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 위를 걸었다.
고대의 설산은 침묵이 지겨워져 자신을 쏟아내었다. 오늘에만 4번째 산사태 지형이었다. 움직이는 돌 위를 걸을 때마다 접질린 발목은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렸다. 설산이 쏟아낸 하얀색 돌무더기에 눈이 부셨다. 하늘과 1000미터 가까워질 때마다 자외선은 12% 더 강해진다고 한다. 자외선이 하얀색 돌멩이에 반사되어 눈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돌무더기는 트레일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길은 사라지고 나타났다를 반복하였다. 넘어야 할 고개를 향한 대략적인 방향만 짐작할 뿐이었다.
자연은 말한다. 길은 여러 갈래라고. 저 높은 산중턱에 걸린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물과, 염소와 바람은 이를 이해한다. 인간이 만든 길은 획일화되기 마련이다. 나무 데크나 밧줄로 길을 만들어 놓고 꼭 여기로만 걸어라 한다. 도시의 삶도 그러하다. 여기로 걸어야지만 안전하다고, 여기로 걸어야지만 행복하다고. 그러나 여기서는 자연이 터 놓은 여러 갈래 길 중 발 길 닿는 대로 걸어간다. 아무렴 상관없다.
파시미나 염소가 지나가며 남긴 길, 야크가 지나가며 남긴 길, 혹은 언제 누가 세워두고 갔을지 모를 돌탑을 따라 다음 발걸음을 정한다. 걷다 보면 길이 길을 찾는다. 길을 찾았을 땐 훗날 얼굴 모르는 이가 길을 걸을 때 안심할 수 있도록 돌 하나 올려놓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