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날에 피는 꽃.

그 역시 아름답다.

by Eunjung Kim

연이은 따뜻한 햇살과 바람은 꽃이 피는 계절이 왔음을 예고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곳곳에 형형색색 꽃들이 앞다투어 봉우리를 피워낸다.

아파트 단지만 둘러보아도 하늘 높이에는 벚꽃과 목련들이 흐드러져 있고, 눈높이에는 노란 개나리, 산유수, 매화들이 고운 자태를 뽐을 내며, 고개를 숙이면 양지바른 잔디밭에는 제비꽃들이 옹기종기 피어 수줍게 웃고 있다. 무엇보다도 무심하게 보도블록 귀퉁이에 피어난 민들레나 이름없는 풀씨들도 고개를 까딱이며 '나도 봄이야'를 외치는 듯한 모습이 눈에 띄어 쭈그리고 앉아 한참 바라보게 된다.


밤새 많지 않지만 비가 내렸고 제법 바람이 불었다. 어제 보았던 아기 손가락 같이 하늘거리던 녀석들이 다 떨어져 버렸을까봐 걱정이됐다. 꽃이 다 떨어졌을까봐 걱정이라는 나의 말에 등교준비를 하던 아이가 툭 한 마디 던진다.


"엄마, 비가 오면 나무가 물을 많이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서 꽃을 더 많이 피울거예요."


때로 아이의 직관과 통찰력은 어른의 쓸데없는 걱정에 명쾌한 해답을 준다. 등굣길에서 다시 만난 꽃나무들은 어제보다 훨씬 생기있고, 꽃도 더 많이 피워냈다. 흐린 하늘에 코끝이 찡해지는 바람이 불었지만, 분명 어제보다 오늘 피어난 꽃이 더 풍성하고 예뻐보인다.


문든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갔다.

- 아, 나는 늘 맑고 화창한 봄날 흩날리는 벚꽃이 아름답다는 틀에 박힌 사고를 하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흐린 날 꽃구경은 우중충하고 별 감흥이 없다고 느꼈나보다.


- 아, 나는 겨울에도 비싼 후리지아를 사다 꽂아 놓고 향기에 흠뻑 젖어 활짝 핀 그 상태의 꽃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온실에서 피어나 계절에 상관없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그 단편적인 아름다움에 익숙해졌나보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잡초처럼 자라 만개의 순간을 기다리다, 그러다가 어느 날 툭 하고 피었다 설령 그렇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향기를 퍼트릴 이름 모를 들꽃들의 아름다움은 미쳐 보지못했나보다.


이만큼 살았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고, 이만큼밖에 살지 않았는데 굳은 살 처럼 박힌 고정관념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인생도 그런 것일 텐데.

밝은 날 햇빛 가득 머금고 많은 이의 갈채를 받으며 피어난 인생도 있고, 천둥번개, 비바람 맞으며 쓰러지다 간신히 피어나는 눈물나는 인생도 있고, 그저그런 흐린 날에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피어나는 인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 자체가 꽃이라고 한다면, 언제, 어디에서 피어나든 꽃은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 진부한 클리셰(cliché)지만 이러한 생각이 민들레 홑씨처럼 바람타고 멀리 퍼져 나가 여기저기 흩날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그 누구도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인생의 무게를 저울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처럼 흐린 날 피어난 어떤이에게 그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당신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고.


본인의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이제 다른 사람 마음속의 울고 있는 아이의 눈물운 알아채고 닦아줄 수도 있겠죠?

《순간의 나와 영원의 당신, 손현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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