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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Sep 04. 2024

개와 정승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라는 말이 있(었)다. 귀천을 가로지르는 이 당위 표현은 논리상 귀천 구별 현실을 전제한다. 이때, 개같다는 말은 흔히들 천하게 여기는 직업이나 행동을 가리킨다. 천하다는 말이 악하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라 해도 개가 지니는 통념상 이미지로 보면 비윤리나 불법까지 포함 가능하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번 다음 품위 있게, 바르게 살면 된다, 그쯤으로 통용되다가 그나마 최근 들어 거의 죽은 말이다시피 한 까닭이 뭘까? 

    

그 말이 일상어 목록에 있었을 시절에는 정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사회 논리와 인물이 존재했다. 지금은 둘 다 없다. 하청제국 금융자본주의는 그런 논리를 제거했고, 상위 1% 이내 로열패밀리와 5% 이내 골든패밀리는 모두 개같이 벌어 개같이 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다: 오늘 세계는 개같이 벌지 않고는 대박 날 수 없는 구조고, 그 구조를 장악한 지배층이 돈을 정승같이 쓸 리가 당최 없다. 그러면 여기서 그나마 정승같이 살길은 없는 것인가?  

   

이치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개같이 버는 길에서 이탈해야 한다. 아무리 도긴개긴이라고는 하나 개 비린내가 덜 나는 삶은 분명히 있다. 거기서 겨우 아슬아슬하게 살 만큼 벌고, 그 가운데서 고이 모셔내 팡이실이 운동에 참여하는 정도라면 제법 실팍한 상태함수 차를 낼 수 있다. 실팍함은 크기가 아니라 기품이다. 기품은 볼품없는 팡이실이 사건에서만 피어오르는 섬밀 숭고다. 섬밀 숭고야말로 개같이 벌어 개같이 쓰는 죽은 돈을 되살려낼 암팡진 씀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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