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逸常)
정치란 결국 상식을 지키는 기술이다.
사람들이 최소한의 절차와 윤리를 믿을 수 있어야, 갈등이 있어도 제도는 굴러간다.
상식이 바닥을 잡아줘야 논쟁도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요즘의 정치는, 절차를 설명하는 대신 명분을 앞세우고
의혹을 해소하기보다 의심을 확장하며
책임을 묻는 대신 정파적 구호를 반복하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정치의 말은 많아졌지만
그 말들이 도착해야 할 지점인 납득과 신뢰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상식에서 벗어났다’는 감각의 실체다.
정치적 논쟁은 원래 뜨겁다.
그러나 뜨거움과 방향 상실은 다른 문제다.
요즘의 논쟁들은 열기만 요란할 뿐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기본선이 무엇인지조차 흐려진다.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일관성을 잃고
판단의 기준은 정파에 따라 달라지며
어떤 문제는 침묵으로 덮이고, 어떤 문제는 과잉 해석으로 부풀려진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정작 ‘정상적 처리’라는 개념은 존재감을 잃는다.
우리는 말을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말의 양에 비해 합리의 비율이 지나치게 낮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정치가 내놓는 설명은 복잡한데
그 복잡함이 투명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설득을 피하기 위한 것처럼 보일 때
시민은 자연스럽게 상식적 기준을 되묻게 된다.
“과연 지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처리되는 것이 정상인가.”
이 질문이 남는 순간, 이미 정치의 중심축은 흔들린 것이다.
공론장은 여전히 활발해 보이지만,
그 활발함 속에서 빠르게 증발하는 것이 있다.
책임의 일관성, 절차의 정직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식의 감각이다.
정치는 언제나 치열할 수 있다.
그러나 상식이 빠진 치열함은 결국 소모전이 된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생기는 잔향이다.
정치적 사건 하나가 끝날 때마다 설명되지 않은 꺼림칙함이 남고,
논란이 정리된 뒤에도 어딘가 덜 정리된 기분이 뒤따른다.
사건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그 사건의 결론이 아니라,
“이게 정말 최선이었나?”라는 씁쓸한 질문이다.
그 질문이 바로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여운이다.
소리 없이 그러나 끈질기게 남아서
정치의 방향과 우리의 감각이 얼마나 멀어졌는지 확인시키는 여운.
언젠가 상식이 다시 정치의 기준이 된다면
그때 남는 여운은 지금과 전혀 다른 종류일 것이다.
이해가 남고, 설득이 남고, 신뢰가 남는 여운.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바로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