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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민 Oct 07. 2023

고대의 설산은 침묵이 지겨워져 자신을 쏟아내었다

인간은 그 위를 걸었다.

 


고대의 설산은 침묵이 지겨워져 자신을 쏟아내었다. 오늘에만 4번째 산사태 지형이었다. 움직이는 돌 위를 걸을 때마다 접질린 발목은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렸다. 설산이 쏟아낸 하얀색 돌무더기에 눈이 부셨다. 하늘과 1000미터 가까워질 때마다 자외선은 12% 더 강해진다고 한다. 자외선이 하얀색 돌멩이에 반사되어 눈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돌무더기는 트레일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길은 사라지고 나타났다를 반복하였다. 넘어야 할 고개를 향한 대략적인 방향만 짐작할 뿐이었다. 


자연은 말한다. 길은 여러 갈래라고. 저 높은 산중턱에 걸린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물과, 염소와 바람은 이를 이해한다. 인간이 만든 길은 획일화되기 마련이다. 나무 데크나 밧줄로 길을 만들어 놓고 꼭 여기로만 걸어라 한다. 도시의 삶도 그러하다. 여기로 걸어야지만 안전하다고, 여기로 걸어야지만 행복하다고. 그러나 여기서는 자연이 터 놓은 여러 갈래 길 중 발 길 닿는 대로 걸어간다. 아무렴 상관없다. 


통나무 주워다가 강물 위로 건널 다리를 만들었다. 

 


파시미나 염소가 지나가며 남긴 길, 야크가 지나가며 남긴 길, 혹은 언제 누가 세워두고 갔을지 모를 돌탑을 따라 다음 발걸음을 정한다. 걷다 보면 길이 길을 찾는다. 길을 찾았을 땐 훗날 얼굴 모르는 이가 길을 걸을 때 안심할 수 있도록 돌 하나 올려놓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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