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빙하트레킹] 길 없는 길 위에서 - 8

해발 5450미터 캉라 패스 넘는날

by 메이슌




삐, 삐, 삐..

새벽 2시에 알람이 울렸다.

드디어 캉라 패스를 넘는 날이 왔다. 물을 끓여 차를 준비했다. 텐트를 접어서 정리하려는데 고정핀이 완전히 얼어 얼음 바닥에 박혀 있었다. 가스버너 불로 지져서 겨우 빼냈다. 텐트에 붙은 얼음은 떼어낼 수 없어 그대로 배낭에 집어넣었다. 배낭이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캉라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동트기 전 히말라야의 추위는 무시무시했다. 찬 기운이 몸속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침낭을 꺼내 몸에 둘렀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해 눈 위로 쓰러졌다. 정신이 아득해졌다가, 몇 초 후 눈이 번쩍 떠졌다. 흐억, 흐억, 컥, 컥,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다시 삶을 붙잡으려 했다. 숨은 마음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불규칙한 심장 박동, 제멋대로 흐트러지는 들숨과 날숨에 한참을 헐떡였다.


끓여둔 차를 겨우 보온병 컵에 따랐다. 차는 컵에 담기자마자 곧 얼음으로 변해갔다. 나는 아스피린을 넣어 녹인 뒤, 얼어붙기 전에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시, 캉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되었을까.. 짙은 남색의 새벽 평야 가장자리에서 주홍색 빛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태양은 떠오르며 설산 꼭대기에 자신의 흔적을 살며시 칠했다. 불그스름 물드는 산마루를 보며 이제 살았구나, 생각했다. 빛과 온기와 함께 걷는 것은 어둠과 추위 속에 걷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캉라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GPS를 간간히 확인하며, 지도상 크레바스가 몰려 있는 구간을 피해 돌아갔다. 다행히 패스 근방의 기온이 매우 낮아 밤사이 내린 눈은 아직 단단히 얼어 있었다. 그래서 눈 위를 걸어도 발이 깊이 빠지지 않았다. 게다가 눈이 그리 많이 내린 편은 아니어서, 몸 전체가 삼켜질 만한 거대한 크레바스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어젯밤보다 이전에 내린 눈, 이른바 올드 스노우가 퍼석퍼석하게 쌓여 그 밑에 끝없는 공허를 감추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크레바스를 요리조리 피하며 남은 힘을 쥐어짜 내 올라갔다. 5300M가 넘는 고도에서 배낭을 메고 오르는 일은 고되다. 열 걸음 걷고 멈추고, 스무 걸음 걷고 멈추고,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서 올라갔다. 가끔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면 가방 벗어내려놓고 앉아서 산등성이의 침묵을 바라보았다.



해발 5,450미터. 드디어 캉라에 도착했다. ‘라’는 티베트어로 고개를 뜻한다.


주홍빛이 서린 암석과 순백의 빙하가 반반으로 맞부딪힌 캉라는, 지나온 길의 시련과 무사히 도달했다는 안도감을 내게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 선명한 대비는 고난과 평온이 교차하는 인간 삶의 이원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을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인간.


나는 마치 이원성을 떨어져 바라보는 제3의 꼭짓점, 삼각형을 이루는 존재가 된 듯했다. 그 자리에서 맞닥뜨린 조화의 장관에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올랐다.




캉라는 강렬한 태양에 비틀린 사막이 즐비한 라다크 주와, 눈 덮인 히말라야의 히마찰 프라데시 주를 이어주는 고개다. 캉라는 오랫동안 인도 북부 히마찰 프라데시와 라다크를 잇는 카라반들의 교통 요지였다. 고산의 태양에 그을려 붉게 거칠어진 뺨을 한 상인이 온순한 야크 등에 잡다한 물건을 싣고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가 그러했듯이.


10년전 이 근방에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나서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허허벌판이 되었다. 주홍빛 암석을 품은 고대의 빙하는 마치 고독 속에서 미소 짓는 듯했다. 생명 하나 없는 광활한 빙하 벌판은 신비로웠다.


기괴한 모양의 얼음 조각, 하늘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크레바스를 바라보고 있자니 섬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 피어나는 그 작은 공포는, 어쩌면 너무나 순결하게 존재하는 무언가를 바라볼 때 자연스레 일어나는 당연한 동요일지도 모른다.




살아서 캉라에 오른 감격이 잦아들 즈음, 나는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훨씬 쉬웠다. 크레바스를 피해가며, 스키 타듯 미끄러져 슝슝 내려갔다.


그러다 중턱쯤, 빙하 벌판 한복판에 기묘한 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가 보니, 그 위에는 미라가 되어버린 히말라야 푸른 양이 있었다. 갉아먹힌 주둥이 반쪽, 하늘을 향해 활짝 벌어진 날카로운 갈빗대. 그것은 평평한 돌 위에 저항 없이 누워 있었다. 마치 제단에 바쳐진 제물처럼.


그 광경을 목격한 순간, 삭막한 빙하 황무지의 서늘함이 다시금 깊숙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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