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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항 May 15. 2022

살육에 이르는 병(아비코 다케마루)-스포 적음

  “마지막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다.”


  소설 띠지에 적힌 한 줄 소개글입니다. 이보다 이 작품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워낙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이라 리뷰를 써봅니다. 

  본 작품이 철저하게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다 보니 리뷰도 성인 분들만 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소설은 세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마사코, 모성애가 강한 중산층 주부로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이를 평온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그냥저냥 살아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 평온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날 아들의 방에서 피 묻은 비닐봉지가 발견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미노루, 연쇄살인범입니다. ‘살육에 이르는 병’에 걸린 환자이기도 하고요. 그가 살인 충동을 처음 느낀 것은 대학교에 입학한 후입니다. 이성에게 딱히 혐오감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충동적으로 데이트하던 여성을 살해하면서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이게 그냥 만족감 정도가 아니라, 살해한 여성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믿게 됩니다. 네크로필리아의 일종인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미노루에게 살인이란 최고의 만족이자 궁극의 사랑이 되는 것이죠. 한번 이 지경이 되니 이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 히구치, 은퇴한 형사입니다. 얼마 전에 암으로 아내를 잃고 우울감에 파묻혀 살던 그를 그나마 간신히 버틸 수 있게 해 주던 것은 아내의 담당 간호사였습니다. 그렇다고 연인이라거나 썸을 타는 관계는 아니었고, 단순 말동무였지요. 하지만 그녀가 연쇄살인범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한 것을 알고 나자 그의 형사로서의 본능이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미노루가 어머니에 대한 비뚤어진 애착과 이상심리를 가지게 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이 부분의 설명은 상세하긴 하지만 피상적입니다. 성장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암시되는데, 그런 것들로 인해 이 정도까지의 살인마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갑니다.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갔으면... 싶은 아쉬움이 있지만 아무튼 미노루는 계속 계속 살인을 저지릅니다.

  히구치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살해당한 간호사가 자신에 대한 연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안 이상 더 그렇습니다. 많이 많이 고민하고 망설이지만, 그는 범인을 잡기 위해 피해자를 꼭 닮은 동생과 함께 함정 수사를 시작하죠. 그리고...


  상술한 줄거리는 내용을 상당히 순화시킨 것이고요. 책 표지에 떡하니 19금 표시가 붙어있는 만큼 폭력성, 선정성, 패륜성 모두 높은 수위의 작품입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이런 19금적 요소에만 의존하는 소설이 아니고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하는 흡입력과 긴장감이 상당합니다. 세 사람의 시점이 번갈아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꽤나 압축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인지 혼란스럽거나 흐름이 깨지는 느낌도 거의 없습니다. 다만 범행과 관련한 묘사가 너무나 잔혹해서 수월하게 페이지가 넘어가지는 않더군요.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역시 반전인데요.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가 15년쯤 전이니 그 후로도 많은 작품들이 빼어난 반전을 보여줬지만, 이만큼 충격을 받은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반전의 내용이 충격적이라기보다는, (물론 그것도 없지는 않지만,) 반전을 드러내는 방식이 진짜 발군이었죠. 이러한 형태의 트릭을 칭하는 명칭이 따로 있습니다만, 그 명칭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언급은 자제하겠습니다. 

  가끔 이런 류의 트릭을 사용하는 소설 중에 반전의, 반전에 의한, 반전만을 위한 작품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이 작품은 나름 반전 자체에 개연성이 있으며, 이를 위한 복선도 제법 잘 뿌려져 있어서 세게 얻어맞은 뒤통수가 아프긴 해도 억울하지는 않더군요. 

  다만 엽기적인 연쇄살인마의 심리와 수법을 세세하게 묘사한 데다가, 스토리 자체도 다크 해서 읽으신 후 기분이 찜찜하실 수 있으니 모두에게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사족으로 저자인 아비토 다케마루의 후속작에 상당히 기대를 걸었습니다만, 솔직히 그 이후로는 이만한 작품이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 살짝 아쉽습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괜찮지만 워낙 이 작품이 뛰어났던 탓일까요. 아직 뭔가를 더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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