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원 오승주
[해운업계 호황에서 시작된 조선업 슈퍼사이클]
조선소들이 몰려있는 울산·거제 지역의 도크가 건조 중인 선박으로 가득 찼다. 현재 국내 조선 3사라고 불리는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모두 3년 치 이상의 수주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즉, 적어도 향후 3년간은 안정적으로 영업실적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기존 주력으로 건조하던 컨테이너선에 비해 고부가가치를 갖는 친환경선박을 수주함에 따라 안정적인 매출 규모에 더해 수익성까지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조선업계의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는 COVID-19 이후 해운업계에 찾아온 호황으로부터 시작된다. 팬데믹으로 인해 항만을 포함한 운송산업에서의 적체현상은 심화됐지만, 동시에 COVID-19 장기화됨에 따라 시작된 본격적인 재택근무 및 여행 소비 축소로 소비재에서의 보복 소비 심리가 강해졌다. 이에 따라 글로벌 물동량은 빠르게 늘어났지만, 이를 운반할 선박은 턱없이 부족했다. 해운업계는 운송 수요가 공급을 상회하는 상황을 놓치지 않고 해상운임을 끌어올려 막대한 영업이익을 확보했다.
이후 2023년 초 COVID-19가 사실상 종식되며 안정되는 듯 보였던 해상운임은 ‘홍해 사태’가 발생하며 다시 폭등했다. 2023년 12월 친이란 세력인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민간 컨테이너선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세계 컨테이너 물량의 30%를 차지하던 홍해-수에즈 운하의 교통로가 마비된 것이다. 결국 수에즈 운하를 오가던 선박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게 되면서 항해 기간이 10일 이상 길어졌다. 또한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관세 부과에 앞서 중국발 수출품 밀어내기 출항이 몰리면서 이용가능한 선박은 더더욱 줄어들었고, 해운업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해상운임을 3배 이상 올렸다.
해운업 호황에 따른 해운업계의 풍부한 현금 확보와 선박 수요급증은 앞선 1차, 2차 슈퍼사이클 초입 구간 공통적으로 드러난 특성이다. 하지만 최근의 선박 수요급증은 ‘탄소 중립’에 따른 조선업 생태계 변화, 그리고 조선소의 방위산업 진출과 맞닿아 있다. 본 글에서는 실제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도래했는지를 진단하고, 환경규제와 지정학적 위험에 직면한 현재 한국 조선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조선업의 흥망성쇠, 다시 한번 사이클에 올라타다]
조선업 슈퍼사이클 역사
과거 조선업 슈퍼사이클은 1970년 전후와 2000년대에 찾아왔다. 제 1차 슈퍼사이클(1963~1973)은 세계 대전 이후 글로벌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글로벌 무역량이 급증하며 시작되었고, 이후 11년 동안 지속되었다. 제 2차 슈퍼사이클(2002~2007)은 1차 슈퍼사이클 때의 노후 선박 교체와 중국의 WTO 가입에 따른 글로벌에 따른 글로벌 물동량 증가로 인해 촉발되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선박 발주가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조선업은 불황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2008년 당시 선박 발주 급감으로 헤비테일(Heavy-Tail) 방식이 굳어졌는데, 이는 대부분의 계약대금을 인도 시점에 지급받는 계약을 의미한다. 헤비테일 방식의 계약방식은 2~3년의 건조 기간이 소요되는 수주산업 특성상 조선소에 과도한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건조 기간 발생하는 자금을 자체적으로 충당하는해야하는데 더해, 건조 중 발생하는 원자재 및 인건비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을 고스란히 조선소가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2010년 대에 선박 발주의 감소로 인한 매출 감소와 헤비테일 방식에 따른 영업성 악화로 국내 조선소는 오랜기간 재무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 1.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 추이, 한국신용평가, Clarksons research
다행히 2021년을 기점으로 전방산업인 해운업계의 호황으로 인해 조선업계의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다. 특히 조선업 시장 상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는 2020년 11월 이후 꾸준히 상승하여 2024년 9월 기준 189.96의 신조선가 지수를 기록하며 역사적 고점(191.58포인트)에 근접했다. 클락슥 신조선가 지수’란 1998년의 신조선가를 100포인트로 기준점을 삼아, 특정 시점 신규 선박의 평균 가격을 나타낸다. 즉, 해당 지수가 높을 수록 조선소에서 더 비싼 가격에 선박을 수주했다는 뜻으로, 조선업계 수익성이 개선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조선업 슈퍼사이클, 정말 돌아온걸까?
