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빙하트레킹] 길 없는 길 위에서 - 7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by 메이슌
빙퇴석의 끝. 빙하의 시작.


9-10KM의 빙퇴석 구간을 통과하는데 꼬박 3일이 걸렸다. 빙하 지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온통 얼음뿐,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야생이었다. 사방에 진동하는 한기에 뼛속까지 으슬으슬해졌다. 단 하나의 생명도 품지 못한 광활한 얼음 대지 위를 걸어갔다. 아이젠은 얼음 바닥에 박히며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었다.





빙퇴석 구간에서 잃은 시간과 거리를 만회하려고, 조금만 더 걷자, 힘을 내어 조금만 더 걷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심상치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곧 우박으로, 이어 눈발로 바뀌어 쏟아졌다.


우리는 서둘러 텐트를 칠 자리를 찾아 헤맸다. 다행히 4,790미터 지점, 베이스캠프 I 근방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거기서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이자 목표 지점인 캉라 패스(5,450미터)까지는 여전히 10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암울한 침묵이 텐트 안을 감돌았다. 밖에는 눈폭풍이 몰아쳤다. 다음 날이 캉라 패스를 넘는 날이었는데, 눈이 내리면 크레바스가 모두 덮여 장님이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아진다. 폭이 수 미터에 이르는 크레바스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떡할까. 그러나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가방을 뒤져 남은 식량을 계산했다. 하루치, 길어야 이틀치뿐이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릴 텐데, 굶주린 상태로 그 길을 내려가다간 탈진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미래의 확실성에서 안도와 행복을 찾는다. 그래서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가슴이 조여왔다. 유서를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텐트 지붕에 떨어지는 우박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눈을 올려다 보니 시야에 텐트에 박힌 NEMO 로고가 들어왔는데, 그것이 역으로 보여 OMEN(불길한 전조)으로 읽혔다. 걱정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걱정거리를 비춘다.


이 상황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를 고민하다가 다음날 캉라 패스를 넘는 것이 낫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가장 추운 새벽 2시에 출발해서 새하얀 눈 아래 감춰진 크레바스 위를 눈이 얼어 단단해졌을 때 건너는 것이 그나마 가장 안전해 보였다.


그리고 가방에 있던 옷들을 모조리 꺼내 매듭지어 연결했다. 크레바스로 떨어졌을 때의 마지막 안전장치였다. 내일 죽음이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을, 초연한 마음으로 누르려 애쓰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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