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캠핑 요리 시간
안 끝날 것 같던 지독히 힘든 하루도 역시나 끝이 났다. 돌덩어리 같이 뻣뻣한 허리와 어깨에도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저녁 요리 시간이었다. 저녁에 먹을 라면 생각에 지옥 같은 빙퇴석 구간을 버틸 수 있었다. 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넸다. 너는 지금 한걸음 한걸을 때마다 라면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라면 먹을 저녁 시간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텐트 근방에는 깨끗한 수원이 없었다. 그렇다고 라면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청록색 빙하 녹은 물을 떠다와 팔팔 끓이며 배탈 나지 않길 빌었다.
백패킹의 꽃은 캠핑 요리라고 하고 싶다. 우리는 인도 슈퍼마켓에서 다양한 먹을거리를 구입해 가져갔다.
위에서부터 말린 야크 치즈, 라면, 김, 미역, 흑설탕, 토마토수프가루, 참치캔, 초코파이, 각종 바, 포하 (인도식 얇게 민 쌀), 오트밀, 콩고기, 뭉달 당면(녹두로 만든 당면), 양파, 마늘, 대추야자, 치아시드, 아몬드, 호두 등등.
이 안에서 열흘간 레시피를 개발해서 먹었다. 오늘은 가장 힘든 날이었으므로 스스로에게 라면 먹을 특권을 부여했다. 라면 하나를 둘이 나눠 먹었는데 안에 참치캔 반 통을 넣고 미역도 듬뿍 넣었다. 그렇게 해서 입에 넣은 라면 한 젓가락. 이상한 맛이 날까 걱정했던 빙하수로 끓인 라면은 내가 먹은 라면 중에 손꼽게 맛있었다. 물론 참치캔하고 미역을 듬뿍 넣어 끓여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뜨끈하고 매콤한 국물에 푹 적신 면발에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날 서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산 아래서는 라면은 불량 음식이라고 거들떠도 안 보던 나였다. 그러나 트레킹 일주일이 지나고서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이 라면에 무한히 감사할 따름이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히말라야 저녁 공기, 라면 하나 나누어 먹으며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