사랑하는 마음만 담은 이야기,

잔소리 말고 그런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공식적으로 다짐해 본다.




그만하자~그만하자~  

사랑하기만 해도 시간 없는데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이야기

네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

...

사랑해야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그만하자 그만하자 이런 내 맘을 믿어줘

잔소리 (아이유 with 슬옹) #멜론뮤직


매거진의 이전글 역사 속 발명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