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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Nov 20. 2024

나나보조 이야기303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71



나아가지 않고 되돌아오는 물 걷기-중랑천1 

    

내가 지난 20년 동안 온 정성을 바쳐 공부하고 치유해 온 마음 병은 우울증이었다. 다른 질병을 전혀 치료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우울증이 지닌 깊고 무거운 중요성을 붙들고 씨름하는 일에 몰두했었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다른 질병에 눈길이 덜 가서 이른바 탐색 이미지가 형성되지 못했다. 머리로 알아차려도 가슴으로 끌어안지 못하면 현실 삶으로 이어지지 않게 마련이다. 머리와 가슴 사이는 참으로 멀다.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라는 숙성 과정을 관통하고야 인연은 맺어진다. 지난 9월 어느날 의자로서 내 삶을 통째로 되돌아보게 하는 죽비가 날아들었다.   

   

우울증으로 세 번이나 입원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니고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아 나를 찾아온 분과 여러 달 상담했다. 얼마 동안 한약을 병행함으로써 치료를 두텁게 만들었다. 안심해도 되겠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비정기적 상담으로 돌리고 일단락을 지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갑자기, 불면증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면서 어찌해야 하느냐고 다급하게 물어왔다. 무엇보다 충격인 말은 ‘이 상황이 너무 무섭다.’였다. 그동안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증상이라 나는 깜짝 놀랐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한의원으로 오라 했다. 오늘 밤 한의원에서 환자를 지켜야 하니, 들어가지 못한다 집에 연락하고 기다렸다. 개원 이래 처음 겪는 일이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일렁거렸다.  

    

지난 치료 과정에서 감쪽같이 숨겨졌으나 그는 우울장애와 공황으로 치닫는 특정 공포증이 깊이 결합한 상태가 분명하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인사를 하지도 못한다. “저 좀 누울래요.” 하고 기듯이 들어가 치료 침상에 드러누운 일이 그가 한 일 전부다. 한 시간이 훨씬 지났을까, 인기척이 있길래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건넨다. “힘드시지요. 공감합니다. 그래서 마냥 이렇게 누워 있을 수만은 없으니, 제가 한 가지 제안하겠습니다. 힘드신 중에 몸이 더 힘드신가요, 맘이 더 힘드신가요, 그중 덜 힘드신 쪽을 택해서 길 한번 찾아보실까요?” 그는 막 울면서 둘 다 힘들다고 한다. 예상대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살갑게 묻는다. “예, 공감합니다. 그나마 눈곱만큼 더 쉬운 건 뭘까요?” 그가 답한다. “선생님하고 말하는 거요.” 나는 더듬더듬 사근사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처음 몇 번은 안 된다고 버티더니 못 이기는 체 따라나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놓았다 당겼다 되풀이하며 나는 그의 이야기 허기증을 풀어준다. 점차 점차 그 얼굴 살이 펴진다. 두텁게 쟁여졌던 어두운 그늘이 바래진다. 전신에 무력감이 드리워진 듯해서 묻는다. “맛있는 곶감이 있는데 드실래요?” 그는 대뜸 토할 거 같다며 거부한다. 나는 말한다. “예, 좋습니다. 안 드실 거라면 이렇게 생각만 바꿔주세요. 아, 나는 치료를 위해 단식한다!” 그가 흔쾌히 수용한다. 나는 짐짓 쾌활하게 말한다. “나 밥 먹고 올게요.” 밥 먹고 들어와 단도직입 묻는다. “집에서는 잠 못 드는 밤이 무섭다면서요. 그러면 여기 계실래요?” 그가 냉큼 묻는다, 아니 받아들인다. “그래도 돼요?” 나도 냉큼 대답한다. “그럼요~” 그 또 역시 냉큼 “그럴게요~, 하고 베개를 고쳐 벤다. 나는 이 사실을 그 배우자에게 전한다. “내가 밤새 지켜보고 있을 테니 낼 새벽 모시러 오세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잠 못 자는 일로 그토록 공황에 시달리던 그가 삽시간에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아, 이제 됐다. 나만 자면 된다. 그래서 결코 잠들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내가 사실은 깊고 오래된 불면증 환자기 때문이다. 아픈 이 아픈 을 치료하는 법이다. 나는 여기서 꼴딱 밤새고 내일 하루 쌩쌩하게 진료함으로써 오늘 나를 찾아와 깊이 잠들었던 아픈 “신”께 감사하련다. 

     

새벽에 배우자가 와서 그를 데려갔다.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한의원을 나섰다.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 식사하고 중랑천 진입로를 찾았다. 밤을 새웠으니 걷기로써 찌뿌듯한 몸을 풀기 위해서였다. 둔치 아침 풍경은 상큼했다. 군자교까지 걸은 다음 한의원으로 돌아와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일과를 마쳤다.  

