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빙하트레킹] 길 없는 길 위에서 - 5

빙하가 남긴 돌의 미로를 가로지르다.

by 메이슌


빙퇴석이란?

빙하에 의해 운반되어 하류에 생성된 퇴적층


지금 이 와중에 사진 찍고 싶냐, 는 표정


빙하를 건너려는 자가 마주해야 하는 가장 큰 고난이 있다. 바로 빙퇴석 지형이다. 빙하가 녹아 중력에 의해 천천히 흘러내릴 때, 밑에 깔린 암석과 자갈은 함께 밀려 내려와 경사가 완만해진 곳에 쌓인다. 이를 모레인(Moraine)이라 부르는데, 자연의 역동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위를 건너 지나가려면 갓 깎인 뾰족한 암석 사이를 균형을 잡으며 걸어야 한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의 녹는 속도가 가속되면서, 이 곳의 빙퇴석 지형 또한 점점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때로는 내 몸집의 서너 배나 되는 암석 더미와 마주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써서 클라이밍하듯 기어넘어야 한다.




빙하 트레킹에서 가장 힘든 구간은 아마도 모레인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번 트레킹에서는 9~10킬로미터에 이르는 모레인 지대를 통과해야 했는데, 길을 찾는 일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암석 사이를 헤쳐 나가는 일은 마치 거대한 미로에서 출구를 찾는 기분이었다.



절벽 타고 내려오기 직전, 왼쪽 구석에 내가 보인다.

어느 순간, 눈 앞에 절벽이 나타났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엉덩이로 미끄러지듯 절벽을 타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미끄러진 자리 밑으로 빈 공간이 생기면서, 위에 있던 돌들이 서서히 흔들리더니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등 뒤로는 내 몸만 한, 혹은 그보다 더 큰 암석들이 굉음을 내며 굴러 떨어졌다.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나 자신을 하이커라 부르기엔 부끄럽다. 산 경험도 부족하고, 다양한 지형에 대한 이해도 떨어진다. 느린 걸음으로 걷는 나는 하루 종일 걸어서 평균 12KM 정도를 걷는데, 모레인 지형에서는 그 속도가 훨씬 떨어져 해 떨어질 때가 다 되었는데 고작 3KM를 걸었을 뿐이었다.



트레킹 예상 소요 일수인 9박10일에 맞춰서 맞춰 음식과 가스를 챙겨 왔기에, 힘들다고 마냥 길을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늘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서둘러 텐트를 칠 자리와 수원을 찾아야 했다.



물은 인간 생존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빙퇴석 지대에는 흐르는 물이 없었다. 원래는 모레인을 벗어나 수원지 옆에 텐트를 칠 계획이었지만, 모레인을 벗어나지 못하여서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모레인 지형에서 당장 텐트를 쳐야 할 상황에 몰려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물을 찾았다. 큼지막한 암석 사이로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뛰어 다녀야 했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웅덩이를 발견했다. 그러나 언제부터 고여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물이었다. 표면에는 날파리 사체가 둥둥 떠 있었고, 기름기까지 번들거렸다. ‘끓이면 괜찮겠지.’ 스스로 최면을 걸며 이제는 텐트 칠 자리를 찾아 뛰어 다녔다.



기적처럼 널브러진 암석 사이에 텐트 하나 칠 만한 자리가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큰 행운이었다. 모레인 구간을 지나는 내내 그만큼 평평한 공간을 다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자리를 놓쳤다면, 돌무더기 틈에 몸을 구겨 넣고 추위에 벌벌 떨며 밤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그 작은 공간에는 보라빛 꽃 몇 송이가 피어 있었다. 나 하룻밤 쉬자고 이 척박한 땅에 간신히 뿌리내린 꽃을 짓밟는 건 왠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약간 불편하더라도 꽃송이가 상하지 않도록 각도를 조절해 텐트를 쳤다.


밤새도록 빙하는 쉼 없이 일했다. 그에 따라 암석들이 우르르 굴러 떨어지며 어둠 속을 울렸다. 나는 지친 몸을 뉘여, 하루빨리 모레인을 벗어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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