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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0. 2023

2. 기형이 아닌 특별함

Q87.2 주로 사지를 침범하는 선천기형증후군

네이버 카페에서 소개받은 서울 A병원 유전학센터에서, 우리 아이의 병명이 마침내 확정되었다. 국내에서 KT증후군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교수님께서는 우리 아이의 다리를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이셨다.  


"Klippel-trenaunay syndrome, KT 증후군 맞아요"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의사를 통해 확언을 들으니 몸이 다시 한번 착 가라앉았다. 몇 분 안 되는 진료시간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특 풀렸다. 담당 간호사가 앞으로의 진료 일정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안과, 초음파진료, 심전도, 엑스레이, MRI, 조직검사 등등.. 머리가 아득해졌다. 수많은 일정들을 머릿속에 바쁘게 주워 담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날, 아이의 진단서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상병코드 Q87.2 주로 사지를 침범 선천기형증후군'


진단서의 '기형'이라는 글자가 홀로 볼드체를 입고 나에게 또렷이 다가왔다. 기형, 기형, 기형. 이렇게 뽀얗고 이쁜 우리 아기가 '기형아'라고? 나는 온몸으로 현실을 부정했다. 다리만 조금 보랏빛일 뿐이지 어느 한 구석 안 귀여운 곳이 없는 우리 아기에게 '기형'이라는 어는 전어울리지 않았다.  우리 이가 그저 조금 특별할 뿐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우리 아이는 KT 증후군임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병변의 정도가 약한 편이기도 하다. 바지를 완전히 걷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그날 나는 유전학센터 진료를 기다리며 수많은 '특별한' 아이들과 마주쳤다. 유전학센터는 유전자변이, 염색체변이로 인한 장애나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얼굴 어딘가가 이상한 아이부터, 몸이 많이 불편한지 휠체어에 축 늘어진 채 태블릿만 보던 아이, 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다운증후군 아이까지. 모두에게  '기형'이라는 낙인이 찍혀있을까. 나는 한동안 그 단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기형이 아 특별함


나는 '기형'이라는 다소 폭력적인 단어 대신, 아이에게 '특별함'이라는 옷을 입혀주기로 결심했다. 내 발에 무지외반증이 있는 것처럼, 남편이 내성발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저 아이의 발과 다리도 조금 특별할 뿐이라고.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 아이의 다리를 보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어올 때, 이렇게 답하곤 한다.

 

"조금 특별하게 태어났어요"


그러면 상대방도 (내게 당혹감을 들키지 않으려 무진장 애를  썼을지도 모르겠지만) 별스럽지 않은 듯 제 갈 길을 가곤 한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특별함이 있다. 어떤 특별함은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특별함이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그리 아름답지 않더라도 '특별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쾌활한 느낌은 '기형'이라는 단어의 불쾌감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그날, 유전학센터 앞에서 만난 모든 아이들이, 아니, 세상 모든 '이상한 형태'의 아이들이 '특별함'의 옷을 입었으면 한다. 어느 누구의 눈초리와 시선도 받지 않은 채, 그저 조금 특별한 아이로 평범한 행복을 누려가길.  오늘도 나는 그렇게 조금 특별한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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