23년 4월 SK 증권에서 발간된 조선 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슈퍼사이클 초입 시기 4가지 주요 요인이 있었다고 한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과거의 슈퍼사이클은 1)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선박 수요가 급증하고, 2) 신조선발주량이 중고선거래량 보다 많으며, 3) 조선업 인력난 문제가 없었으며, 4) 현재의 헤비테일과는 다른 선가 지급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을 주요한 특징으로 꼽았다.
[조선업 슈퍼사이클 초입 4가지 요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선업은 3차 슈퍼사이클에 거의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해상 물동량 성장률은 이전 슈퍼사이클 시기에 근접했고, 신조선발주량은 중고선 거래량을 상회했으며, 계약대금 지급 방식도 표준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조선소와 정부가 발맞추어 부족한 인력 문제만 점차 해결해나간다면, 조선업이 완전한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3년 발간된 보고서의 4가지 근거를 빌려 현재 시점의 자료를 기반으로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정말 도래한 것인지 알아보자. 첫째로, 2차 슈퍼사이클 시기의 글로벌 해상 물동량 성장률은 연평균 약 5.5%를 기록하였으나, 보고서가 발간된 23년 직전 3년간(20~22)의 해상 물동량 성장률은 약 0.5%에 불과했다. 하지만 23년 해상 물동량 성장률은 4.3%, 24년 예상 해상 물동량 성장률 추정치는 3.9%로 슈퍼사이클 시기의 해상 물동량 성장률에 근접했다.
두번째 요인은 2차 슈퍼사이클 시기 신조선발주량이 중고선거래량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보고서 발간 직전 3년간(20~22)의 신조선발주량은 중고선거래량을 앞서지 못했다. 하지만, 24년 37주차를 기준으로 신조선발주량이 중고선거래량을 앞섰다. 24년 37주차 기준, 신조선 누적수주량은 1,572척으로 중고선 거래량인 1,502척을 상회했다. 즉, 3차 슈퍼사이클 진입의 두번째 조건으로서의 신조선발주량을 달성한 것이다.
세번째 요인인 조선업 인력문제의 경우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실제 2023년 한화오션을 포함한 일부 조선소에서 공정지연이 발생한 것을 보면 이러한 인력난과 관련된 장해요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 2014년 말 기준 20만명이었던 조선업 인력은 조선업 불황의 여파로 급격히 감소해 2022년 말 기준 9.1만명에 불과하다. 다만, 2023년 1만 6천명의 외국인력을 확보한 데 더해, 조선업 신규 외국인력 도입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도입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인력난 완화를 위해 외국인력의 조선업 별도 쿼터 비자를 신설하고, 특별연장근로 연간 활용 가능 시간을 한시적으로 확대하며 부족한 인력난 해소를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또한 법무부에서는 조선업 비자 발급기간을 축소(5주->10일)하고, 기업별 외국인력 도입 허용 비율을 한시적으로 확대(20%->30%)하여 외국인력 도입을 위한 발판을 제공했다. 이와 같은 정부차원의 조선업 인력난 해소를 위한 방안 및 규제완화와 더불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규 인력들의 숙련화가 진행되면 조선업 인력 문제는 점차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림 2. 계약방식별 선수금 비중, 현대해양
마지막으로, 조선소에 불리한 ‘헤비테일’ 방식의 계약대금 지급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금융위기 이후 관행으로 굳어진 ‘헤비테일’ 방식에서 벗어난 표준방식(스탠다드방식)의 계약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과거 조선소가 선도 인도 시에 잔금 50% 이상을 수령하는 ‘헤비테일’ 방식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계약 시점부터 인도 시까지 단계마다 20%의 대금을 수령하는 표준방식의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즉, 슈퍼사이클 진입의 네번째 조건인 계약대금 지급 방식의 개선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슈퍼사이클의 새로운 바람, ESG와 방산을 곁들인]
탄소규제에 따른 친환경선 수요 확대
그림 3. 2000년대 중반 조선 Super Cycle과 현재 업황 개선의 주요 원인 비교, 한국신용평가
일반적으로 선박의 수명은 25~30년 정도로, 조선업 3차 슈퍼사이클은 2003년 시작된 2차 슈퍼사이클 이후 2030년에 찾아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의 해운호황과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따른 친환경 선박 발주 가속 등의 이유로 5년 정도 앞서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3차 슈퍼사이클은 탄소규제와 방산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추가된 점에서 이전의 슈퍼사이클과 구별된다. 국내 조선소들은 새로운 환경규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방산 분야에서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알아보자.