    

전날 상황과 달리 다소 어두운 소식이 그날 저녁 전해졌지만 일단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확인해 보니 아주 좋아졌다고 했다. 나는 가벼운 기분으로 중랑천 걷기를 재개했다. 그런데 그 사이 일이 내가 모르는 방향으로 아연 달려가고 있었다. 다 다음 날 저녁부터 연락이 끊어졌다. 걱정을 덜어낼 수 없어서 계속 전화와 카톡으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이 없다. 온갖 상상으로 가득 찬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마음에 더 이상 기다림이 부질없다고 느끼는 순간 그에게 글을 썼다. 읽지 못할 가능성이 크리라 예상하면서도 그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읽을 만한 상황인지 알지 못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놓아두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 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저는 ***님과 연락이 되지 않는 때부터 “나아가는” 내 삶을 모두 거둬들였습니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않으며, 물 걷기도 중단했습니다. 이 결단은 ***님이 어딘가 지점에서 멈춰 서 있다는 추정 아래 내렸습니다. 나만 홀로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 상상 너머에 계실 듯합니다. 지난 시간과 애씀과 돈, 그리고 이야기가 헛되이 또는 가뭇없이 사라졌다는 허망함에 자책과 원망이 더해지고 어지러이 흩어져버린 현실은 아뜩함을 더했겠지요. 그러나 ***님 잘못은 없습니다. 잘못이라면 제 잘못입니다. 공황으로까지 치닫는 특정 공포증, 거기 결합한 퇴행 증후를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절반의 치료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초기 진단 당시 나타난 증거만으로는 불가능했고, 또 그 한계를 꿰뚫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하더라도 거기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제 몫입니다.    

 

정리해 말씀드리면, 우울증 치료에 집중해 온 지난 시간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제 불완전함으로 발견하지 못한 다른 질환 때문에 이번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한의원에 머물렀던 그날 새로 발견한 문제에 대한 응급 치료가 행해졌으며, 무사히 주무셨기에 일단 큰일(!)은 막았다고 판단해서 집으로 보내드린 이후 자세한 추이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계속 연락해도 답을 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미루어 뭔가 잘못되었다 추정했으나, 그렇다고 연락을 끈질기게 시도하는 일도 도리가 아니라 생각해, “나아가는” 삶을 멈춘 채 쌓이는 시간 속에 서 있습니다.     


이 멈춤에 어떤 중대한 변화가 함축되어 있음이 분명하지만, 아직은 감지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모르는 채 더듬더듬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님 존재가 이 변화의 한 축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변화에는 제가 감당해야 할 ***님 마무리 치료 일정이 포함됩니다. 제 생각을 어떻게 대하시더라도 이의 없이 수용하겠습니다.  

   

살면서 수많은 글을 썼지만, 이 글처럼 쓰기 어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읽지 못하거나 않으실 수도, 읽고 반응하지 못하거나 않으실 수도 있음을 알면서 차마 써 보냅니다.   

  

★ 제가 응급 치료만 했다고 말씀드린 부분을 위한 치료 약을 달여 보내드립니다. 부디 드시기를 바라지만, 원치 않으신다면 폐기하셔도 됩니다.” 

     

보내진 한약을 보고 배우자가 연락을 해왔다.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아뿔싸, 기어코 그리됐구나! 내가 쓴 글을 그가 읽으면 좋겠다 했더니, 배우자가 감사를 표하며 잘 전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 직접 전한 소식에 따르면 그는 현재 퇴원해서 집에 머무르고 있으나, 다시 장기 입원할 병원을 찾는 중이다. 상황이 좋지 않은 그 이상으로 그 결정이 좋지 않을 수 있어서 나는 일단 그 전에 한번 보자고 했다. 그러겠다 약속했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어떻게 결정하더라도 나는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 존중에 터 잡아 나는 곡진하게 내 삶을 변화시킨다. 이 변화가 그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 아니 가 닿기나 할지 나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간다.   

    

두 달 만에 재개한 물 걷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삶 아닌 되돌아오는 삶 일부로 진행된다. 왜 되돌아온다고 말하는가? 우울증은 공포·불안에 반응하는 병리이므로 의당 공포·불안 공부가 곱고 촘촘하게 선행됐어야만 한다는 내 반성 때문이다. 반성이라는 표현은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만을 담고 있지 않다; 내 삶이 지닌 불가피한 불완전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가 무거운 짐을 짐으로써 내 깨침이 일어났으니 내 삶이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빚을 갚는 삶이 내 여생이다. 나는 공포·불안을 화두 삼아 태고 진실 속으로 들어간다. 걸어라, 여기가 중랑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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