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연 Jan 25. 2023

운동 유목민의 필라테스 정착기

나의 인생 운동을 찾아서

  내가 제일 처음으로 비용을 들여 다닌 운동은 헬스였다. 수능 직후에 시작했고 운동 목적은 다이어트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하다 졸릴 때면 달달한 것을 마구 먹었다. 그 결과 내 허벅지에는 빗살 무늬가 새겨졌다. 대의를 위한 소의 희생이랄까. 대의를 이루었으니 포화 상태에 이른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식단 관리를 하고 헬스장을 주 4-5회 정도 다녔다. 그리하여 대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몸무게를 5킬로 정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헬스는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나에게 헬스는 해야 하는 것이지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헬스가 자기 주도적 운동이라는 것이다.  PT를 받지 않는 이상 내가 직접 신체 부위를 분할해서 운동 루틴을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전의 글에서 밝혔듯 나는 운동을 하는 동안만이라도 선택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차츰 근력 운동에서 멀어졌다. 내가 헬스장에 가서 이용하는 기구라고는 트레이드 밀이나 사이클 정도가 다였다. 이마저도 몸 보다 TV에 집중해 약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겨우 유산소 운동 1시간을 마치고 오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 다이어트에 성공한 옥주현 언니가 요가 열풍을 일으켰고 그 바람에 나도 요가를 시작했다. 당시 요가 수업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명상(연꽃 자세) 5분 - 본 운동 40분 - 휴식(송장 자세) 5분. 본 운동에서는  태양 숭배 자세, 누운 영웅 자세, 쟁기 자세 등 이름부터 재밌는 다양한 '아사나(자세)'를  10~20초 정도 유지했다. 그러나 나는 요가의 핵심이 본 운동 전후에 있는 명상과 휴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코 끝을 지긋이 바라보며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 생각을 안 하면 좋지만 생각이 나면 그 생각을 고요히 따라가 보는 행위는 내 몸의 '차크라(인체의 에너지 중심점)'를 깨우기에 충분했고 외부로 향하던 에너지를 내 안으로 가져왔다.


요가 연꽃 자세(파드마아사나)


  헬스가 훈련이라면 요가는 수련에 가까웠다. 요가는 4분 음표(수업/과제/시험),  8분 음표(과외), 16분 음표(인간관계)로 가득한 오선지에 그려진 8분 쉼표 같았다. 혼자 해야 하는 헬스와 달리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수업인 것도 좋았다. 나는 그들에게 전우애와 라이벌 의식을 동시에 느꼈다. 또한 요가는 근력보다는 유연성을 타고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재능이 있는 것에는 흥미를 느끼기도 쉽다. 헬스가 근육을 크게 만든다면 요가는 근육을 찢는다는 느낌이 강한데 그런 점도 내 운동 목적에 더 잘 맞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헬스보다는 요가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요가에 빠지게 된 나는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요가를 했다. 중간중간 다른 운동에 한눈을 팔기도 했지만 곧 다시 요가로 돌아왔다. 그러나 출산 후 1년이 지났을 때 즈음, 슬슬 요가가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요가의 한계점을 느꼈다. 요가는 내 장점인 유연성을 강화시켰으나 내  단점인 근력을 드라마틱하게 향상하진 못했다. 아무리 요가를 열심히 해도 내 엉덩이는 납작했고 나는 애플힙을 원했다. 그때 마침 우리 집 근처에 대기구 필라테스 센터가 새로 오픈을 했다. 나는 요가와 필라테스에 양다리를 걸쳤다. 머지않아 필라테스로 환승 이별을 했지만 말이다.

  필라테스는 헬스와 요가 그 중간쯤의 속도와 강도를 가지고 있는 운동이다. 헬스보다는 정적이고 요가보다는 동적이다. 헬스처럼 같은 동작을 여러 번 짧게 반복함으로써 근육을 자극하기도 하고, 요가처럼 동일한 자세를 오래 유지해 지구력과 유연성을 강화하기도 한다. 필라테스의 핵심인 흉곽 호흡은 운동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 동시에 코어 강화에도 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점은  강화된 중둔근, 즉 애플힙 장착이다. 이렇게 나는 내 인생 운동을 찾게 되었다. 언젠가 또 바뀔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그러하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부작사부작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고 안 맞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위에서 나는 헬스, 요가, 필라테스 세 가지에 대해 얘기했지만 그 사이를 잠시 스치듯 지나간 것도 많다. 수영(두 달 동안 발차기만 하다가 "몸이 왜 이렇게 무겁냐"라는 수영 강사의 말에 열받고 그만둠), 재즈 댄스(임용 공부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시작했으나 팔다리가 따로 노는 거울 속 내 모습에 더 스트레스받고 그만둠), 배드민턴(첫 학교 발령받고 동료쌤들의 권유로 시작했으나 날아오는 셔틀콕에 실명당할까 봐 무서워서 그만둠), 줌바/힙합 댄스(재즈댄스와 비슷한 사유로 그만뒀지만 그래도 아직 춤은 포기 못함), 폴 댄스(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댄스이자 재밌고 성취감도 주지만 피부 마찰로 멍투성이가 돼서 그만둠)...

  나의 목표와 흥미에 맞는 운동을 찾는 일은 내가 힘들 때마다 펼쳐볼 수 있는 인생 책을 찾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참고로 내 왼팔은 필라테스이고 내 오른팔은 니체이다. 또한 누군가의 인생 운동은 그 사람의 매력을 가장 잘 살려주는 헤어/옷 스타일만큼이나 그 사람을 돋보이게 만드는 무기가 된다. 


짧은 다리의 역습 (5년 전, 요가 수업)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나를 만나기 위해 운동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