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로 가던 첫해 겨울 초입. 11월 말이었다. 낙엽도 지고 뭔가 날이 을씨년스러워지면서 해가 유난히도 짧게 느껴지던 시절. 이미 일광절약 시간, 소위 서머타임도 끝나 체감상으로도 실제로도 해가 짧게 느껴지던 시점이었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은 후 뭔가에 집중하며 일하다가 잠시 쉰다고 기지개를 켜면서 창문을 보면 이미 한밤중처럼 까맣다. '어. 퇴근할 시간인가?'하고 시계를 확인하면 오후 4시다. 그렇게 비엔나, 아니 유럽의 겨울은 흐린 날씨와 어둠과 함께 시작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엔나에 살던 지인이 맥주 advent Kalender라고 적혀 있고, 맥주가 24병이 들어있는 선물상자를 하나 주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12월 1일부터 매일매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advent 캘린더란다.
마치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이 제대 날까지 달력의 날짜를 하루하루 지워가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었다. advent 맥주 캘린더는 12월 1일에 1번 맥주를 마시면서 12월을 시작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24번째 맥주를 마시고 나면 크리스마스가 오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매일 330밀리 맥주를 마셨던 것이 비엔나의 첫겨울과 함께한 기억이다.
advent kalender의 유래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유럽에서 사는 동안은 가톨릭, 기독교의 문화를 접하지 않으면 문화의 코드를 읽어낼 수 없음을 많이 느꼈다. advent는 크리스마스 직전 4주를 의미하는 대림절을 말한다고 한다. 이 단어는 advent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나타나다'라는 의미이며, 예수님이 크리스마스에 세상에 나타나기 전 4주를 뜻한다.
이 advent 캘린더는 1908년에 독일 뮌헨에서 어린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그림이 그려진 달력을 팔던 것에서 유래했고, 그 후 1920년 경에 하나씩 열어볼 수 있는 소위 '창문'이 24개 달려 있는 크리스마스 달력으로 팔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는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크리스마스 달력, 홀리데이 캘린더라도 불리며 팔린다. 미국의 핼러윈 데이에 분장을 하고 trick or treat를 하는 문화가 우리나라 이태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나는 맥주부터 이 advent kalender를 접했지만, 가장 흔한 것은 초콜릿이나 사탕이다. 그리고 차에 이어 심지어 향수, 화장품도 있다. 무엇이든 24 종류만 '창문' 안에 넣고는 어린아이, 어른들의 기대심리를 자극한다.
'라떼' 얘기가 될 수 있지만, 어릴 적 명절이나 누군가 집에 올 때 선물로 '종합 선물세트'를 가지고 오는 분이 가장 고맙고 좋았던 적이 있다. 그 선물세트 박스를 장롱 한 구석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먹고 싶던 과자들을 하나하나 꺼내 먹던 그 기억. 그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 것이 이 advent kalender다.
잠시 어릴 적 그 종합 선물세트 안에 있던 '빠다 코코넛' 과자와 초코파이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그 좋았던 기억을 조카들에게도 주고 싶어, 겨울에 잠깐 서울을 오는 길에 여섯 박스를 들고 와서 나눠줬다. 그 조카들도 먼 훗날에 advent 캘린더를 보고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매일 창문을 열고 과자와 초콜릿을 먹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를.
참고로 이 advent 캘린더는 11월이 되면 빌라, 슈파와 같은 마트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다만, 12월 1일부터 하나씩 뜯어서 즐겨야 하기 때문에 12월이 되면 자취를 감춘다. 그러니 11월이 되면 꼭 마트에 들러 초콜렛, 사탕, 티, 화장품 등 각자 원하는 아이템이 들어 있는 캘린더를 즐겨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