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는 푸르른 나뭇잎들과 피고 지는 꽃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낮과 밤의 길이로도 알 수 있다. 새벽 6시도 채 안 되었는데 동이 트고 훤하다.
저녁 7시가 다 되었는데도 뉘엿뉘엿 지는 햇살이 아직 마당에 가득하다.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돌아도 해넘이에는 아직 여유가 있다.
동네 산책길에 만난 개양귀비
뿐만 아니라, 풍경 좋은 카페들의 야외 테이블이 손님들로 북적이는 걸 보면서 좋은 계절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좋은 카페들이 많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이 붐비지만 평일 오전 카페는 의외로 손님들이 많다.
오늘은 둘째 윤제가 이른 시간 낮잠을 자주어서, 소화도 시킬 겸, 일광욕도 할 겸 산책을 나갔다.
지나는 길에 들른 동네 카페에는 야외 테라스에 3~4팀, 실내에도 5팀 이상 손님들이 있었다.
나처럼 벙거지 모자에 집에서 입던 옷 걸치고 나온 동네 주민은 하나도 없다.
삼삼오오 모여 브런치를 즐기며 대화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 사교모임의 현장에서 나는 오히려 어깨를 으쓱하며 빠르게 음료를 주문하고 돌아 나왔다.
볕 좋은 테라스에 잠깐 앉을까 했지만 드레스코드가 맞지 않은 동네 주민은 빠르게 사라져 주어야 할 것 같아서 꽃 사진만 찍고 서둘러 귀가했다.
나에게 맞는 소소한 행복
사실 내 차림새 문제가 아니라, 만날 사람도 없고, 읽을 책도 없는데 굳이 혼자 자리 차지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을 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여유 시간에 산책하고 일광욕했고, 덤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호사를 누렸으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옳았다.
초여름 날씨라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가볍게 운동했다는 데에 만족했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가 여전히 잘 자고 있어서 감사했다.
15분이었지만, 나름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으니 그것으로 오늘 하루치의 힐링을 한 셈이다.
친정엄마와 가끔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퇴직하신 친정 엄마는 아침식사를 하고 10시~11시쯤 파워워킹을 하며 천변에서 운동을 하신다. 꽃피고 초록이 푸르러지는 이맘때쯤이면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가에 쭉 늘어선 동네 카페들이 볕이 좋으니 폴딩 도어를 열어놓거나 야외 테이블을 오픈하는데, 내 또래의 여자들이 그렇게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단다.
애들 유치원, 학교 보내놓고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그네들을 보며, 친정엄마는 커피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둘째 딸이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매일 아픈 아이 돌보느라 하루종일 종종거리는 딸의 모습이 떠올라, 거기서 수다 떠는 그네들이 조금은 밉기까지 했다고.
그럴 때면 나는 늘 같은 이야기를 한다.
"엄마, 나는 지금 괜찮아. 마음만 먹으면 윤제 데리고 카페 가서 커피도 마실 수 있고, 볕 좋고 경치 좋은 우리 집 마당에서 커피 마시는 게 그거랑 뭐가 달라. 걱정하지 마요."
내가 간곡히 괜찮다고 해도, 부모마음은 그리 쉽게 괜찮아지질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친정 엄마는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둘째 딸을 보면서 부질없이 뭐 하러 그러냐며, 차라리 잠을 자고 체력을 보충하라고 늘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셨다.
예, 그러겠노라 대답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는다. 친정엄마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나대로 책과 글쓰기를 통해 쉼을 누리고 있고,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내가 믿는 창조주를 통해 평안을 누리고 있다.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다 녹기 전에(죽어도 따뜻한 아메리카노 파지만, 오늘은 운동했으니 아아) 호로로록 다 마시고, 마음에 쌓인 먼지도 툭툭 털어버리고, 아이가 낮잠에서 깨기 전에 최대한 여유를 부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