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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Apr 13. 2017

꽝손 엄마와 감성남 아들의 도전

작은 식물 키우기

살아 있는 식물 키우기에 도전한 지 언 1년이 되어간다. 첫 시작은 선물로 받은 작은 식물이었다. 사실 내가 원치 않게 시작된 식물과의 공존이었기에 도전이라는 말이 민망하기는 하다.


아주 오래전 2년간 안식년을 가시는 교수님께서 맡기신 테이블 야자를 키워 본 것 빼고는 관심과 책임지고 식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 품을 떠나 결혼하고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생명의 소중함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생명 있는 것들은-누군가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자란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런 마음이 들어서인지 선뜻 집에 화분 하나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책임지고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자꾸 조른다.

처음에는 강아지, 고양이가 키우고 싶다고 했다. 나와 남편이나 털 있는 동물은 질색이다.

안된다고 했더니 그러면 물고기가 키우고 싶단다. 남편은 어릴 적부터 커다란 어항에 각종 열대어를 한 가득 키워봤다며 자신 있게 오케이 했지만, 나는 생선 비린내, 물비린내에도 기겁하기에 또 반대했다.

결국 아들은 원하는 것들을 다 거절당했다.

형제자매도 안 만들어 주면서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질책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애완용 동물도 내가 주양육자가 될게 불보듯 뻔한데 잘 보살필 자신이 없다.

 "맛있게 먹어"라며 꽃에게도 예쁜 말을 건네는 아이.


어느 여름,  언니가 사슴벌레를 아들에게 선물해주었다. 그래, 털도 없고 냄새도 안 나고 또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  큰 맘먹고 키우자했다. 암수 한쌍의 사슴벌레는 의외로 손 갈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 무서워하더니 아이도 눈 뜨면 새 식구에게 쪼르르 달려가 안부를 물었다. 그렇게 두 계절이 지나 겨울 어느 날, 녀석들이 톱밥 속에서 나오질 않더니 이내 동면에 들어갔다. 인터넷에서 사슴벌레 동면을 찾았다. 사슴벌레 보금자리에  새 톱밥을 깔아주고, 먹이통을 치우고, 숨구멍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단열재로 감싸주고 빛이 들지 않는 베란다에 두었다.

아이는 봄에 만나자며  이미 곯아떨어져 내다보지도 않는 녀석들을 향해 몇 번이나 아쉬운 인사를 했다.

긴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에 녀석들을 꺼내보았다. 먹이통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녀석들은 다시 꾸역꾸역 몸을 파묻는다.

몇 번을 꺼내놔도 다시 기어들어가는 것이 아직 더 자야 하나 싶어 먹이통을 빼고, 다시 수면모드로 바꿔주었다.

이틀이 지났나. 다시 녀석들을 찾았을 때, 두 녀석 모두 톱밥 밖으로 나와 배를 뒤집고 누워 꼼짝도 안 했다.

아뿔싸. 긴 겨울 동안 단잠을 자고 나온 녀석들은 결국 배고픔으로 죽어버렸다. '먹이통은 그대로 둘걸... '

몇 번이나 소용없는 말을 되뇌었다.

아이는 말없이 옆에 앉아서 녀석들의 몸통을 뒤집어 보고, 힘 없이 굳어버린 다리를 툭툭 건드려본다.

아이를 안아서 토닥여 주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톱밥에 넣어서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 그 뒤 한동안 무언가 키우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2017년, 다시 봄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시장에 가서  율마(골드 크리스트 윌마, 관엽식물)베들레헴(오니소 갈럼, 백합과 구근), 다육식물을 샀다.



무늬산호수,산호수,율마,베들레헴,거미줄바위솔, 부용, 여제

여전히 아이는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물을 주고 만져준다. 어느 날은 화분 안쪽 흙에 세 잎 클로버를 발견하고는 너무 좋아했다.

따뜻한 햇살이 가득 비추면,


"엄마, 해님이 따뜻하게 해줘서 꽃들도 정말 즐겁겠다. "


라며 한동안 노래 부르듯 종알거렸다.


"엄마, 씨앗을 심고 싶어. 이모네처럼 씨앗 채소를 심을래"


그리하여 우리는 지난 주말에는 상추 씨앗을 샀다. 모종을 사려했으나, 씨앗을 사겠다는 아이의 고집을 꺾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께 화단의 흙을 써도 되냐고 여쭈었더니, 흔쾌히 제일 깨끗하고 좋은 흙이 있는 곳을 알려주시며, 친절하게 심는 과정도 설명해주셨다.

 

스티로폼 상자에 흙을 10 cm 가량 채우고,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깊이에 씨앗을 적당히 심어주고, 싹이 나기 전까지 신문으로 덮어주었다. 하루 한 번 흙이 마르지 않도록 신문 위로 조리개로 물을 뿌려주었다.


매일 몇 번이고 씨앗의 안부를 살피던 아들의 기다림 끝에, 5일이 지나, 드디어 싹이 올라왔다.


"와, 씨앗에서 싹이 진짜 나왔다. 너무 귀여워. "

듬성듬성 나서 잡초인줄. 휑한 나머지 부분은 씨앗이 흙속에서 썩은듯.


휴.

다행이다.


아들에게도 씨앗에게도.


저 작은 잎이 햇빛 받고, 우리 가족 사랑받아 쑥쑥 잘 자라주기를.

꽝손 엄마는 조마조마하다.

여리여리한 새 잎이, 그리고 예쁜 아들의 마음이 다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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