그림 4. 추진연료별 컨테이너설 수주잔고 비중, Clarksons, 삼성증권, 삼일PwC경영연구원
국제해사기구(IMO)는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대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파리협정’의 영향으로, 2050년까지 전체 선박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에 비해 100% 감축하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했다. 2008년 대비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2030년까지 30%, 2040년까지 80%의 탄소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하는 만큼 해운업계는 이미 친환경 선박의 발주를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소에도 저탄소와 무탄소 연료(LNG, 메탄올, 암모니아 등) 추진선 수주가 급증하고 있다. 실제 2024년 기준 조선업 수주잔고의 94% 이상이 친환경연료를 사용하는 추진선 혹은 친환경 추진선으로 개조 가능한 선박이다. 24년 1분기 국내 조선업은 전세계에서 발주한 친환경선을 모두 수주하며, 3년 만에 중국 조선업계를 제치고 선박 수주 1위를 탈환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과 달리 한국 조선업계는 친환경 기술력을 강점으로 친환경 선박 수주를 대거 확보한 것이다.
K-해양 방산, 미국 MRO를 발판 삼아
최근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한국의 조선업을 꼭 찍어 언급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구체적으로 미국 군함과 선박 건조 그리고 보수 수리 및 정비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세계 최대 군사강국인 미국은 왜 한국 조선업에 선박 MRO(유지, 보수 및 운영)에서의 도움을 요청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미국 내 조선업체들의 기술과 생산능력은 크게 퇴보한 상태다. 1920년 제정된 ‘존스법’은 미국의 조선업 보호와 육성을 위해 제정된 강제 규정으로, 미국에서 만든 선박만이 미국 내 운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존스법 도입에 따라 당시 미국 조선업은 미국 시장을 독점하며 단기적으로 부흥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경쟁력을 잃어갔다. 미국 조선소는 글로벌 경쟁 없이 미국 내 모든 선박 건조를 담당했고, 미국의 조선소는 기술개발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자유경쟁 정책 기조 하에, 자국 내 조선업에 대한 보조금이 대폭 축소되며 미국 조선업은 설 곳을 잃었다. 이에 따라 이미 글로벌 조선업계에서 경쟁력을 잃은 미국 조선소의 건조량은 2023년 기준 전 세계 선박 건조량의 0.13%만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내 조선업계의 경쟁력 악화는 곧 국내 조선소들의 새로운 기회로 부상했다. 실제 24년 2월 미국 해군성 장관이 한화오션을 방문해 국내 조선업계의 함정 건조 및 MRO 역량을 확인했고, 24년 8월 한국 조선소에는 최초로 미 해군 군수지원함 창정비 사업을 발주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됨에 따라 세계 방산 시장 규모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은 2024년까지 국방 예산을 GDP의 2% 이상의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방침을 세웠고, 향후 10년 간 전 세계 국방 예산은 2조 달러 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최근 트럼프 당선인의 언급은 러-우 전쟁 이후 날로 커지는 미국 및 글로벌 국방 시장에서 한국 조선소들의 해양 방산 수주 기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국내 조선 빅 3 중 두 곳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이미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해양 방산으로의 진출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2022년 국내 최초로 필리핀 해군의 MRO 사업을 수주했으며, 한화오션은 2024년 6월 미국 내 위치한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고, 11월에는 미국 군함 MRO 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약 78조원, 그중에서도 미국의 함정 MRO 규모는 20조원에 이를 만큼 거대하다. 만약 미국 MRO, 나아가 글로벌 MRO 시장에서 국내 조선소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면 과거 조선업의 영광이 재현될지 모른다.
[친환경선과 해양 방산으로의 확대, 그 다음은?]
조선업계의 전통적인 먹거리였던 컨테이너 선박에 비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친환경선과 해양 방산 분야는 상대적으로 더 높은 이익률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조선산업은 전방산업인 해운사에 열위한 교섭력을 갖기에 낮은 마진율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친환경선박 혹은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제한적이기에 상대적으로 높은 마진율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림 5. 로얄캐리비언 공식 인스타그램, 매일경제
그렇다면 친환경선과 해양방산보다 더 높은 마진율을 챙길 수 있는 선박 분야는 없을까? 크루즈선은 선박 중 가장 부가가치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업 2차 슈퍼사이클 시기인 2006년 산업연구원 자료를 보면, 철강재를 100으로 가정하여 선종별 부가가치지수를 계산할 때 유조선은 219, 컨테이너선은 393에 불과하지만, 크루즈선은 2,000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크루즈선 건조 시장은 유럽의 4개국에서 89%를 장악하여 사실상 과점 형태를 띠고 있으며, 국내 조선업계의 크루즈선 점유율은 사실상 0%에 가깝다. 한국 조선업계가 과거의 영광을 넘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더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선박 건조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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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 추이, 한국신용평가, Clarksons research
2. 계약방식별 선수금 비중, 현대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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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추진연료별 컨테이너설 수주잔고 비중, Clarksons, 삼성증권, 삼일PwC경영연구원
5. 로얄캐리비언 공식 인스타그램,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