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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Apr 09. 2024

자나 깨나 불조심

해도 해도 모자란 잔. 소. 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이미지 출처 https://v.daum.net/v/20101114085403073

공익광고 포스터의 가장 큰 장점은 짧은 시간에 시각적으로 누구나 쉽게 전달하는 바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담배꽁초 하나 두고 그 배경으로 집과 산이 활활 타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불이 되어 집도 산도 모두 태울 수 있다는 것을, 사람 목숨도 앗아가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준다.


오늘은 미세먼지도 없고, 조금만 둘러보면 흐드러진 꽃이 만발한 야외활동하기에 참 좋은 날씨다. 봄과 초여름 사이의 온도에 적당히 바람까지, 이 좋은 날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정말 딱 좋은 날씨지만, 화재가 발생하기 딱 좋은 건조하고 좋은 날씨이기도 하다. 어제는 안전안내 메시지가 떴다.

2024.4.8.(월) 15:00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경계 발령. 쓰레기 소각 등을 금지하여 주시고 산불 발견 시 즉시 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계절을 만끽하기에도 바쁘지만, 혹시 주변에 작은 불씨가 될 만한 것들이 있는지도(내가 만들고 있는지도) 눈여겨봐야 한다. 자칫 부주의로 돌이킬 수 없는 인명, 재산피해를 예방하자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도 입이 아프게 말해도 부족하다. 안전염려증이라고 유난 떤다는 핀잔을 듣더라도, 늘 주의하고 확인해야 한다.

화재를 직접 목격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내가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 단지는 시내에서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사방이 과수원으로 가득 둘러싸여 있어서 꽃이 피고 초록의 무성함, 가을의 짙은 낙엽, 겨울의 황량함까지 사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정서적으로 참 좋다.

그런데 때는 무더위가 한 풀 꺾인 작년 9월 중순, 저녁으로 샤부샤부를 해 먹고(잊히지 않는 저녁메뉴) 너무 배가 불러서 달밤 체조나 할까 마당으로 나갔다가, 우리 집 뒷마당에서 5m도 채 되지 않는 과수원 옆 컨테이너가 불에 활활 타는 것을 목격했다. '어머머머머'를 한 스무 번쯤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119를 눌렀는데, 옆 집 아저씨가 벌써 신고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고, 주방 쪽 창문을 주시하면서 종종거리며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했다.

설마 저 불이 우리 집까지 넘어올까 싶다가도 혹시 넘어오면 일단 급한 대로 마당 물호스로라도 진압을 해야 하지 않나 했다.

그때 불길은 컨테이너를 타고 올라가 바로 옆 키 큰 소나무에 옮겨 붙고 바람이 후루루 불자 과수원 울타리로 번지기 시작했다. 시뻘건 불이 눈앞에서 넘실거리는 모습을, 화재를 1열에서 직관하자니 진짜 무서워서 손이 덜덜 떨렸다. 멀리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제 됐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좀처럼 가까워지질 않는다(진입로가 좁고 조금 외진(?) 곳이라 소방차가 좀 헤매지 않았나 싶다).

바람이 거세게 한 번 더 훅 불자 불이 타타타닥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과수원 바닥으로 번졌다.



아차, 남편에게 일단 급한 짐부터 싸자 했다. 애들은 간단히 옷만 입히고, 둘째의 의료용품 최대한 많이(2~3일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챙기자 고했다. 마음이 급하니 우왕좌왕하게 되고 아이들은 불구경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였다. 그러던 중 소방차 한 대가 우리 집 뒷마당 쪽에 딱 서더니 소방관들이 우르르 내리고 일사불란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얼마나 든든하던지!(불길을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곧바로 4대의 소방차가 속속 도착하고 엄청난 물줄기들을 사방에서 쏟아붓자 거칠 것 없이 퍼져나가던 불길이 5분도 채 안돼서 사그라들었다. 남은 불씨까지 완전히 진압되기까지 20여 분이 소요됐고, 소방차 5대가 모두 빠져나가고 나니 9시가 훨씬 넘었다. 나는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질 않아, 화재의 현장에 직접 가서 한참을 서서 생각했다. 다행히 불길이 더 번지기 전에 소방차가 도착했고, 인명피해도 없고, 과수원의 피해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바람이 반대쪽으로 불었다면?

우리 단지는 목조건물로 지어진 주택이고 마당에 나무테크, 잔디, 꽃나무 등, 불이 나기로 마음먹으면 큰 화재로 번질 수 있는 환경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불이 난 곳에서 불과 10 m 거리에 단지 내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대형 LPG 가스통이 있었다. 그날 바람이 과수원 쪽이 아니라, 단지 쪽으로 불었다면...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에 대형화재로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을 거라는 생각에 지금도 아찔하다. 짐 싸고 뭐 하고 그럴 시간도 없이 무조건 뛰쳐나갔어야 했다. 불이 난 곳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났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 짐을 네 마네, 물을 뿌리네 마네 우물쭈물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아무리 평소에 잘 알고 있어도, 막상 위급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 하며 상황을 안일하게 판단하거나, 반대로 너무 놀란 나머지 위기상황 대처법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패닉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연소의 3요소

사실 화재는 아주 위험하고 무섭지만, 화재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3가지 요소가 만족되어야 한다.

이미지 출처; 소방청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졌을 때만 화재가 발생하는데, 반대로 말하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제거되어도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니, 나아가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주변을 둘러보면 당장 내 집부터 화재요소들이 너무 많다.

집 자체도,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가연성 물질이고(불이 붙으면 유독가스를 배출하기도 하는), 산소는 말할 것도 없이 항상 대기하고 있으니 우리가 주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요소는, 바로 발화점 이상의 온도(점화원)를 차단하는 것이다.

집안에 불씨가 될만한 것들을 찾아 점검하고 부주의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노후된 멀티탭이나 콘센트가 있는지 확인하고, 화장실의 환풍기가 켜져 있는지, 환풍기에 먼지가 쌓였는지를 살피고 주기적으로 닦아내어 먼지로 인해 팬이 과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스나 인덕션 등은 말할 것도 없이 수시로 꺼져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실질적인 관리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일단 화재가 나면 무조건 뛰쳐나가 자동차에 탄다(차키는 현관문에 걸어두고). 화재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섣불리 화재를 진압하려고 시도하지 말고 일단은 안전하게 대피한다. 자동차에 둘째에게 필요한 의료용품들을 상비해 두고, 간단한 옷가지들을 챙겨두었다.

집 안에 있는 휴대용 소화기를 여러 개, 눈에 띄는 곳에  구비해 놓고 간단하게 진압할 수 있는 화재가 일어났을 때(예전에 전자레인지에서 불꽃이 튀어 불이 났는데 30초 만에 소화기로 진압했다)를 대비해 잘 작동하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시뮬레이션도 중요하지만, 실제 대응을 해야 하는 일이 없도록 주변을 정돈하고 화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잔소리는 계속해야 한다.  화재 예방을 위한 경각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최선의 방어를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흩날리는 꽃들이 아무리 예뻐도, 작은 불씨가 화마가 되어 덮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도 소방복을 입으신 자원봉사자 아저씨께서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로, 산길 등을 되밟아가며 떨어진 불씨가 없는지 살펴보신다.  부디 이 아름다운 봄날이, 자나 깨나 불조심의 계절이 무탈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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