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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94호 매듭 15화

[특집]경제도서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편집부원 김태헌, 오승주, 수습부원 조민재

by 상경논총

시대정신을 제시한 경제학자들은 떠났지만, 그들의 아이디어는 남아 지혜가 되었다. 책은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을 시작으로 현대의 행동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지난 300년간 제시된 수많은 경제학자의 경제 이론을 설명한다. 경제학은 선대의 경제이론을 수정 및 보완하고 때로는 이전의 것을 완전히 비판하며 발전해왔다. 누군가는 경제학이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며 비판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체제는 지난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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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국제정세를 보면, 냉전 종식 이후 진행되던 세계화는 끝나가는 듯 보인다. 미중 무역갈등을 포함해 각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이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하며 군사적 긴장이 고도화되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경제 체제로의 전환 시점에 와 있을 지금, 다시 한번 죽은 경제학자들의 지혜를 얻을 수는 없을까?


책은 13장에 걸쳐 애덤스미스의 국부론, 맬서스의 인구론,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이론 등 수많은 경제학 거장의 이론이 등장한다. 본 특집글에서는 고전주의,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라는 3개의 큰 줄기를 기반으로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 글을 통해 경제학에 대한 관심과 다가올 변화에 대한 조그마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길 소망한다.


책의 첫 장을 펼치면 단연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등장하여 그의 히트작 ‘보이지 않는 손’을 역설한다. 시장은 이타심이나 선의 의지가 아닌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따라 작동한다. 만약 빵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가 증가할수록, 제빵업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격을 올린다. 이를 본 ‘이기적인’ 다른 공급자들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제빵시장에 뛰어들고, 반면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높아진 빵의 가격에 부담을 느낀다. 결국 빵의 공급이 늘어나는 동시에 수요가 줄어들며 다시 빵의 가격은 ‘균형 가격’으로 수렴한다. 위의 가격 조절 과정에서 왕이나 귀족의 개입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수요와 공급의 톱니바퀴가 사회적 잉여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맞물릴 뿐이다. 물론, 이 톱니바퀴가 유연하게 맞물리기 위해서는 ‘신축적인 가격’이라는 윤활유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시장 이론은 경제학계에서 ‘고전학파’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활동한 18세기는 학문 간 구분은 불분명했기에 그는 ‘경제학’을 낳고도 자신이 경제학의 아버지임을 알지 못했다. 당시 중상주의에 사로잡힌 스코틀랜드 왕실에 정치와 경제의 카르텔을 분리하라는 혁명적 요구를 선도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였기 때문이다. ‘고전학파’라는 고리타분한 이름과 달리,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파는 시대적으로 굉장히 급진적이었던 셈이다.


이후 스미스가 잉태한 경제학은 리카도, 마샬 등과 같은 후대 경제학자들에 의해 뼈가 붙고 살이 오르기 시작한다. 경제학은 스미스 때 그랬던 바와 같이 혁명적 요구를 먹고 자랐다. 리카도는 대미 수출 적자를 우려하여 보호무역을 펼치던 당시 영국 왕실에 적극적으로 개방 무역을 요구했다. 무역을 통해 자국 내에서 생산력이 떨어지는 품목을 수입하고, 이를 통해 비축한 생산력을 비교적 우위에 있는 품목 생산에 주력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경제학적으로 ‘비교우위 무역론’이라 일컬어지는 데, 영국은 이에 따라 생산력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산업혁명을 촉발할 수 있었다. 비록 차후에 나올 시장실패나 행동경제학적 발견 등에 의해 ‘고전학파’는 세상을 완벽히 설명하기엔 부족하지만, 당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현실적 요구를 통해 역사를 발전시켜왔으며, 그들의 주장이 현대에도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경제학적 의의가 매우 크다.


제1차 세계대전의 특수로 1920년대 세계경제는 호황이었다. 하지만 1929년 영국 해트리 그룹의 파산으로 런던 증시가 폭락하자 그 파장으로 미국 증권시장도 덩달아 폭락한다. 이후 약 10년 간의 사회상은 장기적인 수요와 공급의 일반균형이 가능하다는 고전학파의 핵심주장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존 케인즈는 고전학파가 의문을 갖지 않던 공급과다 현상의 가능성에 천착했고 수정자본주의로 알려진 케인즈주의가 탄생한다. 그는 선대 학자들의 논리를 임금과 물가의 하방경직성을 논거로 반박했다. 경기침체로 물가가 하락한다고 해서, 임금도 함께 줄어 기업이 고용을 더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실업자는 늘고 저축은 줄어 종국에는 소비가 감소한다. 케인즈는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정부의 개입을 주장한다. 정부는 감세나 정부지출을 통해 총수요를 증진시킬 수 있고 이러한 방법을 재정정책이라 일컫었다. 그리고 혹여 재정적자가 발생하더라도 경기가 회복되면 세수가 증가하고 정부지출 필요성도 줄어들어 장기적으로는 재정균형이 달성될 것이라 보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유효수요론은 공급이 수요를 만든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총유효수요가 총공급에 영향을 미친다는 시각에서 경제현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거시경제학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의 재정적 개입을 통한 수요진작을 정책 주안점으로 삼은 케인즈학파는 정책참여자로서 경제호황을 이끄는 데 공헌한다. 그럼에도 1960년대 후반 실업률과 물가가 동시에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자 재정정책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화주의학파는 정부 대신 중앙은행 주도의 통화정책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며 등장했다. 이들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해 시카고대학을 연고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프리드먼은 정부개입을 공공부문으로만 국한해야 시장의 자유경쟁원리가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통화량과 명목GDP와의 관계를 나타낸 ‘피셔의 교환방정식’은 통화주의의 핵심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들은 재정정책이 되려 총수요를 감소시킨다는 구축효과를 근거로 케인즈학파를 비판했다. 반면 케인즈주의자들은 기업이 낮은 이자율만으로 추가투자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화폐의 유통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반박에 나섰다. 이들의 대립은 오랜 기간 이어졌지만 역사는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뚜렷한 답안지를 내놓지 않다. 대부분의 국가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반합의 양태가 없었더라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극단주의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제시한 1700년대 이후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고전학파는 개인의 이기심이 시장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고 주장하며,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을 제시했다. 이후, 리카도는 비교우위 무역론을 통해 무역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산업혁명을 촉진했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존 케인즈는 수정자본주의를 주장하며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수요를 진작해야 한다고 보았다. 196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며 정부 개입의 한계를 인식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 중심의 통화정책을 강조했다. 이처럼 경제사상은 시대의 필요에 맞춰 발전해왔다.

경제학자들의 고민과 아이디어를 읽다 보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경제학자들은 모두 더 나은 사회를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자들이 당시의 체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은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제시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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