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해진 라마 나왕과의 만남
우리는 북인도 라다크의 수도인 레에서 승합택시를 타고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고개를 세 번 넘어 12시간 만에 케이롱에 도착했다.
케이롱 마을은 이번 히말라야 여정의 초입이었다.
케이롱 마을 앞에는 산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그 봉우리를 잘 살피면 사원 두 개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그중 하나인 곷상 곰파에 가기로 했다. 곷상은 티베트어로 독수리 둥지라는 의미다.
곷상 곰파는 티베트 4대 종파 중 하나인 드룩파 소속 암자인데, 드룩파는 제16세 달라이라마가 이끄는 겔룩파와 더불어 머릿수가 가장 많은 종파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토바이로 부릉부릉 하며 40분을 달려 곷상 곰파에 도착했다.
기웃거리니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나오셔서 우리 보고 춥지 않냐며 자신의 양 어깨를 쓰다듬면서 "티? 티? 콜드? 콜드?" 하고 물어보셨다.
얼른 "예스, 예스, 콜드, 콜드"라 대답했다.
비구니 스님은 밀크티를 준비하신다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셨고 우리는 법당을 구경하러 사원 위쪽에 위치한 동굴로 올라갔다.
깎여진 동굴 안 쪽으로 법당이 들어서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티베트 불교 수호신 동상이 날카로운 창, 검을 쥐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들어선 이를 지켜본다.
법당은 한 두 사람 겨우 앉을 정도로 작았는데, 어느 은둔 수행자가 생활하였던 토굴처럼 보였다.
여러 문명과 도시와 사람의 흥망성쇠를 한걸음 떨어져 흘려보냈을 그 세월을 동굴 천장에 겹치고 겹쳐진 그을린 모닥불 흔적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법당을 나와서 비구니 스님을 다시 찾았다. 비구니 스님은 티베트어로 쭘마라고 한다.
맑은 눈동자를 가진 쭘마는 어서 들어오라고 아늑한 방으로 우리를 안내하셨다.
탁자에는 짜이와 여러 과자가 담긴 한 쟁반이 놓였다.
눅눅한 과자를 집어 들고는 순간 아차 했다. 밑에서 편안한 삶을 즐기는 주제에 손님이라고 당당히 들어와서는 귀중한 식량을 축내다니. 아랫마을서 과일이라도 들고 올 걸, 빈 손으로 온 나 자신이 창피해졌다.
그러던 중 승려로 보이는 한 사람이 들어와 앉았다. 승려는 자리에 앉아서 자연스레 달(인도식 묽은 죽)과 밥을 달라고 했다. 승려에겐 무언가 특별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 특별함은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뿜어내는 화려함이나 길거리에서 옷을 멋지게 빼입은 사람이 풍기는 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화려하다기보다는 소박함에 어울렸다. 그리고 그 소박함엔 왠지 가슴을 누그러뜨리는 따뜻한 힘이 있었다.
승려(티베트어로는 라마)의 이름은 나왕이었다. 라마 나왕은 이 곷상 곰파로 38년 전에 출가하여 줄곳 이곳에서 수행을 지속해 왔다고 하셨다. 두 눈과 목소리에서는 인자함이 묻어났다.
비구니 몇 명, 승려 한 명이 살고 있는 곷상 곰파는 겨울이면 6개월 동안 칩거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드룩파에선 승려가 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3년간 혼자 무문관을 하게 되는데, 무문관이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명상 수행에 전념하는 기간을 지칭한다. 3년 동안 스승이 3번 방문을 하는데 그때 묻고 싶은 것을 물을 수 있고 그 이외에는 완전히 혼자 지내는 것이다.
라마 나왕 : "처음 3-4개월 동안은 정말 나가고 싶었어. 그런데 겨울이라 도로가 완전히 끊겨서 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한 거지. 그런데 5-6개월부터는 적응이 되더라고"
“그렇게 동굴에서 3년간 혼자 수행을 하다 처음 밖으로 나오니 어떠셨나요?”
라마 나왕 : "눈이 너무 부셔서 스승님께 제발 동굴 무문관을 계속하고 싶다고 얘기했지. 스승님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앞으로의 수행은 밖에서 해야 한다 하셔서 어쩔 수없이 밖으로 나왔어."
"3년 무문관을 마친 후에 내면의 변화를 느끼셨나요?" 치열한 고독에서만 깨달을 수 있는 무언가를 툭 찔러보려는 가벼운 질문이었다. 우리의 교류는 짧고 쉬운 영어로 오갔기 때문에 외국어를 사용하는 소통의 피상성이 그러한 무례함을 감추어주길 바랐다.
라마는 "응"이라고 짧은 긍정을 하셨다. 순간 라마의 눈은 앞에 놓인 탁자가 아니라 어느 깊은 곳을 향해, 뒤를 향해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실 중에서도 가장 진실한 것을 가리키기엔 언어는 구차할 뿐이다. 어둡고 차디찬 벽에 둘러싸여 자신의 온기에만 의존하여 살아낸 나날이 드러낸 진실은 그렇게 간단히 대답하여질 수 없을 것이다.
라마 나왕과의 만남은 히말라야 언저리 계곡의 바람이 제법 쌀쌀해지는 8월 말이었다.
라마는 이제 서서히 겨울 칩거 준비를 시작해야 된다고 하셨다. 음식을 얼마나 비축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칩거일의 수가 더 짧아질 수도,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다. 마실 물은 곧 날이 추워지면 파이프가 다 얼어버리기 때문에 멀리 갈 필요 없이 대문을 열어서 눈을 퍼다가 녹여 마신다고 하셨다.
우리도 곧 히말라야로 들어가서 눈을 녹여 마시게 될 거라 하니 "너넨 얼마 동안?" 하고 물으셨다.
열흘 정도라고 대답하니 "에이, 난 6개월!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눈을 녹여 마시면 소화가 안 되어서 배가 좀 아파"라고 하셨다.
라마와 대화하는 중에 등 뒤로 비추는 햇살이 얼마나 따스한지 새삼 느껴졌다.
어깨를 가볍게 흔들어서 기나긴 여정에 지쳐 웅크러진 몸을 깨웠다.
벽에 걸린 커다랗고 알록달록한 달력, 페인트칠 다 벗겨진 창틀, 방 한복판에 뜬금없이 놓인 와인색 삼성 냉장고가 왠지 어렸을 적 할머니집에 온 듯한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나왕 라마는 너네 여기 동굴에 찍혀있는 발자국 봤냐고 물어보셨다. 창문 너머 저 위 쪽을 올려다보니 정말 동굴 천장에 어떤 기다란 자국이 찍혀있었다. 몇 백 년 전에 이 근방에 살았던 걸출한 수행자인 곷상파가 이곳에 머무를 때 찍었던 발자국이라고 하셨다.
라다크 근방에서 다른 곰파를 방문했을 때 성자, 구루의 발자국이라며 동굴 천장에 찍혀있는 자국을 몇 번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여기 히말라야에서 깨달았다는 사람들은 왜 발자국을 땅 위에다 안 찍고 천장에다 찍는 거예요? 천장에다 찍으려면 이렇게 다리를 찢어어 하는 거 아니에요?" 하면서 오른발 낑낑 들어 위로 찍는 모션을 취했더니 껄껄 웃으셨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다시 케이롱 마을로 향했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큰 빙하를 향한 여정은 춥고 험난할 터, 라마 나왕의 웃음소리가 마음속에 메아리칠 때면 어쩐지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