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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민 Oct 07. 2023

빙하를 건너려는 자가 마주하는 고난의 관문

빙퇴석 지형을 통과하다


  빙퇴석이란?  

     빙하에 의해 운반되어 하류에 생성된 퇴적층  


지금 이 와중에 사진 찍고 싶냐, 는 표정 ㅋㅋ




빙하를 건너려는 자가 마주해야 하는 가장 큰 고난이 있다. 바로 빙퇴석 지형이다. 빙하가 녹아서 중력에 의해 천천히 밑으로 내려올 때 빙하 밑에 깔린 암석과 자갈은 딸려 운반되다가 경사가 어느 정도 평평해지는 곳에 쌓이게 된다. 모레인Morraine이라고도 부르는 빙퇴석은 자연의 역동성을 여실히 나타낸다. 갓 깎인 뾰족한 암석 사이를 균형을 잡으며 걸어야 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 녹는 속도가 가속되어 캉라 트레킹의 빙퇴석 지형도 움직임이 활발하다. 가끔 몸집의 3-4배가 되는 암석 무더기를 맞닥뜨리면 네 발 다 써서 클라이밍 하듯이 넘어가야 한다.



빙하 트레킹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모레인 구간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9-10KM의 모레인 구간을 통과해야 하는데 길 찾기도 만만치 않았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암석 사이를 지나는 것은 마치 미로에서 길을 찾으려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길이 갑자기 끊기고 절벽이 나타나기도 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엉덩이로 미끄러지면서 절벽을 타고 내려왔다. 내가 엉덩이로 훑고 지나간 자리는 돌무더기 밑으로 공간을 만들었기에 위에서부터 암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끄러지며 내려오는데 등 뒤로는 나만한, 나보다 더 큰 암석이 굴러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나는 하이커 치고는 굉장히 느린 편이다. 사실 나를 하이커로 지칭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경험도 부족하고, 다양한 지형에 대한 이해도 떨어진다. 느린 걸음으로 걷는 나는 하루 종일 걸어서 평균 12KM 정도를 걷는데, 모레인 지형에서는 그 속도가 훨씬 떨어져 해 떨어질 때가 다 되었는데 고작 3KM를 걸었을 뿐이었다. 예상 소요 일수에 따라 음식과 가스를 챙겨 왔기 때문에 힘들다고 무작정 느리게 걸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어둑해지고, 텐트 칠 자리와 수원을 찾아야 했다.


물은 인간 생존에 일 순위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나 빙퇴석 지대에는 흐르는 물이 없다. 모레인을 빠져나와서 수원지 옆에 텐트를 칠 계획이었지만 당장 텐트를 쳐야 할 상황에 처해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물을 찾기 시작했다. 물을 찾지 못하면 캄캄하고 차디찬 히말라야 공기를 헤쳐가며 암석 사이로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걸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물이 고여있는 곳을 찾았다. 언제부터 고여있는지 모를 물이었다. 물에는 날파리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약간의 기름기도 있어 보였다. 끓이면 괜찮을 거라고 최면을 걸며 텐트 칠 자리를 찾아 나섰다.



기적처럼 널브러진 암석 사이로 텐트 딱 하나 칠 자리가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모레인 구간을 지나는 내내 그런 평평한 공간을 다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길 못 보고 지나쳤다면 어디 돌멩이 사이에 구겨져서 추위에 벌벌 떨며 잠을 청했을 거다. 이 자그마한 공간에는 보라색 꽃 몇 송이가 피어있었다. 나 하룻밤 쉬자고 이 척박한 돌무더기 사이로 피운 꽃송이를 뭉개기엔 양심이 반발했다. 약간 불편해도 꽃송이 뭉개지지 않게 각도를 조절하여 텐트를 쳤다.  밤 사이 내내 빙하는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따라 암석은 우르르 떨어지며 소리를 내었다. 하루빨리 모레인을 벗어나길 바라며 지친 몸 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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