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사람에게는 모두 이름이 있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용 물고기에도 이름이 있으며,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것에는 저마다 그에 알맞은 이름이 있다. 감탄과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그것'의 이름이 '그것'일 수 밖에 없게 만든, 그 옛날 아담 할아버지의 작명센스에 박수를 보내고 싶기도하다.
대부분의 사람과 사물은 평생 같은 이름을 부여받아 산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본래 이름이 바뀌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옛말에 사람은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다 했으니, 누구 하나 그 이름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면 반영구적으로 지속된다고 할 수있지 않을까.
이름에 대해, 어린시절 나는 너무 평범한 나의 이름이 조금 부끄러웠다. 주목 받길 좋아하고 특별해 보이고 싶어했던 나는 내 이름이 시시하다며, 스스로에게 걸맞다고 여겨지는 희망사항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오글거리고 입에 붙지도 않는 어색한 이름을 멋지다고 여긴 것이 아주 잠깐 사춘기의 반항이어서 천만다행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살아보니 이름의 가치와 무게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됐다. 내 이름 뒤에 남겨진 기록들이 지금까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해주었고, 가끔 될대로 되라며 흐트려 놓았던 마음과 생각을 추스르게 해주었던 인생에 대한 책임감 역시 내 이름 석자에 있었다.
또 감사한 일은, 나는 특별히 잘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동명으로 살고있는 다른 '김은정'들이 빛을 발하며 저마다 자랑스러운 삶을 살아주고 있어서 그 긍정의 힘에 더불어 나도 내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다른 '김은정'들은 늘 주변에서 좋은 평판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들었던 이름에 관한 가장 기분 좋은 말은 '김은정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다 멋지다니까.' 였다. 거기에 나도 은근슬쩍 숟가락 얹어 놓고 있으니, 저절로 괜찮은 인생인듯 했다. 또 최근 평창동계올림픽대회에서 활약한 팀킴(Team Kim)의 안경선배 덕분에 한동안 내 이름은 실시간 검색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주 좋은 의미에서. 이 자리를 빌어 안경선배께 감사하고 싶다. 반대의 경우,괜히 같은 이름 이라는 이유로 굴비 엮듯 싸잡아서 욕 먹기 십상인데, 오히려 이름의 위상을 높여주셨으니 나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요즘 이름에 대한, 더 정확히 말하면 작명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하게 된다. 큰 아이를 이어 7년 만에 임신을 했고, 그 어렵다는 자연 쌍둥이 임신을 했다. 심지어 성별이 다른 쌍둥이라, 출산이 아직 남아 있음에도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일가 친척이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게 되었다.
처음에 농담삼아 이런저런 이름들을 갖다 붙이기도 했다. 외자로 짓고 싶다는 나의 말에 언니가 내민 이름은, 오전, 오후였다.(남편은 오씨성을 가졌다) 남편은 한술 더 떠서, 큰 아들이 좋아하는 과자 회사와 라면 회사이름을 따 오리온, 오뚜기 라는 이름을 내민다. 배꼽을 잡고 웃다가 문득 농담이라도 이름은 재미로 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의 평생을 어찌 장난삼아 결정짓는단 말인가. 그 이름의 무게를 모르지 않기에, 웃음기 싹 빼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고려하다보니 정작 뜻과 의미에 너무 치중해서 부르기 힘든 이름들이 난무하기도 했다.
아... 옛날 어른들이 돈을 주고 작명한 이유를 알것 같기도 하다. 자다 꿈에 이름 석자가 떠오르는 계시를 받지 않는 한, 우리 부부의 작명 작업은 쉬이 결말을 맺지 못할 듯 하다.
김춘수님의 시 구절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머릿속을 맴도는 이름들을 곰곰히 되뇌어본다. 꽃이 되어 우리에게 와줄 소중한 생명의 이름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