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박새로이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는 타무라 유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독특한 캐릭터의 대학생이 매번 우연히(?) 형사사건에 말려들지만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사건도 해결하고 등장인물들에게 설교도 한다는 전형적 추리 일드입니다.
설교는 실생활에서나 드라마에서나 그다지 듣고 싶지 않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설교조의 드라마를 보면서 뭔가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 드라마의 경우인데요.
드라마 속 미스터리도 나름 재미있지만, 마지막에 주인공이 내뿜는 설교는 꽤나 신선합니다. “나 때는~”식의 구닥다리 설교가 아니라, 그저 잽인 줄 알았는데 정곡을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느낌이랄까요.
특히 6화에 나온 대사가 잊혀지지 않아서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연쇄 방화범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인데...
주인공 토토노는 한 남자와 부딪힙니다. 부딪힌 상대남은 자해 공갈단 급의 엄살을 부리며 무릎 꿇고 사과를 하라고 하죠.
여기에 주인공이 대응합니다. “정말 그냥 무릎만 꿇으면 되는 건가요?”
“엥????”하는 상대남에게 주인공이 또 말합니다(기억나는 대로 적는 것이라 대사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말 무릎을 꿇은 것 정도의 일로 사과가 되는 건가요? 그도 그런 게 단순한 동작일 뿐이잖아요.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아프게 하는 것도 아니고, 진심을 담지 않아도 되고, 꿇으면서 딴생각을 해도 되고...”
단지 토토노의 엉뚱함을 강조하려는 의도의 지나가는 시퀀스였지만, 왜 이리 이 대사가 인상적이었는지 모릅니다.
무릎을 꿇는다.....라는 것은 상당한 굴욕과 수치, 패배 등을 상징하는 모습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그저 동작일 뿐이라는 말에, 뭔가 마음속의 짐을 한결 덜어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딱히 무릎을 꿇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평소에 “절대 이것만은 안돼.”라고 생각해왔던 나만의 “선”들이 아무것도 아닌, 그저 집착과 허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홀가분함?이라고 할까요.
물론 “이번 딱 한번만....”이라는 자기 합리화의 반복으로 신념이 변질됨을 경계한 이태원의 박새로이처럼, 절대 부당하게 무릎 꿇지 않는 삶을 통해 오는 힐링도 분명 있습니다.
무릎을 꿇어도 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겠죠. 박새로이와 토토노에게 무릎 꿇음의 의미는 다른 것일 테니까요.
이 둘이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치의 초점을 어디다 두는가의 차이일 뿐 그들이 진짜로 가지고 있는 것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자유”니까요. 본인이 추구하는 자유를 위해서 무릎은 꿇을 수도 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참고는 할 수 있을 겁니다. 무릎 꿇음의 의미가 가지는 스펙트럼이 넓어질수록, 그렇게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좀 더 삶은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강자와의 중요한 승부수에서는 박새로이의 무릎을, 약자와의 불필요한 실랑이에서는 토토노의 무릎을 그저 선택하면 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